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강연, 그 불안함에 대한 기록
일찍부터 무대가 익숙한 사람, 강연할 기회가 많았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학창시절 방송부처럼 강연하는 사람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거나, 그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 해왔다. 과제나 보고를 위해 PT 발표를 한 적은 많지만 강연은 고경력자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언젠가 경험과 경력이 많아지면 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상상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청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취업준비 강연봉사를 할 기회가 생겼다.
채용과 가까운 일을 하고 있음에도 '도움은 되고 싶긴 한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부담감에 처음에는 참여를 고사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용기를 냈다. 다른 분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도움을 주는 것을 보며 나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담당자분께서는 최신 채용 트렌드와 취업준비 방법에 대해 다뤄주시기를 요청하셨다.
그런데 막상 주제를 듣고 준비를 시작하려니 발표와 강연의 무게는 너무나 달랐다. 발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느낌이라면 강연은 내가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에 부담감이 컸던 것이다. '해보겠습니다'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이상했다. 강연 날짜가 다가오는 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쓰는 말임을 깨달았다.
나도 취업준비를 꽤 열심히 했고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도와준 적도 많은데, 막상 어떤 내용을 다뤄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자기소개서 작성법과 면접 준비 방법은 다른 분들이 맡기로 되어 있었으며 학생들의 전공이 무엇인지, 어떤 진로를 생각하는지, 무엇이 궁금한지 등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혼자서 1시간 동안 말을 해야 한다니! 다양한 컨퍼런스를 다니며 느낀 것은, 1시간 동안 상대방이 전달하는 말에 집중하는 건 정말 큰 투자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건 동시에 내가 극복해야 할 도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운다는 진리를 체감했다.
우선 교안을 만들기 위해 나부터 먼저 세상에 널린 채용 트렌드를 다시 뒤져보고 정리했다. 그리고 자소서와 면접 준비 강연은 따로 있으니까, 그 앞단계인 ‘경험을 정리하는 방법’을 소개하기로 했다. (실제로 경험을 정리하지 않고 자소서와 면접을 준비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또한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므로, 장애인 취업에 대한 글과 영상도 열심히 찾아봤다. 물론 장애인 취업의 현황이나 어려운 점들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강연 구성에 뾰족한 수가 나오지는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경험상 검색하면 다 나오는 이야기만 하다 끝나는 강연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만큼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너무 뻔한 얘기를 다루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게 진짜 어려웠다. 좋은 강연을 만들려면 기존의 정보와 나의 고유한 경험을 잘 엮어서 변주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강연자들처럼 내가 대단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렇게 몇 주 동안 강연 날짜만 생각하면 '어떡해!! 나 1시간 동안 무슨 말을 해야 도움이 될까?'하며 불안이가 튀어나오는 일상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빨래를 널다가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 그냥 공무원 준비하다 망한거랑 속기사 준비했던 거, 눈 뜨면 현실인게 싫어서 잠 안와도 계속 다시 자려고 했던 거.. 이야기 해야겠다. 이게 좀 재밌겠는데?'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소중한 경험들이지만, 실제 취업준비를 할 때는 숨겨왔던 실패와 시행착오에 대해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부터 주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나름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내용의 흐름이 정리되었다.
다행히 PPT를 만드는 작업은 이틀이면 충분했다. PPT를 만드는 게 익숙하기도 했지만 정리된 흐름을 보기 좋게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강연 봉사를 하는 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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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 계속!
ATOD. And Then One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