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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05. 2019

산책

어느 사립초 교사 이야기(3)

경향신문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바빠서 일주일 내내 하나도 못 읽는 주간이 이어질 무렵, 신문값이 아깝다... 그냥 끊을까... 생각했는데요. 

한 기자분께서 "신문값은 결코 비싸지 않습니다. 하루치 값이 천원도 안되지만 기자들은 그 기사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기사를 쓰는지 모릅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끊지 않고 신문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한두 개의 신문을 더 구독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읽고 싶지만... 옆집과 바꿔보기라도 해야 할까요.ㅎㅎㅎ)


선호하는 지면은 기획기사나 오피니언입니다. 특히 오늘 옮겨 쓰기를 할 '다른 삶 - 이대한의 연구실 가는 길'은 제가 굉장히 애독하고 있는 토요 기획 기사입니다. 토요일마다 이분의 글을 즐겨 읽는데 때론 다른 기획 기사가 실리는 날이면 굉장히 아쉬워요. 제가 막연하게 유학에 대한 꿈이 있는데요, 비록 전혀 다른 전공 분야이긴 하지만 미국에서의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가감 없이 글로 보여주고 계셔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마음에 와 닿은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생략, 줄 바꿈, 강조는 제 임의로)




표면적으로는 스스로 내 삶을 자유롭게 규율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나의 삶을 규율하는 것은 자유의지라기보다는 내 결정이 가져올 나의 미래에 대한 예감이다. 그렇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도, 미래에 대한 욕망도 나를 규율한다. ...


학계도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승자독식의 세계다. 소수에게만 경제적 안정과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리가 주어지며, 많은 사람들은 학자의 길을 포기하거나 학문을 포기하지 못한 대가로 힘겨운 삶을 견뎌 나가야 한다. 


... 그런 시스템 속에서 박사후연수기간은 학계의 상층부로 진입하기 위해 스펙을 쌓는 시기다. 이 시기에 어떤 연구실적을 올리느냐에 따라 향후 수십 년 동안 학문의 자유를 누릴 자격을 얻을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 

10년 후면 지금 박사후연구원인 사람들 중 누군가는 연구책임자로서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펼쳐나가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여전히 박사후연구원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는 나의 영혼을 잠식해왔다. 연구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을 때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연구가 잘 풀릴 때는 나의 욕망에 기름이 부어졌다. 연구가 잘 안될 땐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이 일했고, 연구가 잘될 땐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더 많이 일했다. 불안을 완화하지도, 욕망을 절제하지도 못한 나는 자기를 규율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스스로 착취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학교에서 억압은 배웠지만, 절제는 배우지 못했다. 학교란 현재의 욕망을 억눌러 경쟁에서 승리해 미래의 성공을 누려야 한다는 유보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시공간이었다. ... 끝없이 이어지는 경쟁에서 승리한 나에게 주어진 전리품은 대개 또 다른 경쟁의 기회였다. 경쟁에서 승리할수록 나는 더 경쟁의 노예가 되어갔다. 


경쟁은 미래의 보상을 약속하지만, 생명은 오직 현재에만 존재한다. ...

이 지면을 빌려 앞으로는 더 적게 일하고 더 자주 산책할 것이라고 다짐해본다. 절제하는 삶을 위해. 나의 삶이 생명을 누리며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저도 오늘 막내가 밖에 나가자고 하도 성화여서, 첫째 둘째만 집에 남겨두고 잠시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위의 글에서 생명을 누리는 아름다운 삶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산책'인데요, 정말로 산책을 하며 천천히 거닐며 3살 겸손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지금 불안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시작하여 스스로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고 답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이 교육비를 내고 일부러 선택한 사립초등학교. 

저는 부모님들이 내시는 교육비는 학교 교육의 방향과 철학에 동의하여 내는 후원금으로 보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립초등학교는 사립 중고등학교와 다르게 국가로부터 교사 인건비를 지원받지 못해서 등록금의 가장 큰 비중이 학교 안 교직원 인건비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육비를 '상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지불하는 돈'이라는 시장 경제가 갖는 의미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면 학교와 교사의 교육 철학과 교육 활동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죠. ("100만 원어치만 가르쳐주세요."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일까요? 

'부모님들이 우리 학교의 교육 철학과 활동에 동의하여 굳이 돈을 내고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시는데, 내가 적당히 안주하는 교사가 되어선 안되지'하는 생각이 늘 있는 것 같아요. 주말에도, 방학 중에도, 육아를 하면서도 '공부를 해야지, 더 배워야지, 연구해야지' 하는 채찍질을 자꾸 하게 됩니다. (선생님들끼리는 나들이 가서도 종종 나오는 말이 "이거 우리 학교도 하면 좋겠어요."랍니다. 어딜 가나 학교 생각 ^^;)


그 채찍질이 단순히 '일을 열심히 해야지'라거나 '성과를 내야지' 혹은 '더 친절하게 응대해야지'라는 생각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배우고 익혀서 겸손해져야지'와 같이 근원적인 채찍질이니 쉽지 않지요. 


실제로 육아가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제 마음속에 이런 채근이 저를 더 분주하고 바쁘게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도덕적인 욕구뿐 아니라 이대한 박사님의 표현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욕망' 또한 저에게도 당연히 있는 것이고요. 


좀 편해져야겠습니다. 제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금방 다다를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니까요. 


하늘을 보며, 겸손해지려는 목표와 더불어 그 과정도 겸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산책 나가길 잘한 것 같아요. :)



*원문 기사 링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041641015&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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