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잊고산다는 것.
온갖 SNS에 벚꽃사진들이 한창 업데이트 되고 있는 요즘이다. 사진을 보는 것 만으로도 이미 벚꽃비를 흠뻑 맞고 온 기분이 든다.
승무원이 되고 난 이후 벚꽃놀이는 사치가 되어버렸다. 한달의 반을 넘게 장거리 비행을 하고 그렇게 다시 베이스로 돌아오면 부족한 잠 채우기 바쁘다. 해외 나가서 쉬지 않냐고 하는 데 물론 여행도 하고 놀러도 다닐 때도 있지만 도착한 첫날은 너무 피곤해서 호텔에서 잠만 잔다. 그리고 자주 오는 스테이션 에서는 피곤함을 핑계 삼아 마트만 들렀다 호텔에서 쉬기만 할 때도 있다.
집은 잠시 머무는 곳일 뿐 몇일의 휴식 후다시 비행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요즘 친구들이 올려놓은 사진 속의 벚꽃들을 보며 난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도 뒤로 한채 너무 바쁘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비행은 체력전 이기에 휴식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비행을 하면 안그래도 좋지 않은 컨디션에 밤샘비행과 시차는 계속해서 악순환을 불러온다.
오늘 저녁 비행스케줄이 있으면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암막커튼을 치고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곤함으로 인해 잘하던 것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스스로 컨디션 조절을 하지 못한 비행은 나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승객들에게 까지 민폐이기 때문에 철저히 관리를 해야한다.
그런데 특히나 이렇게 꽃들이 곳곳에 만개하고 놀러가기 딱 좋은 날씨인 요즘은 비행을 준비한다는 것을 앞세워 봄을 포기한다는 것이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그래도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것들과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들에 대해 감사하려고 노력중이다. 무슨일이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주변의 외항사 승무원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모두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봄인데 겨울나라로 비행을 가 옷장 깊숙히 넣어두었던 코트를 다시 꺼내 짐을 꾸렸다는 친구. 봄날의 꽃들을 즐기려 벚꽃놀이 대신 가까운 꽃집에서 플로리스트 일일클래스를 신청했다는 친구 등등..
그저 주어진 상황안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즐겁게 봄을 즐기면 될 뿐.
나는 벚꽃놀이 대신 집근처에 새로 생긴 플라워 카페에 조용히 앉아 나만의 봄을 만끽했다.
내년 봄은 여유가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또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이번봄을 보내주기로 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남들보다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그래서 모든 순간순간들이 더욱 소중해졌으니까.
요즘따라 일이 많아서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봄을 즐기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느끼신다면 그 이유로 너무 속상해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올해의 봄을 포기한 대신 내년 봄에는 더 풍족하고 아름다운 봄날을 누리게 되실테니..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은 내년에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