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 지고 불 속에 뛰어들었던 미친 한 때에 대하여.
지나고 나니 마치 남의 것처럼 생경한 그 감정들. 그 때는 걔가 너무 좋아서 자다가도 설레었었다. 순간적으로 훅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던 한 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그 생생함은 이제 글 한 자락을 읽는 것과 같은 거리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못할 한 마디.
그 말에 마음에 확신이 서 버렸고 돌이킬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애가 닳았다. 그러나 내가 나를 사랑하여 돌볼 의무와 책임이 있었기에, 자리를 떨치고 가는 그 애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붙잡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른다, 사실. 그 애가 알려줬던 나비포옹법을 그 애가 떠난 후에야 혼자서 도닥도닥 해 보았다. 내가 좋아했던 네가 좋은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서 최대한 덜 힘들고 싶었다.
나이 서른 여섯에 생각지도 못하게, 감정의 편린을 주워담고 싶어 몸부림치는 경험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지금까지 피하고 싶었던 류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힘들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서 엮일 것 같으면 밀어냈던 류의 사람이었는데 그 애에게는 속절없이 끌렸다. 떠나려 해도 신경이 쓰여 자꾸만 발길이 멈추는 것을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그 나이에 마음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것을 경험할 줄은 몰랐다. 그 애를 좋아하면서 차라리 지난 사람들을 피하지 말걸, 그랬더라면 그 애를 대하는 것이 조금 더 능숙했을 텐데. 그런 후회를 했었다.
서정적 인간과 서사적 인간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지켜보면서 그 간극을 건너지 못해 애간장이 녹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일이 잘 멈춰지질 않고, 전처럼 스위치 오프를 바로 해 버릴 수가 없었다. 가끔은 숨이 막혔다. 마음이 너무 짙어 숨이 막힌다는 말을 가슴 깊이 느꼈다. 그 애를 만나 나를 잃었고, 그래서 그 애를 잃었다. 잃어버린 나의 모습들이 너무 많은데 대신 그 자리에 그 애의 좋았던 것들을 심었다. 그런 것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며 매일 물을 주었다.
그 애를 잃고 그 애를 그리워하며 더 좋아진 내 모습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애를 사랑하면서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걸,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아직도 그 애보다 더 재미있고 궁금한 사람을 못 만났다는 게 짜증나기도 했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는 법이라, 단 하나의 확신과 인간이 느낄 수 있을 모든 감정을 손 안에 쥐지 못한 채 스르르 흘려보내고 나니 온갖 웃음과 재잘거림들이 몰려들었었다. 위로는 때로, 한 사람에게서만 받는 것이 아닐 것이다. 시간이 걸리고 채우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지언정. 신은 문을 닫으면 창문을 열어두신다지. 간신히 숨은 쉬고 살던 나날이 어찌저찌 지나가고 겨우 조금씩 편안히 웃을 수 있는 날들이 그 자리를 채워갔다. 영원할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스물 여덟의 어느 날들처럼 그 시간들을 언젠가 되돌아 보고 그 때의 감정을 선연하게 떠올릴 것을 안다. 한 때 좋아하던 어떤 시처럼, 세월은 복사꽃처럼 붉은 흔적을 남기곤 한다. 떠올리면 짙은 흔적이 욱신거리지만 눈물이 이전처럼 미친 듯이 흐르지 않아서 그만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해하듯 이전의 기록들을 들춰 보고, 물집이 잡혀 터진 자리를 계속해서 자극했다.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기는 거니까.
감정과잉이었다. 그만큼 과하게 밀려왔다. 타인의 감정에 쉽게 동조하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휩쓸릴 것 같아서. 그애를 보낸 이후로는 어떤 감정에든 정말 너무 쉽게 젖어들었다. 감정의 밑바닥, 상상도 못했던 부분까지 가 닿아서였던 것 같다. 스물 여덟의 내가 완벽하게 바닥까지 잠겼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베란다 창문을 뜯어버리고 싶었던 충동은 정말 순간적이었다. 사람들이 왜 마지막 순간에 누군갈 찾게 되는지 알았었다.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매일이 그렇게 아프면 숨을 쉴 수가 없기 때문에 마음에 굳은 살을 만드는 거다. 앓는 것에 여러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유를 찾아보려 노력했는데 이유 따윈 없었다.
긴 꿈을 꾸었었다. 놓쳐버릴 것 같았다가 잡은 하얀 강아지를 다시 내 품에 안을 때 갓난아기가 되어, 나는 그게 몹시도 막막하면서도 평생 이 애를 보살피며 살겠구나 생각했다. 꿈에서 깨자마자 그 애가 돌아올 것 같다는 직감을 느꼈으나, 어쩌면 그것은 그 애가 돌아올 것 같은 게 아니라 이 마음을 그렇게 안고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아마도 10년 후, 나는 또 이 글을 읽으며 그 때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겠지. 헨리의 It's you를 들으며 전처럼 속절없이 울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인 것 같다고, 그렇게 나 스스로를 도닥였다.
그래, 그 애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사람은 없었다. 솔직하게 인정하자. 그러나 위태롭고 나약하고 섬세한 것들은 늘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너에게 딱 맞는 사람이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떠올리는 거다. 어떻게든 나 자신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여서. 그 애를 사랑하며 살다 보면 삶이 너무 건조해졌을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 수 없을 모습을, 아마도. 추측하기로는. 그 애는 못 견디고 상처받지 않을까. 말하지 못해 끙끙거리며 시들어가고 나는 그걸 보며 또 시들어가고. 그 애는 그 애를 아는 척하는 걸 대단히 싫어하는데 그 애에 대해 오래 생각하다 보니 여러 가지를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태어난 나를 안타까워해야 하는 건지. 그 애를 사랑하지 않고 사는 삶은 적당히 촉촉하지만 마음이 부족하다, 고 느꼈었다. 다음 생에는 너로 태어나 나를 놓지 말아야지. 이번 생에는 다른 사랑을 하겠지만.
노을을 보면 늘 그 애 생각을 한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나의 아름다운 혼돈. 빛무리처럼 산란하여 내 삶의 어떤 순간을 완벽하게 물들여 버린 꽃그림자.
너는 찬란한 소멸이었다.
사랑은 선언할 수 없는 것이겠으나 선언될 수밖에 없기도 하는 것. 그러나 선언은 종결을 불러온다.
네가 떠나간 자리에는 평화롭고 쓸쓸한 위안이 남아, 차마 내 것이 되지 못한 세상을 엿보는 도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