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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화 Dec 19. 2021

사도세자의 핏빛 로맨스

   --사도의 '의대병'

인터뷰어 :  방금 전에 잠시 ‘빙애’라는 후궁을 언급하셨는데요. 저하와 굉장히 아픈 로맨스가 있었다지요.  

    

사도세자 : 빙애…. 참 아프고 슬픈 이름이오. 참 가여운 사람이지요. 나를 만나서, 나 때문에, 나로 인해 죽은. 두고두고 미안한 이름이오. 성은 박씨였고, 이름은 빙애였소. 그 아이는 본래 할아버지 숙종의 셋째 부인인 인원왕후 처소의 침방 나인이었소. 어여쁘고 참으로 단아한 여인이었소. 사실 아내 혜경궁 홍씨와는 집안과 집안, 권력과 권력의 결합이었기에 애틋한 정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소. 

     

 그런데 내가 어느 날, 대비전의 부름을 받아 들었다가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했지 뭐요. 당시 왕실에서는 아무리 임금이고, 세자고 간에 웃어른의 나인에 손을 대는 일을 아주 엄격한 금기로 여기고 있었지만, 나는 빙애를 포기할 수 없었소. 내 세자자리와 목숨마저 걸 수 있을 만큼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원했으나 부친은 절대 허락지 않으셨소. 남의 이목을 그리 중시하는 분이신데, 그게 용납이 될 리가 없지.  마침 인원왕후가 세상을 뜨셨고, 국상 중에 빙애를 강제로 내 후궁으로 만들어버렸소.( 중략)     


 결국 이 사실이 부친의 귀에 들어갔소. 내가 강제로 빙애를 범했다는 소식, 그것도 작은 할머니의 국상 중에 그런 몹쓸 짓을 저질렀다는 말을 전해들은 아버지는 실망을 넘어서서 진노하셨소. 부친의 결벽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도,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을 테니까요. 나는 이판사판으로 빙애에게 세자의 후궁첩지를 내러주지 않으면 확 죽어버리겠다고 버텼소. 그래도 아버지는 눈도 꿈쩍 아니하셨고 끝끝내 허락하지 않아, 나는 보란 듯이 궁궐 안 우물에 몸을 던졌소. 다행히 곁에 있었던 환관들이 뛰어들어 내 목숨을 구했지만, 하마터면 죽을 뻔했소.  그 난리를 겪고 나자, 부친도 남의 이목도 있고 낯 부끄러워 빙애를 내 후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소. 이후 빙애는 특별상궁에 임명 되어 종6품 벼슬까지 얻었소. 나는 빙애를 총애했고, 1남 1녀를 낳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소.  정말 그녀와 보낸 시간은 내 인생 중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었소. 지금 생각해도 꿈결같이 느껴지오.       


 인터뷰어   그런데 그 절대적 사랑이 왜 핏빛 살생극으로 끝난 건가요?


 사도세자   바로 ‘용포’ 때문이오. 대리청정 중 의사 결정의 두려움과 아버지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소. 사사건건 내 탓만 하는 아버지와 시험하듯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는 신하들, 내 편은 단 한 사람도 없었소. 날씨만 궂어도 내 탓이고, 아버지께 어떻게 하면 안혼날까, 싶어 하루는 아버지께 물었소. 내가 어찌해야 안혼날 수 있는지. 그랬더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며 또 엄청 혼났소. 그렇다보니까 용포를 입고 궁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내게 엄청난 공포였소. 용포를 입는 순간, 세상은 지옥으로 변했소. 그리고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졌소. 한번 입은 용포는 절대 다시 안 입었고, 불에 태웠소.  (중략)     


 아내 혜경궁 홍씨조차 내가 던진 물건에 맞아 이마가 찢어졌소. 그녀는 내 이 런 행동을 두고 ‘의대(임금이나 왕비, 세자, 세자빈이 입는 옷) 병’이라 이름을 붙였더군. 빙애가 후궁이 되고 나서 내게 용포를 입히는 일을 그녀가 도맡아 했소. 정신이 분열되기 직전의 폭력과 공포는 오롯이 빙애의 몫이 되었소. 빙애는 내게 용포를 입히는 동안 갖은 폭력에 시달려야 했소. 옷을 입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발작 증세를 일으켰고, 발작이 시작되면 주변의 나인들과 환관들을  마구잡이로 잡고 때렸소. 그래도 분이 가라앉지 않으면 죽도록 매타작을 했소.      

 그런데 강직한 성품의 빙애는 아랫사람들을 지키고자 매번 나를 가로막았고, 내가 휘두르는 폭력을 홀로 감당했소. 그리고 내게 바른 말, 듣기 싫은 말을 하며 다그쳤소.  (중략)      


 빙애가 끼어들어 나를 말리자, 내가 빙애에게 그 폭력을 다 휘두른 거요. 무자비하게.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앉자, 빙애가 낳은 아들 찬을 연못으로 던져버렸소.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소. 미친 거지. 그것도 아주 더럽게 미친 거지요. 아비도, 사람도 아니었소.  다행히 찬이는 나인들이 구해 낸 덕분에 살았지만, 광기의 폭력을 혼자 다 받아낸 빙애는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소. 지금 참회하고 후회를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지만, 그 당시의 나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소. 내가 그토록 사랑한 여인을 내 손으로 때려죽인 광기의 살생극이었소.  (중략)             

             

  <한국의 역사인물 가상인터뷰집/ 홍지화 / nobook/ 2021,12. >  사도세자 편 중 일부. 




홍지화의 저서 <한국의 역사인물 가상인터뷰집>은 한 권으로 떼는 한국사 참고서이자 교양서입니다. 쉽고도 독툭하며 재미있게,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읽히는 책이라는 독자들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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