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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2. 2023

드디어 세계의 끝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제임스 완 2023

*스포일러 포함     


 2013년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로> 시작된 DCEU의 마지막 작품이 된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DCEU 출범 이후 해당 세계관과 가장 동떨어진 작품처럼 존재한다. 이전 작품들이 이전 등장인물들과의 연계, 이를테면 저스티스 리그 멤버의 카메오 출연과 같은 것들을 통해 세계관의 느슨한 연결점을 강조했다면, 본 작은 전작 <아쿠아맨>과의 연결지점만이 드러날 뿐이다. 이것이 DCEU의 마지막 영화라는 것이 공식화된 이후의 선택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할리우드에 여전히 난립하는 무수한 ‘유니버스’ 속에서 (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 ‘스탠드얼론’ 슈퍼히어로 영화의 즐거움을 간직하고 있다.     

 가능한 감독의 색채를 지워내고자 노력하는 MCU의 작품들과는 달리, DCEU는 감독의 색채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제임스 건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전작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었으며, 나아가 <피스메이커>는 정말로 예외적인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두 편의 <원더우먼>은 (감독의 전작들과 같은 색채라 할 순 없지만) 패티 젠킨스의 메시지가 확고히 기저에 자리 잡은 영화였으며, <샤잠!> 시리즈는 (비록 조악할지라도) 데이비드 F. 샌드버그가 저예산 호러영화에서 보여준 짓궂은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DCEU가 <맨 오브 스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를 연출한 잭 스나이더의 개성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퀄리티와 상관없이 DCEU의 영화들은 ‘감독의 영화’로 존재해왔다. 물론 자움-콜렛 세라와 같은 익숙한 ‘고용감독’의 면모가 드러나는 영화들도 있었지만.     

 제임스 완의 <아쿠아맨>은 그러한 개성이 가장 크게 드러난 영화 중 하나였다. 다수의 호러 프랜차이즈와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이라는 블록버스터 경험 속에서 정립된 그의 스타일이 만들어낸 만족스러운 오락영화였다. 코믹스의 비주얼이 지닌 장점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아틀란티스의 풍경부터, 러브크래프티안다운 면모를 보여준 트렌치 종족의 영역은 물론 후반부 등장한 거대괴수의 모습까지, 단지 슈퍼히어로 영화 중 하나에 머무르기보단 감독의 취향이 적극 반영된 만듦새를 보여주었다. <아쿠아맨>은 DCEU라는 세계와는 별개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속편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또한 비슷한 노선을 취한다. 코믹스 같은 화면, 특유의 쨍한 색감, 특유의 거대함을 강조하는 방식, DCEU 특유의 호쾌한 액션, 다양한 해상 (이번엔 육상까지 포함하는) 크리처, ‘쾌남’ 아쿠아맨의 캐릭터성 등이 강조되며, 그것들이 제공하는 쾌감으로 평면적인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극복해나간다.     

 흥미롭게도 본작과 가장 비슷한 작품은 제임스 완의 전작 <말리그넌트>라 할 수 있다. 지알로 영화에 관한 제임스 완의 취향이 적극 반영된 이 영화는 종종 횡스크롤 액션-호러 게임들의 방식을 연상시키는 카메라 워킹을 선보였다. 잭 스나이더의 슬로우모션이 AAA게임의 QTE를 떠올리게끔 한다면, 제임스 완의 카메라는 고정된 3인칭 횡스크롤 시점으로 전개되는 (<리틀 나이트메어>를 비롯한) 몇몇 게임들을 연상케 한다.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또한 그러한 장면들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킹콩>, <스타워즈> 등 제임스 완의 영화적 취향이 두드러지는 레퍼런스로서 영화를 채워낸다면, 다른 한편으로 게임에서 빌려온 듯한 영상 문법이 영화의 액션을 채워낸다. [언챠티드]나 [배트맨 아캄] 시리즈가 영화의 액션 문법을 게임으로 번역하고자 프리플로우 액션이라는 조작 및 인터페이스 문법을 만들어냈다면, 제임스 완의 근작들은 그것을 재차 영화로 옮겨오려 한다. 영화 <언챠티드>는 그것에 철저히 실패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DCEU의 마지막을 표방한 이 영화가 MCU를 상대하는 방식의 흥미로움을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본작은 노골적으로 <토르> 시리즈 내내 강조된 토르-로키 형제의 관계성을 고스란히 아서(제이슨 모모아)와 옴(패트릭 윌슨)의 관계에 이식시키려 한다. 첫 영화에서 적대적 관계로 만났다면, 다음 영화에선 가족애와 형제애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두 인물의 협력을 그려낸다.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노골적으로 <토르> 시리즈를 레퍼런스 삼는다. 단순히 관계성의 차원을 넘어,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로키 형제가 그랜드마스터의 행성에서 탈출하던 장면의 구성을 고스란히 가져온다던가, 심지어 메뚜기 괴수에게서 도망치던 중 아서가 옴에게 “로키 같다”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나아가 영화는 좀 더 다양한 차원에서 MCU를 참고 혹은 패러디한다. 영화의 마지막 다른 국가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아틀란티스의 모습은 <블랙 팬서>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하며, 심지어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I Am Aquaman”이다.      

 DCEU의 마지막 영화는 MCU의 세계가 시작했던 순간을 패러디하며 끝난다. 그것은 슈퍼히어로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씨름하던 것을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시도였으며, <어벤져스: 엔드 게임>으로 마무리되었다. DCEU는 그 반대의 노선을 택한다.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이며 슈퍼맨이 클라크 켄트라는 사실은 밝혀져선 안 될 중요한 정보로 다뤄졌다. 다만 아쿠아맨은 그 사정이 달랐는데, 그는 첫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아쿠아맨’이자 ‘아서 커리’로서 다뤄졌다. 다시 말해 “I Am Aquaman”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MCU의 패러디라는 기능 외에는 다른 기능을 갖지 않는다. 그것이 갖는 다른 기능이라면, 선두 MCU와 후발주자 DCEU 사이의 경쟁체제 자체에 대한 종언을 선언한 것이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포화상태에 다다른 ‘유니버스’는 결국 서로가 서로를 레퍼런스 삼음으로써 서로를 잡아먹는, 슈퍼히어로라는 장르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카니발리즘의 형태로 겨우 자신을 유지해오고 있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부터 <블루 비틀>까지 이어진 올해의 실패들은 ‘유니버스’들의 확장 및 공존이 불가능에 다다랐음을 시사한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표방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와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감독과 캐릭터가 세계관에서 해방되었을 때에야 ‘오락영화’라는 지위를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MCU는 인커전 이벤트를 통한 확장을 꾀하고 있으며 DCEU는 제임스 건의 지휘 아래 DCU로의 재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것들의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재차 도박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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