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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화 Apr 10. 2020

세계인의 멸시를 받으며 꽃 피운 사랑

--존 레논 &  오노 요코

 음악에 아무리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yesterday'와 'let it be'등 주옥같은 명곡을 부른, 60년대 전설적인 롹그룹 ‘비틀즈’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60년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영국의 4인조 록그룹 비틀즈는 공식적으로 해체된 지 올해 딱 50년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팝의 세계에서 가히 신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룹, 비틀즈!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 조지 헤리슨, 링고 스타. 이 네 사람은 모두 영국의 빈민마을인 리버플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들로 태어나고 자랐다. 


 부모 없이 이모의 손에서 자란 존 레논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예술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 비틀즈의 멤버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자신이 그린 삽화가 들어간 두 권의 단편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비틀즈는 완벽한 팀웍을 갖춘 그룹이었다. 그들의 강한 유대감은 아내나 애인조차도 감히 끼어들을 수 없을 만큼 견고한 방어 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깨부수고, 결국 비틀즈의 해체에 결정적인 원인이 된 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존 레논의 연인 오노 요코다.   

   

♥ 우리가 서로를 이토록 뜨겁게 사랑하는데 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나요.


 한동안 오노 요코는 존 레논(1940~1980)의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경멸과 멸시를 당하는 여인이었다. 일본의 한 은행가의 딸로 태어난 오노 요코는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당찬 설치미술가 겸 전위예술가였다. 그녀의 전시회는 언제나 기발한 아이디어로 꽉 채워져 있었고, 어디를 가나 숱한 화제를 몰고 다녔다. 어쩌면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두 사람은 예술적 끼가 넘쳐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서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겼을 숙명적인 커플이었다.


 주로 뉴욕에서 활동한 요코는 존을 만나기 이전부터 아방가르드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였다. 그녀는 가난하지만 예술가라는 자부심으로 보헤미안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즐겼다. 

 요코의 전시회는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실험적인 것들로 가득해 관객들과 비평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며 전시관을 나오곤 했다. 그녀는 존을 만나기 전, 남편 토니 콕스와 ‘궁둥이’라는 제목의 기상천외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영화 속에서 365명의 남녀 엉덩이를 여과 없이 보여주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영화를 두고 당시 언론들은 ‘인간 모멸의 극치’ 라고 혹평을 가했다.


 존과 요코가 처음 만난 것도 그녀의 전시회였다. 4인의 비틀즈 멤버들 중에서 제일 아방가르드적이고 보헤미안적인 미술학도였던 존이 1966년 11월 런던 인다카 갤러리에서 열린 요코의 전시회에 나타난 건 어쩌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겉으로는 존이 친구의 초대로 전시회에 가 그녀를 우연히 만났다고 하지만, 혹자는 당시 돈 많은 후원자가 필요했던 요코가 존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그들은 첫 만남에서부터 소위 ‘feel’이 서로에게 꽂혔다. 두 사람 모두 가정이 있는, 한 아이의 아빠였고 엄마였고 배우자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8개월 후에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들을 축복해주지 않았다. 존은 두 번째 결혼이었고, 요코는 세 번째 결혼이었다.


 존은 요코와의 결혼 전에, 아내가 그리스로 여행을 간 틈을 타 그녀를 자기 집에 끌어들였다. 아내 신시어 레논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남편과 웬 못 보던 일본 여자가 모닝가운 차림으로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혼은 당연지사였다. 


 존이 요코에게 끌린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어릴 적 상처 때문이었다. 뱃사람인 아버지가 자주 집을 비우자 어머니는 아들이 세 살도 되기 전에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리고, 자식이 없던 여동생에게 아들을 맡겼다. 그나마도 존이 열 여덟 살 때 그의 어머니는 돌연 교통사고로 죽는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외롭게 산 그로서는 요코에게서 어머니한테 받아보지 못한 극진한 사랑과 모성애를 느꼈던 것일 게다.  게다가 일본 여인 특유의 순종스러움도 매력으로 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틀즈의 멤버 중, 가장 독보적인 존재였던 존 레논의 옆에 조그마한 동양여성이 따라다니는 걸 펜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이 팽배했던 시절이었으니까 . 

 콘서트에 요코가 나타나면 펜들은 병을 내던지고 거의 때려죽일 듯이 그녀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더군다나 이제까지 그 어떤 여자도 들어온 적이 없었던 녹음실에 요코가 들락거리며 음악에 대해 관여하자, 비틀즈의 다른 멤버들도 그녀를 경멸했고 질책했다. 


 하지만 존은, “그녀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여자의 머리에서 그런 생각이 나오다니 난 그녀가 말하면 나도 모르게 흥분되고 깜짝깜작 놀란다.”라고 감탄할 만큼 그녀에게  무한 신뢰와 지지를 표했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해도 항상 함께 했지만, 사람들과 언론은 여전히 그들 부부에 멸시와 저주를 퍼부었다. 

 그들이 하는 반전운동조차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해서 세계적인 록 그룹 비틀즈는 69년의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결국 1970년 4월에 해체되고 만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부탁한, 사상 유래 없는 10분 묵념

  당시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요코가 보여주었던 전위예술가적인 면모를 이제는 존과 요코가 함께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음반의 표지에 자신들의 전라 사진을 싣는가 하면, 영국의 유명 TV 토크쇼에 부부가 함께 출연해서는 흰 자루 속에 들어가 일본 대중가요를 신나게 부르기도 했다. 당시 언론은 이 일을 “진정으로 위대한 재능이 완전히 미쳐버린 것 같다”며 혹독한 악평을 했다. 그들은 또 마약에 중독되어 환각 상태에 빠져들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한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그들 결혼생활에도 영향을 주어 별거에 들어간 적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다시 화해하고 예전처럼 ‘전위적인 커플’로 다시 돌아가 두 사람만의 사랑을 꽃피웠다. 세 번의 유산 끝에 요코는 아이를 갖게 되었다.


 아들 숀이 태어나자, 존은 음악계에서 완전히 은퇴를 선언, 육아에만 전념했다. 존은 육아를 담당, 요코는 가정의 재무를 담당하는 가장의 역할을 맡았다. 존은 장장 4년 반을 아이 돌보는 재미에 푹 빠져 행복하고 자상한 아빠로 시간을 보낸다.


 1980년 10월, 존은 마흔 번 째 생일을, 숀은 여섯 번 째 생일을 맞아 요코는 가히 설치미술가답게 그들을 위한 축하 이벤트로 맨해튼 상공에서 비행기가 내뿜는 연기로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한 달 뒤, 5년여만의 공백을 깨고 존 레논의 새 앨범이 나왔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주가 채 지나지 않아, 존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자신의 새 앨범에 사인을 받아간 한 사이코 펜이 쏜 다섯 발의 총탄에 쓰러지고야 만다.  그는 존을 계속 스토킹한 자였다.


 요코는 남편의 죽음을 애도해 달라며 사람들에게 10분 동안의 묵념을 제안했다. 1980년 12월 14일 오후 2시, 추모식이 거행된 센트럴파크에 모인 30만 명의 펜들은 물론, 역사상 유래가 없는 10분 동안의 묵념이 전 세계에서 일제히 행해졌다. 


 인생은 짧으나, 예술은 길고 사랑은 더욱 더  굳세고 긴 것일까?  존 레논을 떠나 보낸 후, 오노 요코는 갖고 있던 재산을 정리해 자선재단을 만들었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뮤지컬을 만들어 순회공연을 하며 존 레논이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존과 요코, 그 두 사람은 과거에도 예측불허였다. 그래서 만일 존이 살아있다면 우리에게 어떤 음악을 들려줄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앨범은 비평가와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줄 예고편에 불과했다고 혹자는 말한다. 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게 영원히 어둠속으로 묻힌 것이  펜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뿐아다.

                                                               <글 : 홍지화. 소설가>

 


https://www.youtube.com/watch?v=A_MjCqQo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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