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노동착취를 목격하다!
이 영화가 이렇게 오래된 영화인 줄 까맣게 잊고 있었다.
10년 전 영화라니.
세월은 진짜 무상하게 흐른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막판에 피까지 팔아가며 생활을 연명해야 했던 주인공의 모습이 처량해 심장까지 먹먹했었다.
일주일 전 남편이 갑자기 보자고 들이민 영화가 이 영화였다.
제목을 보자 피 빼는 장면이 뇌리를 스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이 사는 부부. 스멀스멀 옆에 앉아 같이 어느덧 나도 영화를 보고 있다.
신기하게도 다시 본 영화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가슴만 먹먹했던 그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는 그대론데 나의 관전 포인트가 달라진 것이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인간승리의 드라마라는 사실은 그대로이다. ^^
영화를 보고 난 뒤 결국 주인공들이 "Happily ever after"된 사실보다도 금융회사의 인턴쉽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20명을 6개월 간 무급으로 업무를 배우게 하고, 일을 시키고, 심지어는 1명만 정식으로 계약한다는 어마 무시한 노동착취!
아마도 내가 직장인으로 생활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럴 수도.
맘에 안 드는 인턴쉽이다. 거기다 더 심한 것은 그 회사에 떨어지고 난 후엔 동종업계로 취업도 못한다는 사실. 회사 내 기밀이 세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 것 같다. 저건 또 뭔가. 결국 자기네 회사의 기밀은 울트라 캡숑 중요하며, 6개월간 헌신한 (그것도 무급으로!) 직원들의 시간과 인생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한단 말인가?
다른 회사로도 못 간다면 6개월 동안 갈고닦은 스킬은 결국 똥 되는 것이고, 열정 페이라는 명목 하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또 뭔가. 지금도 금융회사에서 저런 식으로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인간적이지도 않고,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또 저런 회사는 절대 잘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우리는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싶나?
좋은 회사는 어떤 회산가?
회사가 직원을 위해 존재한다는 개뻥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구직하는 사람들을 이용하는 나쁜 짓을 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뭐 남의 돈 버는 게 원래 쉬운 일은 아니지만, 슬프게도 세상의 과반수 이상이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을 하며 산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없는 것도 억울한데 착취까지 당해서야 쓰겠냔 말이다.
한 달 전쯤 회사의 보너스 정책 회의가 있었다.
유럽에도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모두 다 불러놓고 대 놓고 비정규직은 보너스가 없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정규직이다. 그러나 굳이 이렇게 보이지 않는 레벨을 만들 필요가 있냐는 거다. 어차피 주지 않는다고 결정한 거면 비정규직은 그냥 부르지 말일이지 회의실까지 뭐하러 부르냐는 거다. (내 생각에 그들이 안 불렀다고 항의하진 않을 것이다.)
남편 회사의 비정규직들은 1년마다 한 번씩 계약을 연장해서 휴가 일수는 그냥 매년 20일이라고 한다. 이건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다. 정규직들은 휴가가 이월도 되고 쌓이기도 해서 그 날수가 늘어가지만 비정규직은 일을 정규직보다 잘 해낸다고 해도 짤 없다. 보이지 않는 선, 바로 당신이 가진 계약서. 썩을. 다 똑같은 인간인데, 기업이 돈 좀 아껴보자고 만들어 낸 이 계약 타입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만든다. 물론 일을 더럽게 못하는 직원들도 있고, 회사로서는 손실을 최소한으로 낮춰야 한다는 입장,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뭔가 가슴 한구석이 쓰리다. 드라마 미생에서 봤던 것처럼. 직원의 계약에 따라 설 선물이 달라지고 급여가 달라지고 결국엔 그런 것들이 쌓이고 싸여, 결국 우린 다 같은 사람임에도, 마치 원래 이래야 하는 것처럼, 계급이란 이름으로 석화되어 버릴까 봐 무섭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좀 이상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자녀에겐 인간을 배려한 또 인간 중심의 완성된 사회에서 살게 해주고픈 철없는 엄마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