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나의 전생을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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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태국 정부에서는 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서민들은 스스로 종교적 의미가 담긴 이름들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들이 하나 같이 너무 길고 어려워서 부르기 쉬운 애칭들을 하나씩 더 만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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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대다수의 태국사람들은 본명인 ‘츠찡’보다 애칭인 ‘츠렌’을 일상에서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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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태국 애칭은 ‘땡모’다. ‘땡모’는 태국어로 수박이라는 뜻인데 수박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땡모’라는 어감이 재밌어서 태국친구들이 이름을 물을 때마다 농담 삼아 그걸 나의 애칭이라고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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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친구들도 하나 같이 ‘땡모’라는 나의 애칭을 들으면 재밌다는 듯 유쾌하게 웃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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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와로롯 시장 인근 카페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 ‘다오’가 이름을 물어보길래 ‘땡모’라고 이야기하니 그녀 역시 잠시 웃더니 나에게 다른 이름을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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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 피피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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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 섬 이름 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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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안다만 해의 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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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그 섬의 이름을 나의 애칭으로 써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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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내가 그곳을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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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오는 그렇게 말한 후 유쾌하게 웃었는데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피피’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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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태어났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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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생이 있다고 믿는다. 특별한 종교적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전생이 없다고 믿는 것보다 있다고 믿는 것이 더 재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나의 현생에 어울리는 이름을 가지게 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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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생을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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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생은 태국으로 오기 전 한국에서 살았던 날들이다. 꿈꾸던 일들을 성취해보기도 했고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불안감과 우울감 속에서 신음하던 날들이 참 많은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다시 태어났다. 아니 나는 오늘 내가 태국으로 온 이후로 다시 태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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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어디에 있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언어로 대화를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고 사는지가 삶에 참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집을 정리하고 태국으로 들어온 후로는 매일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다. 과연 태국으로 오지 않았다면 이런 행복감을 누릴 수 있었을까? 오늘부터 나의 이름은 ‘피피’다. 한국에서 쓰던 이름 또한 여전히 나의 이름이겠지만 이제 나의 삶에는 ‘피피’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날들이 더 많을 것이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춥고 어두웠던 날들이 참으로 길었다. 이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여름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피피’ 혹은 ‘땡모’라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