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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Jan 02. 2021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

팬데믹 에세이 03ㅣ 마스크 없이 누릴 수 있는 바깥 공간이 있다는 것


목요일, 서둘러 일을 마치고 가방을 챙겼다. 잠옷과 간단한 세면도구, 노트북과 책을 넣고 마지막으로 2020년 다이어리를 깊숙이 집어넣었다. 새해는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맞이하고 싶었다. 익숙한 고민과 생각이 먼지처럼 쌓인 이곳을 떠나야 같은 하루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부모님이 계신 시골로 가기로 했다. 유달리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이었다. 집에서와 똑같이 누워있고 핸드폰을 보다가 음악을 듣고 책을 읽어도 시골집에선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어떤 걸 해도 그곳에선 지금을 살고 있었다. 더불어 설날이며 추석 등 가족 명절을 피하는 불효 막심한 딸이었기에 부모님을 만날 날을 따로 빼두어야 했고 그게 새해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지 못했음에도 마스크를 벗고 밖에서 식사하는 게 염려되어 주린 배를 붙잡고 고속버스를 탔다.



사람보다 하늘을 간간이 날아다니는 새가 더 많은 거 같은 작은 시골 마을에 부모님은 살고 있다. 2년 전, 그들은 그동안 벌어온 돈을 모아 시골집을 사서 내려갔다. 부모님의 집은 집 안보다 집 바깥이 더 넓다. 특히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곳에 아늑한 마당이 있다. 이곳에 오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던 내게 바깥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마당이 있다는 것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코와 입을 가리지 않고 바깥을 걷는다는 게 생각보다 더 자유로웠다. 마스크가 익숙해 이제는 답답하지도 않다고 느끼던 요즘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자유로운 마당에서 새해 첫날, 오래오래 눈이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눈의 냄새를 맡고 온 얼굴에 내리쬐는 햇빛을 그대로 느꼈다.



그러고는 난생처음 아빠와 눈사람을 만들었다. 마당 이리저리를 쭈그리고 앉아 눈을 뭉치고 굴렸다. 숨이 찼지만 헐떡거리는 숨소리보다는 손이 아프게 시려오는 촉감이 강렬했다. 해가 진 밤에는 불쑥 잠옷바람으로 밖을 나가 이웃집에서 태우는 장작 냄새를 맡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코로나도 비켜난 거 같은 이곳에선 잘 모르는 별자리를 그려볼 수 있었다.



어릴 , 엄마가 이사할 집을 찾을  부동산 뉴스에 한껏 귀를 기울였었다. 어디에 지하철역이 생길 예정인지 어떤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지 확인했었다. 엄마를 보며 집을 구할  이런  신경 써야 하는 거구나 배운  있다. 팬데믹 시대에 마당이 있는 시골에 사는 그들을 보며  집을 찾을  어떤 것이 필요한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내가 편히 누릴  있는  바깥 공간이 있는지, 주변에 산책할만한 길이 있는지, 지하철이 없어도 차가 다닐 길은  정리되어있는지,  안에서도 하늘이 보이는지. 어쩐지 ''보다 '산다'라는 것에 눈을 맞추며 새해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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