모두가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쓸까말까 망설이다가 연재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창업을 고민하고 있거나, 저와 같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모든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일런 머스크, 제프 베조스, 브라이언 체스키 같은 위대한 창업가의 성공신화 재현을 꿈꾸며 회사를 시작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혁신적인 아이템, 남들보다 뛰어난 나의 재능에 대한 믿음, 성공했을 때 돌아올 엄청난 부와 명예... 이런 것들은 창업자들의 눈과 귀를 멀게한다. 주변의 반대와 걱정은 오히려 "내가 왜 못해? 뭔가 보여주겠어"라는 아드레날린으로 변하고 만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의 계획대로라면 나는 이미 허준, 이제마와 더불어 의사학 교과서에 기록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어야 했다.
그렇다. 쳐맞아봐야 알수 있다. 강펀치를 쉴 새 없이 쳐맞고, 쓰려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해봐야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앞으로 버텨내야 할 라운드가 몇 개나 남았는지가 비로소 온몸으로 느껴진다. 링에 오르기 전까지 수없이 머릿속에 그려온 "가벼운 잽으로 상대를 간보다가 오른쪽으로 피하고, 회심의 왼손 어퍼컷으로 KO승"을 하려던 내 계획은 간데 없고, 그저 버텨내기에 급급해진다.
대부분의 사업이 비슷하겠지만, 기술 기반의 기업들은 첫 제품(서비스)가 나올때까지 많은 인력과 시간, 그리고 비용이 투입된다. 그리고 그 제품이 수익까지 연결되는데까지는 예상치 못한 정말 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업계에서는 이 기간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고 부른다.
스타트업을 처음 시작한지 4년. 지금의 회사는 벌써 2년 반이 지나도록 여전히 데스밸리를 헤매고 있지만, 나는 그래도 아주 아주 아주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혹시나 망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전문직 자격증이 있고, 4년 동안의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쳐서 창업한지 1년 만에 존경스러운 투자자를 만나 소소한 exit을 했고, 받은 인수금을 기부하여 업계에서 명성도 얻었다.
(너무 많이 자랑한다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 한 번 자랑할 때마다 맘 속으로 10만원씩 까고있습니다. 앞으로 400번만 더 자랑할게요.)
몇 년째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고 있음에도 꿋꿋하게 버티면서 나와 회사의 성장을 기다려주는 위대한 투자자이자 멘토이자 오너인 키다리아저씨가 있다.
"니가 하는게 무슨 스타트업이냐, 호강에 겨웠네"라고 욕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람은 항상 자기 중심적이니까... 죽을 것 같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압박감과 스트레스, 외로움, 미안함, 자책감을 겪어온 사람으로서, 천천히 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보려고 한다. 누군가에는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열심히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에요. 잘 하는게 중요하죠. 프로잖아요."
아마추어 대표가 고백합니다.
"나는 죽음의 계곡을 지나고 있는 스타트업의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