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대해 계속 말하고 싶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지난 연말이었던 어느 날, 같이 사는 남동생들은 부모님 집에 가있었다. 혼자 집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콸콸 물소리가 났다. 가끔 윗집소리가 넘어오기도 하니 그런가보다 넘겼는데 어쩐지 소리가 너무 컸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보니 작동하지 않고 붙어있던 오래된 라디에이터 밑으로 뜨거운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당황했다.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도 모르고 검색창에 ‘화장실 물', ‘고장난 라디에이터' 등을 쳤다. 안 되겠다 싶어서 이 상황을 영상으로 찍어 시골에 있는 아빠에게 보냈다.
“아빠. 카톡 보냈는데 화장실 라디에이터에서 물이 나와. 왜 이런 거야?”
“그러게 이상하네. 관리사무소에 연락해봐.”
“집에 나 혼자 있잖아…아 진짜…”
“아빠가 전화해줄까?”
“아..있어봐..관리사무소 전화번호 찍어서 보내줄게.”
아빠가 전화한다고 내가 혼자 있는 게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가 연락하면 누가 있겠거니 은연중에 생각할 수 있으니까. 굳어진 얼굴로 자꾸만 빨라지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전화번호를 아빠에게 전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빠는 곧 관리사무소에서 사람이 온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옷을 챙겨입었다. 온 집에 불을 켜고 핸드폰을 손에 꼭 쥐었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곧 온다던 사람은 1시간이 지나서야 우리 집에 왔다. 중년 남성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두려운 마음과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싶어서 핸드폰 녹음기능을 켜고 왜 이런 건지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같이 확인해야 할 게 있어 화장실 공간에 들어갈 땐 생존 레이더가 작동하며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번쩍거렸다. 그는 문제를 살피더니 물이 나오는 건 라디에이터가 문제고 이건 개인 자산이니 관리사무소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임시방편으로 물이 나오지 않게 온수랑 난방 밸브를 잠그고 그는 떠났다. 다시 혼자 남은 집. 관리사무소 직원이 우리 집에 있던 시간은 10분 남짓, 허나 몸과 마음은 1시간 이상 긴장해 여기저기 삐거덕거렸다. 굳었던 나를 한참 풀어내고 난방 꺼진 방에서 편치 않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니 바닥은 차가웠다. 수면양말을 꺼내 신고 도톰한 맨투맨에 방한 조끼도 겹쳐 입었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데 한겨울에 난방이 안 된다니. 얼른 동생이 와서 수리기사님을 부르길 기다렸다. 첫째 동생은 부모님 집에 더 있다가 온다고 했고, 막내 동생이 늦은 오후 집에 도착했다. 속마음으로는 오자마자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랬는데, 동생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동하느라 지친 거 같았고 다음 날 출근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친구들과 게임을 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하겠지 믿으며 참고 참았다. 그렇게 4일 지났다. 그날은 동생이 재택을 하고 있었고, 난 그에게 수리업체에 연락하라고 했다. 그러자 동생은 직접 고쳐보겠다고 시도하다가 집 근처 상가 수리업체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온 동생의 손엔 업체 명함이 들려있었다.
“뭐래? 얼마래? 약속 잡았어?”
“한 20만 원 정도 들 거 같대. 약속은 안 잡았는데 여기 누나가 전화해봐.”
“아니. 너랑 시간 맞춰야 하니까. 네가 연락해”
“나 이제 재택 없어가지고 시간 안나. 누나가 집에 있으니까 해봐.”
“재택 안 하면 휴가를 내던지 반차를 내서 해. 무슨 여행 간다고 맨날 휴가 내더니 이건 왜 안돼?”
“아니... 그거 잠깐 와서 수리하는 건데 좀..” 하며 동생이 귀찮다는 듯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나도 이렇게 안 하고 싶지. 내가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니야!”
동생이 ‘누나가 전화해봐’라고 할 때부터 분노가 치솟았고 마지막은 거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꺼이꺼이 소리내고 싶었는데 참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내가 이 문제로 이렇게 큰 화가 날 줄은, 눈물까지 흘릴 줄은 몰랐는데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별거 아닌 일상이 자주 내겐 별 게 된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화장실 가는 걸 참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올 때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를 줄인다. 집 현관문을 열기 전 복도를 여러번 두리번거린다. 편하게 택시 타고 가라는 말에 속으로 ‘택시는 편하지 않은데' 라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몸을 고생시켰다. 문 앞에 두고 가는 배달 요청이 자연스러워지기 전까진 동생에게 대신 받아달라고 했다. 매년 여름밤이 되면 산책하는 게 너무 좋은데 혼자서는 편하지 않아 근처에 친한 친구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곤 한다. 이 모든 게 내가 나이기 때문이었다. 쉽게 혐오와 폭력의 대상이 되는 여성이라 몸을 사리고 혹시나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이런 불편한 일상과 그 이면의 커다란 두려움을 껴안고 꾹꾹 참아왔는데, 결국 라디에이터 고장으로 불붙어 무섭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사실은 제일 두려운 것이 성폭력이라는 걸 말하지도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그 두려움을 모르는 동생이 미웠다. 그토록 공감 능력이 바닥인 건지, 주로 집에서 일하는 내가 왜 굳이 동생에게 수리기사님 약속을 요청하는지 그 이유를 정말 모르는건지 답답했다. 이기적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이 아니니까 모른 척하는 건지 화가 났다. 이 두려움을 몰라도 외면해도 잘 사는 동생이 부러웠다. 그와 동시에 나를 유난스럽고 과민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리고 나도 나에게 이런 생각을 했다. 네가 이러는 건 피해망상이라고, 네가 너무 과한 거라고, 모든 남성이 성폭력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왜 일어나지도 않은 최악을 상상하는지, 추운 겨울 더 추워진 집을 고치지 못하고 며칠을 견디는지. 나도 나를 한참 망가진 사람으로 여기며 미워했다. 스스로를 부족한 존재라고 비난했다.
6년 전, 2016년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근처 공용화장실에서 여성이 살해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되곤 한다. 당시 밖에서 화장실을 가는 걸 극도로 피했고 친한 친구가 화장실에 갈 땐 서로 핸드폰을 손에 꼭 쥐어주며 살아돌아오라고 농담 섞인 진담을 건넸다. 그 사건은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겨 여성혐오 범죄에 예민한 레이더를 갖게 했다. 그렇게 매일 기사로 쏟아지는 일상 속 여성혐오 범죄사건을 마주했다. 그들의 일이 내가 학교 가는 버스에서,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새로 갔던 동네 치과에서, 같은 직장 동료에게 받은 성희롱・성추행 피해경험과 겹쳐졌다. 그리고 2018년 성범죄를 고발하는 미투운동, 2019년 설리와 구하라의 사망,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박원순・오거돈 권력형 성범죄 사건을 온몸과 마음으로 겪어냈다. 사회적으로 굵직한 일만 짚어도 할 말이 많아지는데, 기사화도 되지 못하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범죄와 폭력을 생각하면 답답해서 가슴을 치고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쉬는 날들이 많았다.
이 구조적 차별을 겪으며 쌓아온 ‘두려움'이라는 내 감정은 동생이 착각하는 현실과 맞지 않기에 과잉반응이 되었다. 그 시선을 난 느꼈고 스스로도 사회에서 내뱉고 방치하는 혐오의 말을 내면화해 내 감정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했다. 허나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과잉반응도 피해망상도 아니다. 여자라 두려워하고, 숨고, 피하게 만드는 안전하지 않은 세상이 만든 것이다.
동생에게 묻고 싶다. 내가 불편하게 사는 일상에서, 두려워하는 세상에서 넌 어떻게 살고 있는지. 왜 넌 잘못된 세상에 대해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는지 물어보고 싶다. 울고 있는 나를 당황스럽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뭐가 두려운지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이런 사회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내 안에 마주치고 싶지 않은 깊은 두려움을 계속 말하고 싶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안전하지 않은, 차별적인 사회의 문제라고. 나만 이런 게 아니라 많은 여성이 긴장과 불안 그리고 공포를 안고 일상을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를 본 또 다른 사람도 자신의 가진 두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계속 말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