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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쿵펀 Mar 27. 2016

사직서를 쓰면 생기는 일들

밖은 정말 지옥일까?

이 글은 2012년 10월 32세의 나이에 첫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적은 글입니다. 현재 퇴직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결과적으로 그만두었지만 퇴직이 정답인지 아닌지에 대한 글은 아니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내 나이 32살 가을, 사표를 썼다. 꽤 괜찮은 직장이었다. 


내 나이 32살 가을, 사표를 썼다. 꽤 괜찮은 직장이었다. 역으로 꽤 괜찮은 조건과 연봉을 제시하면서 퇴사를 만류하였으나 애초에 사표를 쓴 이유가 조건이 나쁘거나 연봉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모진 마음을 먹고 내 자리를 정리했다. 

 몸이 아픈 것은 회사를 그만두게 된 간접적인 원인이었다. 작은 수술로 인해 입원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아무 의미 있는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왔을 때 나의 상사는 모자란 매출액에 대해 방금 퇴원하고 온 사람을 45분간 세워놓고 다그쳤다. 15분 정도는 '내가 잘못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15분이 넘어가자 아무 생각이 없었으며, 30분 정도 되니까 '아 이건 아니다'라는 확신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고 다니는 것이 어른이라는 주위의 말을 뿌리치고, 나는 소위 애들이나 저지르는 퇴사를 저질러 버린 것이다. 

 마음을 먹기까지도 힘든 일이지만 사표를 내는 일 자체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나의 상사에게 먼저 면담 신청을 했고, 쏟아지는 쌍욕과 함께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협박이란 게 그만두면 밖은 지옥이니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회유는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고치고 앞으로 더 잘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어차피 첫 면담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당신의 입에서 '그러면 조금 더 생각해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그는 놔주지 않을 것이다. 


 소문은 순식간이며, 공격은 끈질기고 지칠 줄 모른다. 

 이제 당신의 퇴사 소식은 회사 전체가 다 아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부터 당신을 정말로 걱정하는 사람들과 그냥 한번 찔러나 보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거들게 된다. 두 부류로 나뉘는데, 당신보다 회사를 오래 다녔던 사람들은 대부분 '밖은 지옥이다' 쪽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참고 남아 있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당신의 동년배나 후배들은 '멋있다.' , '부럽다.', '잘했다'와 같은 쪽이 많을 것이다. 어느 쪽이던 당신을 아끼던 사람들은 아쉬워할 것이고, 별 영양가 없던 사람들도 빈말이라도 아쉬워하는 척은 할 것이다.

 몇 줄로 적고 있지만 매니저와 동료들로부터의 회유와 협박은 생각보다 꽤 긴 시간 유지되며 조직적이며 지칠 줄 모른다. 이 기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접는다. 그만큼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일이 부담스러우며, 그 자신에게도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여자친구의 만류는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생각을 해봤는데, 그만두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당신이 퇴사에 대한 마음을 굳혔다면 다시 당신의 상사와 이야기해야 된다. 어렵겠지만 '생각을 해봤는데, 그만두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게 될 텐데, 그 전에 여러 가지 조건을 당신에게 제시할 지도 모른다. 승진이나 연봉 인상 같은 것들이다. 그 어떤 것도 문서화되어 있지 않으면 지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 명심해두자. 이 과정이 단번에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2~3회 반복하다 보면 당신의 상사도 그때부터는 초반에 했던 협박과 회유가 안 먹힌다는 것을 인지하고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임원들과의 면담, HR과의 면담이 남았고, 아마도 왜 그만두는지 사실대로 말하라는 종용이라던지 조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가는 마당에 말해보라는 말을 많이 들을 것이다. 조직을 사랑한다면 충언을 할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책임소재를 찾는 일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최종 사표 수리가 되어도 바로 그만두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최고의 순간

나의 경우 위에서 설명한 이 과정이 3주 이상 걸렸다. 최종 사표 수리가 되어도 바로 그만두지는 못한다. 인수인계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일을 하면 되지만 아니라면 인수인계를 위한 서류를 작성해놓고 나가야 한다. 그래 봤자 이제 나갈 사람에게 누가 일을 시키겠는가. 당신이 처음 회사를 그만둔다면 좌불안석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순간이 직장인으로서는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충분히 즐기도록 하자. 내가 나가겠다는데 회사가 잡은 시간이다. 내가 눈치 볼 필요는 없다. 


내가 떠나도 그곳에 남아 일을 하고 있을 동료들이 눈에 밟히는 것

 회사를 그만두는데 가장 힘든 것은 불투명한 미래도 있지만 내가 떠나도 그곳에 남아 일을 하고 있을 동료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다. 힘들었지만 같이 고생하고 서로를 아껴주고 고민을 털어놨던 동료들을 뒤로하고 사무실에서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다면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당장 갈 곳이 없다. 그래도 지옥은 아니다.

 나는 치밀한 계획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당장 갈 곳이 없다. 내일부터 나갈 곳이 없다. 일단은 아무것도 안 해보기로 한다. 나는 이제부터 당분간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 그런데 4년 넘게 회사일만 하다 보니 이제 내가 뭘 원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정말 씁쓸해졌다. 텔레비전을 보고, 가끔 동네 산책을 나간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힐끗힐끗 쳐다본다. 외국계 대기업은 새벽에 출근했다가 다시 어두워져서야 이 동네로 돌아올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여기 이사 온지 2년이 넘었지만 동네 주민들 얼굴이 낯설다. 

 다음 직장을 잡지 않고 나가는 것에 대해 주위 사람들과 나 자신도 걱정했다. 그렇지만 현재 직장에서 주는 안락함이 더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좀 더 나를 강하게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 중에 가장 충격이 강한 것으로 고른 것 같다. 


이 글은 과거 일을 적은 것이고, 사진은 퇴사 후 자전거 여행을 떠나 일본 홋카이도 도로를 달리고 있는 사진입니다.

밖은 지옥인지 아닌지 사실 회사 사람들은 잘 모른다. 대부분 회사를 정말로 떠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얼마나 지옥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지옥이라면 견딜만한 것 같다. 앞으로 100일 동안 여행만 다닐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 여행기를 완성하는 것이 일단은 다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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