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은 비행으로 힐링한다.
2016년 5월31일 입사 4주년. 작년은 동기들이랑 3주년 축하파티를 했었는데 올해는 다들 스케줄이 바빠 각자의 스테이션에서 그리고 나는 비행이 끝난 후 집에서 보냈다심지어 입사일 인것도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동기랑 메시지를 보내는 중에 알아챘다.
‘ 왜 이렇게 정신 없이 살고 있는 걸까’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서 인지 입맛도 없고그래서 인지 영 힘이 없고 축축 쳐지는 게 비행가는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는데 하필 나온 스케줄이 죄다 단거리에 퀵턴이라니.
사실 장거리보다 단거리 혹은 퀵턴 비행이 더 힘든 이유가 중간에 쉬는 시간도 없이 목적지에 도착 후 정신 없이 준비해서 랜딩 후 다시 준비해서 이륙을 하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도착하자마자 바로 출발이다. 10일간의 유급병가가 있기에 일주일간 딱 하루 비행을 하고나서 계속 병가를 내고 쉬었다.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던 비행이 왜 이렇게도 버겁게 느껴지는 지 4년만에 처음으로 아 이제 승무원 그만해도 되겠다 싶은 순간이 나에게도 왔다. 정말 얼마만에 겪는 무기력함 이던지...
귀하디 귀한 유급병가를 허무하게 보내고배정된 아침 비행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기에 새벽3시에 일어나 비행갈 준비를 했다.
집을 나서는 데 자이언티의 노래가사 처럼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싶을꺼야’ 라는 가사가 이렇게도 공감이 되다니. 그냥 그 노래의 모든 가사 그 자체가 내 마음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사람 마음을 꿰뚫는 가사를 쓰다니 대단하다 그 생각뿐이었는데, 나의 이야기가 될 줄이야.
그렇게 도착한 회사에서 브리핑 시작. 분위기가 오늘 따라 왜 이렇게 화기애애 한 지 사실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캐빈매니저의 몫이 큰데 몇 번 같이 비행을 해본 캐빈매니저 언니는 브리핑 할 때부터 시작해 기내에서 일할 때, 그리고 퇴근할 때까지 살갑게 말을 걸어줬고, 모든 팀원들이 그랬다.
그래서 인지 왕복 7시간이 되는 비행인데도 즐겁게 비행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이 한번에 확 풀리는 느낌이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매 비행마다 모든 팀원들이 다 잘 맞으면 좋으련만 사람끼리 하는 일이기에 복불복이다. 꼬이는 날은 한없이 꼬이고, 그런 날은 나갈 수만 있다면 비행기 문을 열고 나가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래도 4년 째 비행을 하며 작은 일들은 무뎌지기도 했고, 대처할 수 있는 노하우도 여러 개 생겨서 어렵지 않게 지나가는 편이었다.
어쩌면 4년간 일하면서 한번도 겪어 본적 없는 마음이기에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이 힘든 마음이 멋대로 날뛰며 휘몰아 치며 날 괴롭히고 있는데꼿꼿이 서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다. 빨리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온 마음으로 그 시간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에야 비행으로 지쳐있던 마음을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비행을 통해서 마음을 치유하다니 허무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나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단 것을 더욱 깨닫는 요즘이다.그래도 나름 긍정적인 마음하나 가지고 동기들이 하나 둘 타지생활이 힘들어 떠날 때도 좋은 생각만 하며 여기까지 버텨왔는데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건 아닌지, 그리고 완벽하게 잘 해야 한다 라고 다잡는 마음이 나를 스스로 더 힘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직도 정확히 내가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그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비행으로 다시 힐링 한 것은 분명하다.
비행하면서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을 비행을 통해 치유하다니 조금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천직인가 싶기도 하다. 언젠가 윙을 내려놓는 날이 온다면 많이 아쉽고 그리울 것 같은 마음이 벌써부터 든다이 마음 잊지 않고 지금 주어진 이 시간들을 더 즐겁게 보낼 방법들을 찾아보려한다.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해 봐야겠다.
같이 비행한 친구들에겐 그저 하루의 듀티였겠지만 스스로의 벽에 부딪혔던 나에게 힘을 주고 다시 비행에 대한 즐거움을 선사해준 우리 팀 친구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비행은 비행으로 힐링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은 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