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작가 이상의 소설「날개」의 처음과 끝부분입니다. 작가 이상(李箱: 1910.09.23.~1937.04.17)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참 많지요. 한국문학의 돌연변이, 한국문학사의 이단아, 근대문학의 마침표이자 현대문학의 시작, 한국 시사(詩史) 최고의 아방가르드 시인, 한국 현대시 최고의 모더니스트, 한국의 보들레르 등등. 즉 이상의 등장 자체가 한국 현대 문학사상 최고의 스캔들로 통합니다. (중략)
스물 일곱해의 짧은 생을 살았던 그의 삶은 마치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불 행의 축소판을 모두 보았던 불운의 사내였습니다. 그럼 이 자리에 이 상 작가님을 모시고 왜 그런 불행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 자세 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어 안녕하세요. 이상 작가님.
이상 안녕하시오.「날개」와 「오감도」의 작가 이상이요. 반갑소. 요즘 젊은 친구들은 방가방가라고 한다지요. 방가방가.
인터뷰어 후대인들은 금홍이란 인물에 대해 ‘천재 이상을 단명 시 킨 팜므파탈’로 생각하는데요. 이에 대해 금홍이 대신 항변하신다면?
이상 금홍이가 팜므파탈이라고? 허허, 듣다보니 별 소리를…. 솔직히 그럴만한 여자가 못되지 않나? 동거 초기에는 우리는 여느 신혼부부처럼 함께 산책도 다니고 사이가 아주 좋았소. 내 일생에 있 어서 금홍이랑 함께한 날들이 가장 행복하고 안정되었소. 만 스무 일 곱 해의 생애에 있어서 교제한 여자가 금홍이 외에도 똑똑한 신여성 이 두 명이나 더 있었지만 영혼 깊숙이 각인된 것은 금홍이였소. 금홍이를 만나기 이전의 나는 자폐성이 강한 사람이었소. 몸집만 어른이었을 뿐, 내 자아를 세 살 때 백부의 집으로 입양될 즈음에 가둬버 렸기에 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었소. 금홍이는 어른이 아직 되지 못한 내 잠재적인 인격과 나름의 정체성을 찾아 자기 식으로 길들였소. 그게 육체적 관계였든, 가학적 관계였든 뭐든 간에. 암튼 금홍이 와 함께일 때 비로소 나는 ‘입양아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소 ……(중략)
--홍지화 /「한국의 역사인물 가상인터뷰집 (2021)」/ nobook/ 이상 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