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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dden Designer Aug 18. 2020

#6 디자인 또한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다.

로고 교체 사례로 보는 결코 가벼워서는 안 될 디자인 의사결정.

최종 디자인은 결국 의사결정의 산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디자인의 최종 의사결정은 디자이너가 아닌 경영자(기획자)가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로고 교체 이야기로 디자인을 바꾸는 이유와 그 과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지금 로고도 충분히 의미도 좋고 괜찮은데 왜 디자인을 바꾸려 하는 거죠?"


12년 봄, 지도 교수님 손에 이끌려 찾아간 한 공공기관(구체적 설명은 피하겠습니다) 로고 교체 프로젝트 첫 회의에서 교수님께서 해당 기관장께 물어본 질문이었다. 교수님 말씀 그대로 왜 바꿔야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정말 괜찮은 로고였다.


"뭐... 기존 로고도 나온 지 꽤 됐고, 2년 전에 새롭게 출범했는데 대내외적 refresh 차원에서..."


그 프로젝트를 약 반년 정도 하면서 깨달았다. 디자인이 얼마나 수단에 불과한지... 5명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수백 가지의 안을 가져가도 기관장은 맘에 들어하지 않았고 회의에 참석한 참모진(?)들은 기관장 눈치만 보느라 의견을 물어봐도 별말씀들이 없었다. 결국엔 해당 기관의 성격 그리고 공공 측면 둘 다 해당되지 않는 단지 기관장 입맛에 맞춘, 마치 디자이너가 작업하지 않은 것만 같은 생뚱맞은 디자인으로 의사결정받아 완성하게 되었는데 2016년 하고 2020년 일련의 사태로 해당 공공기관이 TV 뉴스에 나올 때마다 보이는 그 로고를 보고 있노라면 참... 그때 작업했던 스케치들을 다시 꺼내어 보아도 더 좋은 안들이 참 많았고 분명 설득과 회유에 최선을 다했지만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그게 좋다는데... 어쩌겠어하고 말게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인천국제공항 로고 교체 논란을 보면서 위에 설명한 12년도 프로젝트와 오버랩이 많이 되었다. "개항 20주년을 맞아 브랜드 체계 전반에 대한 검토 용역"이라고 했으나 명분부터 애당초 잘못된 시작을 의미하지 않았나 싶다. 국내 K 모 자동차처럼 그간 로고에 대한 불만 의견도 딱히 없었을뿐더러 역으로 생각해보면 '20년 동안 잘 써온 로고'를 굳이 바꿔야 하나?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결국엔 대표가 새롭게 취임함으로써 조직에 대한 refresh, 그리고 '20주년'이라는 명분하에 재직기간 중의 업적을 위한 무리한 추진이 아니었나 조심스럽게 분석해본다. 반대 의견으로 '나쁜 디자인'이라며 상세분석과 함께 몇 가지 조형적 이유를 설명했는데 '미'적인 부분은 각자 개개인의 취향 문제이니 그렇다 쳐도 여기서의 진짜 문제는 '공기업, 공공기관이 대표 개인 취향에 맞는 디자인으로 로고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부분이 더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기업이야 당연히,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의 owner 대표라면 개인 취향에 맞게 로고나 디자인을 고르고, 바꾸고, 의사 결정해도 된다. 그것이 정말 별로라고 하더라도 평가는 대중의 몫이고 특히 소비재 업종이라면 매출이라는 냉정한 지표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공기업, 공공기관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로고 제작 비용에 더해 로고가 들어가는 모든 제작물 변경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고 전반적으로 세금으로 운영이 되기에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 아닐까?


얼마 전 내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의 S구도 로고 변경이 진행되었다. 이웃 K구도 새로운 슬로건과 함께 바뀌었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재임을 노리던 기존 구청장을 누르고 새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전 구청장들의 잔재를 바꾸고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과 구민들에게 가장 눈에 띌 수 있는 방법은 '보이는 것'에 대한 변경이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좋고 나쁨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그 또한 세금으로 하는 만큼 변경 이후에 기대효과나 미래에 더 큰 효과를 줄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는지 묻고 싶다.


로고 교체를 통해 대내외적 refresh 하고 싶다던 그 기관장님은 과연 임기중 refresh에 성공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2020년 8월 현재 그 로고는 8년의 수명을 끝으로 몇 달 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2012년 로고 변경 의사결정을 내렸던 기관장님은 퇴임한 지 오래. 이번에 새로 바뀐 로고만큼은 혹여 이전과 같이 개인의 취향에 의해 결정되었을지라도 부디 또 다른 개인의 입맛에 가볍게 휘둘리지 않고 오래오래 가서 하나의 '유산'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디자인은 결코 가벼운 의사결정으로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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