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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라이즈 SUNRISE Nov 18. 2024

강연은 처음이라서 - 2

첫 강연에서 배운 5가지 러닝 포인트

강연 봉사 시간은 토요일 오전이었다. 전날인 금요일 밤 지방출장에서 복귀하는 대로 한번 더 연습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잘 생각이었다. 강연은 처음이라 불안이에 지배당한 나를 구원할 유일한 마지막 계획이었다.


"꼭 중요할 때 이런다니까" 

머피의 법칙이 작용했다.


밤 11시 30분, 집에 도착해 손을 씻고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불이 꺼져있었다. 차갑지 않았다. 냉동실도 잔잔한 냉기만 남아있었다. 화요일 출장 가기 직전에 넣어둔 냉동 도시락 12개는 다행히 아직 얼어있었다. 아니 하필 이 중요한 타이밍에 냉장고가 고장나? 궁핍한 나는 이 도시락을 무조건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캐리어에 때려 담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 냉동실에 도시락을 보관한 뒤 한시름 놓고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망했다. 도대체 왜 미리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은거야?' 스스로를 질책하면서도 냉장고가 지금 이 타이밍에 고장난 건 내 잘못이 아니니 억울하기도 했다. 어쨌든 강연 자료와 대본을 마지막까지 고치고 새벽 4시에 겨우 잠에 들었다. 나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함을 그대로 안고서.




당일 강연장소에 도착해 서명을 하고 자리에 앉아 대기하는데 심장이 다시 콩콩 뛰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강연 자료를 살펴보려 했지만 당연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강연이 처음이라면 강연 직전에 무언가를 수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ㅋㅋ)

강연자 대기실


그렇게 내 차례가 되어 기어이 스크린 옆 교탁에 서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10명이 채 안되는 인원이었지만 초롱초롱한 그들의 눈빛을 보니 50분을 정말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준비한 발표 PPT를 넘기며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자의 마음이 편해야 듣는 사람의 마음도 편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옆에서 수화와 속기로 실시간으로 나의 말이 기록되는 환경이라 혹여 말실수를 할까 더욱 떨리기도 했다. 


그렇게 강연을 통해 얻은 러닝 포인트를 몇가지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청중들의 표정을 살피되 분위기는 내가 이끌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끄덕이며 경청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표정과 행동의 변화 하나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지금 말하는 걸 이해하고 있는건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지금 저 친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집중을 하고 있는가? 강연을 하는 발표자 위치에서 알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연에 완전히 100% 집중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경청하는 한 명을 위해서라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2. 가능하다면 사전질문을 받자

사전에 '학년과 전공이 다양한 취업준비생'이라고만 전달을 받고 강연을 준비했는데, 막상 참여한 학생들을 보니 이제 막 대학에 입학했거나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강연 교안을 준비하기 전 사전질문이나 정보를 받으면, 청중들의 니즈에 더 fit한 내용을 다룰 수 있고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줌으로써 상호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3. 쉬운 예시는 필수

쉽게 설명하는 사람이 강연을 잘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진리이겠지만, 막상 내가 하려면 어렵다. 똑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우리가 학창시절 익히 배웠던 '비유' 등을 활용하면 조금 더 쉽게 또 기억에 남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4. 난이도 설정의 필요성

취업준비를 위한 첫번째 단추로 '경험 정리 꿀팁'을 소개했다. 이때 당장 따라하기만 하면 합격할 수 있도록 완벽한 실전 예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실습 도중 누군가에게는 너무 고난이도라서 본인의 것으로 만들기 어려워 한다는 걸 깨달았다. 청중들의 수준이 모두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수준별(1단계-3단계 정도) 예시를 제공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나중에 어떠한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걸 미리 확실하게 얘기해주면 청중들이 그 지식을 수용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5. 경력이 부족해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강연이 끝나고, 실습이 어렵다고 했던 친구가 찾아와 '강연이 자신의 가치관과 비슷하고 인상 깊어서 교안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다른 학생에게도 질의응답을 거치며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비교적 최근의 취업준비 경험 그리고 지극히 솔직하고 털어놓은 나의 실패담이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주제여도 나만의 관점을 솔직하게 녹여낸다면 뻔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도움을 주는 강연을 할 수 있으니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 




강연 봉사를 마치고 가장 크게 느낀 마지막 한가지는, 청중들에게 평가 받는다는 부담은 내려놓고 진짜 내 생각을 진정성 있게 들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강연 준비는 특히 초보자에게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행위다. 그만큼 부담감이 크지만 끝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하고 의미있는 활동이 아닐 수 없다.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스스로 내던져두면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해내기 마련이다. 그 결과는 나를 한층 더 발전시킨다. 그 결과가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더욱 가치있다. 강연봉사를 통해 배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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