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셰'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기이자 성장기를 남겨봅니다
2021년 10월, 원포셰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브랜딩 이름, 슬로건, 비전과 미션 그리고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할 수 있어!'와 '해낼 수 있을까'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누구나 경험만큼 성장하니까, 여기 그 성장의 기록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흥미로운 공간의 브랜딩 제안을 받다
프로젝트의 제안은 같은 조직에서 일하지 않지만 서로를 동료라고 부르며 일 경험을 나눴던 분이 주셨어요. 1년 가까이 서로의 일에 관심을 가지며 응원하던 사이였는데 같이 일을 하게 된 것이죠! 참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제안해주셨던 팀은 브랜딩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브랜드를 키워나가기 위해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어요. 그 발판을 공간으로 해나가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새로 준비하는 공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필요하다고 제안을 주신 것이죠. 그런데 재밌는 설명들이 덧붙여졌어요.
"'안드레 램돈크'라는 사람이 반영된 공간을 만들 거예요."
"커피를 제공하지만 단순한 카페는 아니에요. 여긴 사적인 공간이지만 공적인 공간이에요."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이를 잘 풀어가면 그 안에 브랜드의 모습이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깊이 숨겨진 보석을 찾는 마음으로 찬찬히 모래를 걷어내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브랜드를 찾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다
모든 답은 브랜드 자신에게 있다고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보석과 같은 답을 찾기 위해 브랜드를 만드는 분들과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했어요. 기초적인 브랜드 조사를 마치고 18개 정도의 인터뷰 질문을 준비했어요. 이 질문을 정리하는 것도 꽤 시간이 필요했는데요. 이를 통해 브랜드가 어떤 세상을 꿈꾸고, 뭘 말하고 싶은지 찾기 위해 신경 썼습니다. 일부 질문을 공유하자면,
・ 왜 사람들에게 '안드레 램돈크'를 소개하고 싶은가요?
・ 수많은 공간 중에 꼭 이곳에 찾아와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 공간이 왜 이곳에 위치하나요? 이 지역과 브랜드가 어떻게 연결되나요?
브랜딩 관련 인터뷰 질문을 공유해드렸는데, 아무래도 다들 바쁘고 생각 정리도 필요하다 보니 글로 적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 나눌 5~6분이 모여서 같이 이야기했어요. 만나서 이야기하니 좋은 점은 답변 사이사이 추가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이해가 안 되는 건 바로 물어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리고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감정, 경험과 분위기를 몸소 느낄 수 있었어요. 브랜드는 사람이 만드는 일이기에 그들을 이해하는 시간이라 좋았어요. 인터뷰는 3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브랜드가 사람으로 느껴지도록,
본격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상
그 후 같이 나눴던 질문과 답변을 계속 읽으며 경쟁자 혹은 레퍼런스를 삼았던 브랜드도 조사하고 직접 경험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상을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정리하게 되는 건 '비전'이에요. 이는 브랜드가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브랜드의 존재 이유, 목표를 의미합니다. 그다음으로 '미션'을 잡았어요. 이는 브랜드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건지를 말하죠. 비전과 미션은 대체로 1~2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는데요.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적으려면 부수적인 군더더기는 다 떨어뜨려야 해요. 핵심 중의 핵심을 건져 적합한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다음으로 사람에 대해 생각했어요.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가"
"이 브랜드는 어떤 사람인가"
브랜드를 생명체로 정의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매력적인 브랜드는 고유한 한 사람으로 다가온다고 여기기 때문에요. 실제로 생명이 없는 걸 사람처럼 느끼게 하려면 내부적으로 꽤 디테일한 설정과 이를 통일성 있게 지켜나갈 힘이 있어야 해요. 이를 찾는 과정에서 브랜드가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래서 이 브랜드는 누구이며, 서로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구상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브랜드 이름과 슬로건, 브랜드 스토리를 작업했어요. '브랜드'라는 사람과 브랜드가 만나는 사람을 계속 떠올리며 매력적인 이름을 찾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슬로건과 스토리를 잡아나갔습니다. 지금 돌아봐도 이름을 찾는 일은 참 어려웠어요. 이 어려움은 최종적으로 브랜드명이 결정될 때까지 이어지죠. 이름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뇌 한쪽 구석이 계속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이때의 친구는 '사전'입니다. 한국어, 영어, 안드레 램돈크가 썼던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를 찾아나서고 새롭게 조합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으로든, 함축적으로든 담긴 뜻이 중요하니까요. 사전에 적힌 여러 의미를 살피고, 유의어 그리고 반의어도 체크했어요. 이럴 때는 인터넷 사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잘 전달하는 구상안 만들기
브랜드 아이덴티티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크게 1차안, 2차안, 최종 등 총 3개의 구상안을 작업하고 공유했어요. 이 과정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도구가 되는 구상안에도 신경을 썼어요.
깔끔한 디자인과 함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잘 이해될 수 있게 적절한 이미지를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담고 있는 의미와 이유, 의도에 대해서 최대한 설명하려고 했어요. 그 덕분에 모두가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논의를 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구상안을 전해드릴 때마다 피드백을 나눴는데요. 그러면서 브랜드가 어떤 모양인지 명확하게 찾아나갔던 거 같아요. 당연히 그 답을 한 번에 찾기는 힘들었죠. 1차안으로 총 3가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2차안으로 총 2가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두고 고민했어요. 다행히 2차안에서 모두가 만족스러운 이름을 결정하고 최종안은 전체적으로 다듬는 작업을 했습니다.
순수한 관계를 담은 하나의 포켓,
ONE POCHE
결정된 브랜드의 이름은 '원포셰'입니다.
ONE POCHE
Inspired by Andre Raemdonck
'ONE'은 하나, 첫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POCHE'는 주머니인 pocket의 프랑스어입니다. 안드레 램돈크 콜렉터는 장난감을 사랑해서 장난감 박물관을 운영하고, 이를 매개로 사람들과 순수한 관계를 맺어온 분이었어요. 그는 항상 주머니에 장난감 태엽, 구슬 등을 잔뜩 넣으면 언제든 장난감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었어요. 그렇기에 매우 상징적인 주머니를 그가 주로 쓰던 언어인 프랑스어로 표현해 보여줬어요. 그리고 직관적으로 그에게 영감받아 만들어진 장소임을 보여주기 위해 브랜드명과 함께 inspired by Andre Raemdonck 을 명시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잘 모르는 그를 인식시키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했죠.
'원포셰'는 '순수한 관계를 담은 하나의 포켓, 하나의 장소'라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때문에 이곳에서는 우리가 쉽게 잊고 지내온 순수한 관계를 떠올리며 경험해볼 수 있어요. 안드레 램돈크 콜렉터가 남긴 헤리티지를 발견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고, 가까운 사이라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보는 것.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서 재미있는 모임이나 프로그램도 열린다고 해요.
좋은 장소는 좋은 하루를 만든다
여러 브랜드를 만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고가는 오프라인 공간에 이름이 간판으로 올라가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어요. 며칠 전, 시음회를 다녀오며 직접 공간을 가봤는데요. 우리가 그동안 나눴던 이야기들이 견고한 공간으로 구축된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텅빈 공간이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콜렉터의 헤리티지가 이곳저곳 녹여져 있구나' 하며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에스프레소의 맛에 눈을 떴어요. 단순히 쓸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아니었어요. 저는 10번을 저어 달고 깊은 초콜릿 맛이 나는 에스프레소를 먹었는데, 기분이 절로 좋아지더고요. 원포셰에서 좋은 분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고, 근처 양재천을 걸으면 저무는 햇볕을 즐겼어요. 지금도 그 날이 생생해요. 1월에 시음회가 있고, 정식 오픈은 2월이라고 하니 여유로운 어느 날, 원포셰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원포셰' 브랜드 아이덴티티 프로젝트는 제게 '할 수 있어!'와 '해낼 수 있을까' 사이에서 할 수 있다는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그리고 자신의 일을 애정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는 분들을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또 멋진 협업을 한 프로젝트였어요.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며 힘을 합쳐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으니까요. 이 경험으로 제 일을 더 사랑하게 된 거 같아요. 앞으로도 멋진 분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