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숙소 110호
서울에서 숙소를 예약할 때, 11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세이셸 공화국의 어느 섬의 어느 해변이건 아무 곳이라도 좋으니 작은 오두막 하나 빌려 며칠 맘껏 '놀멍 쉬멍' 하다 오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안타깝게도 오두막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Air bnb 사이트에서 보여주는 집들은 위치, 가격, 특색 등 여러 가지로 매력적이어서 배낭여행이나 가족 여행이었다면 마땅히 선택해 봄직했지만, 위생상태나 집주인과의 관계가 복불복으로 결정될 듯했다. 결혼식을 치르면 심신이 지친다는 결혼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숙소가 괜찮을지 조마조마해하는 스트레스까지 추가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러나 여전히, 웬만한 리조트들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가격을 뽐내고 있었다. 방 하나에 500만 원, 700만 원 하는 가격이 적혀있길래 7박 가격인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그건 1박 가격이었다. 슬픈 현실이다. 이 가격에 대한 협상력을 얻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패키지를 선택하게 되는구나. 분명 여행사들이 받는 딜러 가격이 훨씬 나을 테니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는 아고다의 숙소 가격을 매일같이 들여다보다가, 별 다섯 개가 붙은 리조트인데 얼리버드 특가로 반값 할인을 하는 리조트를 발견했다. 워낙 일찍 예약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식적으로 매겨진 가격이 70만 원 정도였던 에필리아 리조트의 주니어 스위트를 2인 조식 포함 30만 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안전하게 예약했다.
웰컴 음료로 우리의 여독을 풀어준 중국인 초짜 직원은 리조트가 그려진 그림지도를 펼쳐, 이 곳에 머무는 동안 유료 혹은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해 주었다. 리조트 곳곳에 있는 다섯 개의 식당과 남-북으로 나뉘어 있는 해변, 마사지와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스파의 위치와 예약방법 등을 알려주었다. 친절하게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그의 영어는 문장이 아닌 단어로 겨우겨우 이어나간 설명이었고, 심지어 설명의 후반부는 아예 중국어였다.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답하는 법이 없었다. 질문을 하나 던질 때마다 '그건 확인해 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한 후 확인하러 한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했기 때문에 이제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6인용 버기(buggy)를 타고 데려다준 방에서도 친절하게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옷장 사용법, 수도꼭지 사용법, 텔레비전 켜고 끄는 법.. 그런 건 안 가르쳐 줘도 됩니다, 정 도움이 되고 싶으면 영어를 더 배워와서 쓸모 있는 정보를 주세요, 할 뻔했지만 잠시 후면 헤어질 사람이니 조금만 참자고 스스로 토닥여 보았다.
배정받은 숙소에 들어서면서 정말이지, 초짜 직원의 어눌함을 인내심 있게 견딘 것에 대한 포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우리 방은 110호, 방 안 곳곳에 장식된 빨간 크레올 꽃이 우리의 입성을 환영했다. 오늘 밤에 짠- 하고 마시며 분위기 한 번 제대로 잡아보소, 하는 샴페인 한 병도 아이스빈에 차르랑 담겨 있었다.
드디어 직원이 나갔다. 얼마 되지 않는 짐을 풀어 여기저기에 흩어두고 소파에 앉은 시간이 오전 열 시 정도였나 보다.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샤워를 했다. 밤샘 비행 끝에 아늑한 방에서 햇살 가득한 아침을 맞이하자니 무지하게 감격스러웠다. 마치 수능을 막 마치고 시험장을 빠져나온 듯, 지치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수영복도 가져왔고, 읽을 책도 가져왔다. 노트북에 그동안 보지 못한 드라마도 잔뜩 담아왔다. 이 중에 무엇을 먼저 할지 종이를 펴고 시간표를 그려 계획을 세워야만 할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늘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 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차례차례 적어 우선순위를 정하고 순서대로 해 왔다. 시간이든 돈이든,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 온 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 경제적 인간이었다.
앞으로 7일 간 무엇을 해도 괜찮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가 되었다. 유일하게 해야 할 일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것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태양은 점점 높은 곳을 향해 가는데, 우리에게 강요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서른이 넘도록, 처음 맞이하는 종류의 하루였다.
세이셸에서 할 일은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