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그 길
로비 라운지에 앉아 들이키는 웰컴 주스 한 잔이 놀랍도록 달콤했다. 목을 타고 들어간 에너지가 핏줄을 타고 온 몸으로 퍼지고 끝내 뼛속까지 흘러 들어가 두 눈을 '쨍' 하고 맑게 해 주었다. 환상적으로 펼쳐진 인도양의 푸른빛이 드디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식으로부터 이 음료를 마시기까지 평생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길고 긴 여정이었음을 고백한다. 아름다웠던 우리의 결혼식을 통해 혼인을 왜 인륜대사(人倫大事)라고 부르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겪을 가능성이 있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가족, 친지, 지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경우는 몇 번 되지 않는다. 결혼식이 그런 날이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분들이 소중한 시간을 내서 다 함께 모이는 날이다. 양가 어머님이 우리를 축복하는 노래를 부르는 날이다. 쌈짓돈도 아껴 생활하던 친구들이 거하게 모은 축의금을 내는 날이다. 이 날 찍은 사진 한 장이 온 가족의 프로필 화면을 장식하고 이 날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평생을 두고 회자되는 그런 날이다.
결혼이란, 그동안 들어보지도 못한 아프리카 오른쪽 섬나라 세이셸공화국까지의 여행보다도 훨씬 먼 여행길일 것이다. 30년이 넘도록 지내온 익숙한 삶을 떠나 새로운 삶으로 떠나는 여행이고, 결혼식은 그 여행의 출발점이다. 여행을 출발할 때의 설렘을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확실히 알 수는 없어도 왠지 멋질 것만 같은 기분, 예상치 못한 어려움까지 포함해서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굉장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설렘이다.
신혼여행을 결혼식 다음 날 출발하는 일정이었던 우리는 '누가 뭐래도 환불 불가'인 특가로 예약한 여의도의 한 특급 호텔에서 결혼 첫 날밤을 보냈다. 신용카드를 발급하며 그 호텔 뷔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받았는데, 그것을 사용해 첫날 저녁식사를 럭셔리하게 해결했다. 최고급 음식들을 담아 멋진 야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있자니 앞으로 다가올 행복과 기쁨에 대한 기대감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우리는 동시에 환호했다. 그 먼 길을 함께 할 친구이자 동지인 서로를 충분히, 넘치도록 사랑하자 다짐했다.
세이셸 공화국까지 가는 다양한 길 중에서 우리가 선택한 길은 무려 20여 시간이 걸리는 홍콩과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비행길이다. 긴 시간이기는 해도 경유지에서 한 번 씩 쉬었다 가니 그리 부담스럽거나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첫 번째 과제는 인천에서 보내는 짐들을 목적지인 세이셸까지 연결하여 발송하는 것과 홍콩에서 아부다비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일단 짐을 목적지까지 보내는 것이 불가하다면 경유지에서 짐을 직접 찾아 갈아탈 비행기로 보내기 위해 홍콩 세관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체크인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한 시간 반 밖에 되지 않는 환승시간 안에 캐세이 퍼시픽에서 에티하드 항공으로 갈아타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항공권 예약할 때 여러 번 확인을 해 보았지만 그 누구도 정확히 '무조건 가능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답변을 주지 않아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인천에서 수화물 발송과 체크인을 도와준 케세이 퍼시픽의 직원은 예상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었고, 기대보다 친절했다. 환승시간이 한 시간 반 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환승하며 날짜가 변경되는 스케줄이기 때문에 항공사 정책상 수화물 연결이 되는지 확인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항공권을 예약하면서 내가 이 곳 저곳에 전화 문의했던 내용을 들려주니 그 (24시간 안에 환승하는 경우에만 수화물을 연결시켜준다는) 답변이 정확하다면 문제없다며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넓은 첵랍콕 공항(홍콩)에서 지체 없이 에티하드 환승 카운터를 찾아야 한다. 그곳에서 목적지까지의 보딩패스를 발급받아야 한다. 보내는 짐의 분실률은 50%이니, 환승 카운터에서 짐이 잘 연결되었는지 꼭 한 번씩 확인하고 답변을 받아야 한다.
홍콩에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빠르게 내리자마자 달릴 준비를 하는데, 앞에 밀려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어쩐지 익숙한 글자가 보였다. 눈을 의심했지만, 내가 본 건 정확히 나와 신랑의 영문 이름이다. 이 낯선 땅에서 우리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망부석처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공항 직원인지 항공사 직원인지 모를 이 중동인(으로 예상되는 분)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눈을 한 번 딱 마주치더니 이름을 확인하고,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축지법을 사용해 걷기 시작한다. 앞서 가던 신랑을 불러 끌고 그 직원을 쫓아 달렸다.
30분 정도 달리듯 걸었나 보다. 은행 창구 같이 유리로 막혀 있는 환승 카운터에 도착하자 '축지법 사내'는 그 앞에 우리를 세워두고 안쪽에 앉은 직원에게 급하게 무언가를 설명한 후 다시 축지법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드디어 목적지까지의 보딩패스를 받았다. 인천에서 보낸 짐이 갈아탈 비행기에 잘 연결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목적지까지의 보딩패스를 받은 다음에도 게이트까지 30분 이상 헤매야 했다. 탑승 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해서 자리로 들어갔다. 고비를 넘기고 한숨을 돌리나 했는데,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다시 불편해졌다. 좌석 맞은편에 앉은 무섭게 생긴 승무원 때문이기도 했고, 무려 40만 원 정도를 원치 않게 지불하고 앉은 이 엑스트라 레그룸(extra leg room) 좌석의 식탁이 잠겨있어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심지어 extra leg도 아닌 짧은 내 다리를 펴기도 불편했다.
승무원에게 우리가 이 자리에 얼마나 큰 돈을 지불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억울한지, 현재 얼마나 불공평함을 느끼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결국 '식탁이 잘 올라오는 또 다른 엑스트라 레그룸'으로 옮겨 앉아 쿨쿨 자며 아부다비까지 날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예민한 상태였는지가 느껴진다. 천진난만한 신랑을 지켜줘야 한다는, 세이셸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바짝 긴장해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완벽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부다비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광고판에 쓰인 글자의 방향이 달랐고, 마주치는 인종이 새로웠다. 현지인들의 복장이 새삼스럽게 무서웠다.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내 몸을 수색하는 히잡 속 여인의 인권을 걱정했다. 백 프로, 오지랖 형 고민이다. 호기심 가득한 열린 마음으로 여행하던 때를 떠올렸다. 이제 너무 아는 게 많아졌나 보다. 슬프다.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시야가 좁아져 재미없는 여행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아부다비 공항에서는 비장의 PP 카드(Priority Pass Card)를 사용했다. 라운지에 들러 진수성찬을 차려 먹고 다음 비행기- 그러니까, 세이셸로 향하는 마지막 비행기의 이륙시간을 기다렸다.
마헤 공항은 예상대로 매우 작았다. 세이셸에 다녀온 블로거들이 세이셸 마헤 공항에서 꼭 들르라던 여행안내소는 순식간에 지나쳐 버렸다. '설마 저렇게 허술한 공간이 그렇게 중요한 인포메이션 센터겠어? 입국 절차는 밟은 후에 제대로 된 건물을 찾아봐야겠지' 하는 생각으로 지나친 그곳이 현지 지도를 무료로 받아야 하는 바로 그곳이었나 보다. 짐 검사를 마치고 나와서 바로 보이는 부스 다운 곳에 다가가 지도를 요청하니, 이 곳은 여행사이니 여행상품만 안내해 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세이셸에 한 곳 밖에 없다던 인포메이션 센터를 그렇게 지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렌터카 부스들이 두 줄로 마주 보고 줄지어 있었다. 서로 다른 렌터카 부스 안에 있는 직원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모든 부스를 한 바퀴 쭉 돌아보는 데 10 초 정도 걸렸고, 그들 중에 한 곳을 고른다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가깝게 늘어서 있었다. 옆에서 말하는 내용이 다 들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회사의 부스로 가서 7일간의 렌트 가격을 물어봤다. 조사해 온 가격과 비슷한 견적을 주기에 여기서 빌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지만, 자고로 돈을 내기 전에 비교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셀프 인테리어의 교훈을 기억해 냈다.
"조금 더 둘러보고 올게요."
맞은편 부스로 갔다. 같은 차를 첫 가게보다 괜찮은 가격에 제시하길래 그거보다 더 안 좋은 차 (사이즈가 더 작고 수동인 차)의 가격을 달라고 했다. 가격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여기로 결정한다. 예약한 리조트 이름을 대니, 지도를 주면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공항에서 세이셸 루피를 조금 환전한 후, 빅토리아(마헤섬의 시내)에 들러 현지 유심 카드를 구입해서 아이폰에 갈아 낄 때엔 갑작스러운 비가 잠시 쏟아졌다. 본격적으로 지도를 따라 산을 넘는 데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아까 방향을 꺾을 때 방위가 바뀐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될 즈음에 리조트 간판이 나타났다.
세상에- 정말 여기에 있네!
직접 예약을 했으면서도 막상 눈 앞에 리조트가 나타나니 정말 놀라웠다. 이렇게 먼 곳에, 거의 하루를 날고 꼬불꼬불 산을 넘어 도착한 이 시골 구석에 이렇게나 멋있는 우리의 집이 있다니!
리조트 입구를 통과해서도 한참을 들어가서, 버기(buggy)들이 다니는 길로 잘못 들어 뱅글뱅글 돌다가 겨우 찾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마침내 콘스탄스 에필리아 리조트, 천국에 예약해 둔 우리의 집에 도착한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이 자리에 있었을 리조트와 그 안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프런트 데스크에 여권을 보여주고 예약을 확인해 준 직원은,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5분 정도 기다렸을까, 한 중국인 직원이 다가왔다. 우리를 데리고 편안한 소파로 데려가 앉히고 환영의 의미로 시원한 웰컴 주스를 내주었다. 생강인지, 레몬인지, 어디선가 맛본 듯하면서도 처음 맛 본 이 음료는 신비로울 정도로 청량했다. 다 지쳤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음료였다.
우리를 맡은 이 중국인 직원은 영어가 지나치게 엉망이었다. 프런트의 직원은 우리가 동양인이니 당연히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여권의 국적도 확인 안 한 것인지) 나름 배려하여 중국인 직원을 배정한 모양이지만, 취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초짜 직원인데다 별로 똑소리 나지도 않는 사람이어서 리조트 이용 안내를 듣는 동안 짜증이 밀려왔다. 나는 중국어를 할 줄 알지만, 내가 왜 이 직원을 위해 중국어를 하면서 신랑에게 통역을 해 주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출발도 전에 녹초가 되어버렸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 곳에 도착하기까지 이미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이제 시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결혼을 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당황스럽다. 얼마나 멀리 갈지 알지도 못한 채, 결혼이라는 이름의 중대한 여행을 참으로 대담하게 결정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러나 우습게도 초짜 직원을 따라 도착한 우리 방은, 이 긴 여정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이 리조트에서 가장 저렴한 방이었는데도 말이다.
결혼하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