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dden Designer Dec 30. 2020

#7 악법도 법. 디자인도 법을 따라야 한다.

디자인에 제약이 되는 법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좋든 싫든

#CASE 1 - 디자이너였던 나

"ㅇㅇ씨, 성분 표시는 최대한 작게 넣자. 미관상 별로고 솔직히 소비자들 잘 안 보잖아?"

화장품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내가 제작하는 디자인에 대해 의사결정을 내려주시는 부대표의 요구였고 이에 맞춰서 준비했다.


"이것보다 더 작게!"

그래서 준비된 3pt 글자. 샘플을 뽑았을 때 글씨 읽기가 힘들 정도로 너무 작아서... 이래도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은 문득 하긴 했었는데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디자이너로써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식약처에 상품등록을 위해 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성분 표시는 5pt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도 '권고' 사항이 아니라 '법'이었던 것이다. 즉 5pt로 맞추지 않으면 상품 출시도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그간 가게 간판이나 회사 로고, 명함 제작, 팸플릿 등 법의 법의 테두리에서 크게 제약받지 않는 작업들을 해오다가 막상 한 공산품 디자인을 담당하다 보니 해당 상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 위 사례 외에도 상당히 많은 법과 규율을 충족시켜야 함을 느꼈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하에 그런 법들이 적용되었는데 한편으론 ‘소비자의 관심’을 이끌 수 있게 하는 디자인을 하는 데 있어서 발목을 너무 많이 잡는다랄까... 많이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CASE 2 - 기획자로써의 나

2년 뒤 나는 다지이너에서 금융회사의 기획자로 바뀌어 있었다. 회원 대상 행사 기획, 회원들에게 나가는 월간 소식지 기획 등 다양한 기획 속에서 소소하게 디자인 방향을 잡아 디자이너에게 요청하던 와중에 상품 패키지 리뉴얼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가장 긴밀하게 디자이너와 협력할 일이 생겼던 것이다. 이전에는 내부 행사이거나 내부적으로만 도는 제작물들이라 소위 말해 회사 내 윗분들의 입맛에만 맞추면 되었고 그들의 추상적인 생각들을 해석해서 디자이너에게 전달해주면 되었는데 상품 패키지 리뉴얼 같은 경우 회사 외부의 관계 당국 승인이 필요했고 그에 맞는 법과 규정이 존재해 이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나 패키지 컨셉을 '책'으로 잡게 되어 이전과 다르게 규정상 광고로 판단되는 분량이 새로 추가되었는데 캐치프레이즈 하나도 관계 당국이 과장된 표현은 없는지 깐깐하게 심사하는 와중에 아무래도 새로운 컨셉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약관과 상품설명서는 분리해 별도 리플릿처럼 나가야 합니다. 책 내용은 규정상 광고 역할을 하게 되는데 하나로 묶이면 천체가 상품설명서로 판단되어 관계 당국이 책 전체를 심사하게 되어서 절대 승인을 안 합니다."


디자이너로 일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기획자로써 혹시 디자이너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없을까 심사를 하는 관계 당국의 제작물 관련된 규정들을 쭉 살펴보았고 특히 중요한 내용을 회의 때 위와 같이 전달했었다. 몇 번이고 강조를 했었는데 한 달 뒤 상품기획 실무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책자로 묶여서 1차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그걸로 바로 CEO의 의사결정을 받았던 것이다. 몇 번이고 얘기했는데 왜 하나로 묶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도 허무했다.


"그게 깔끔하고 예뻐 보이니깐요."


예쁘게 깔끔하게 디자인하는 것. 그것은 정말 디자이너의 소명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그간 역사와 사회가 계속해서 디자이너에게 바라왔던 단순한 역할이었기에 으레 자연스럽게 기획자의 요구사항을 그것이 ‘법’에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국엔 2차 프로토타입 보고 때 디자이너와 함께 상품기획 쪽도 같이 참여해 조심스럽게 수정 사항과 그 이유를 CEO께 전달드리면서 사태는 해결되었지만 둘 다 경험해 본 나로선 어떤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기획자의 역할과 디자이너의 역할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테슬라 전기차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사고로 인해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필 사망하신 그분이 나도 여러번 인사드렸던 아버지의 45년 지기 절친이었기에 더욱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지만 내가 주목한 부분은 사망 원인에 있었다. 물론 이유는 복합적으로 적용되었고 아직 조사 결과가 결론난 것은 아니지만 크게 보면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자는 당시 의식을 잃었고, 외부에서 의식을 잃은 사망자를 구조하려 했으나 사고로 전기가 차단되면서 히든도어(전자식) 형식으로 튀어나오고 들어가던 핸들이 작동하지 않아 외부에서 문을 열 수 없었고 20여 분 만에 트렁크를 강제로 뜯어 구조했으나 배터리에서난 불로 인한 일산화탄소 질식으로 사망... 배터리에서 불이 나지 않았으면, 그리고 의식을 잃지 않았으면 사망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1차적으로 보았을 때 사망자는 의식을 잃었고 외부에서 문이 열리지 않아 빠른 구조로 이어지지 못해 일산화탄소 질식으로 이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의 차량 충돌 시 승객 보호 기준에 따라 ‘충돌 후 모든 승객이 공구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좌석 열당 1개 이상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할 것' 규정에 맞췄다면 히든 도어는 전기가 끊기면 기계식으로라도 튀어나와 외부에서 문을 열 수 있게 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히든 도어는 기계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공기역학과 관련 있고 디자인 관점에서 봤을 땐 '무언가 something new' 그리고 '세련되고 깔끔함'에 해당될 것이다. 그 멋지고 세련됨에 해당 차도 누군가의 최종 의사결정을 받고 양산되지 않을까? 물론 미국 법엔 우리와 같은 규정이 없었기에 양산까지 이어졌겠지만 "유사시 외부에선 어떻게 열 것인가?"에 대한 생각까지 생각을 해보았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한미 FTA에 의거해 테슬라는 위 규정을 지킬 의무가 없었지만 한 사람이 허망하게 희생됨으로써 우리에게 앞으로 미래에 제조될 히든도어 형식의 차량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법과 규정은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도 특히 공산품을 제작하고 창조하는 데 있어 법과 규정을 항상 염두해야 함을 경험을 토대로이야기하고 싶었다. 반대로 기획자도 디자이너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때에 법과 규정에 맞춰야 하는 사항이 없는지 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기획자는 클라이언트일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정확하게 디자이너에게 법과 규정 그리고 그 범위를 전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법과 규정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다 소비자 그리고 사용자를 위한 것이다.


다시금 "악법도 법이다."라고 했던 소크라테스를 떠올리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 #6 디자인 또한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