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09. 2024

음모론적 상상력

<악마와의 토크쇼> 콜린 케언즈, 카메론 케언즈 2023

 전국구 심야 토크쇼 “올빼미 쇼”의 호스트 잭 델로이(데이빗 다스트말치안)는 아내의 죽음과 시청률 하락 등 여러 악재를 동시에 겪고 있다. 1977년 할로윈 주간, 시청률 집계를 앞둔 그는 영매 크리스투(파이살 바지), 회의론자 헤이그(이안 블리스), 초심리학자 준(로라 고든)과 사탄 집단에서 구조된 소녀 릴리(잉그리드 토렐리)를 쇼에 초대한다. 쇼가 진행될수록, 잭의 예상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현상이 생중계된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파운드 푸티지/모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베트남전에서 닉슨 사퇴, 포드와 카터 행정부로 이어지는 1970년대 미국의 정치적 상황, 그러한 상황과 함께 히피이즘과 뉴에이지 운동의 한 갈래로 등장한 사탄주의, 유력 정치인과 셀러브리티 등이 동참하는 컬트 모임 등 다양한 배경이 설명적인 내레이션과 함께 제시된 뒤, 1977년 할로윈 주간의 “올빼미 쇼” 본편과 비하인드 씬을 리얼타임으로 선보이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구성은 1970~8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사탄 공황’(Satanic Panic, 사탄숭배 그룹에서 탈출한 이들의 증언이 토크쇼와 책 등을 통해 소개되며 벌어졌던 사건으로, 추후 대부분이 정신박약 상태에서 일종의 기억상실을 경험했음이 드러나며 ‘가짜’임이 밝혀졌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이 영화와 함께 상영된 <사탄의 부름>은 자신이 사탄숭배 그룹에서 탈출했다 주장하는 이들의 말을 화제성에만 집중하며 편의적으로 보도한 미디어의 관습을 비판하기도 했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그러한 시기를 배경으로 삼는다. 마술사이자 회의론자 헤이그(초능력자 사냥꾼 제임스 랜디를 모델로 삼았다)의 등장 또한 그러한 맥락 위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 <악마와의 토크쇼>는 미디어가 수용자에게 일방향적으로 정보를 송출하던 시기를 압축적으로 다뤄낸다. 여기서 송출되는 정보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심지어 쇼의 진행자인 잭 델로이의 존재 자체도 일종의 정보로써 시청자에게 송출될 뿐이다. 시청률이라는 지표는 그 정보의 가치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는 쾌감의 가치, ‘도파민 상승’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가치를 표현한다. 잭 델로이의 할로윈 특집은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마련되었다. 영매의 퍼포먼스는 그것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공포 혹은 위로를 전달한다. 영매를 비판, 아니 비난하는 회의론자의 말들은 또 다른 퍼포먼스로서 쾌감을 생산한다. 그 끝에 악마에 빙의하는 릴리의 퍼포먼스가 놓인다. 물론 이 영화는 오컬트 장르의 호러 영화이며, 릴리의 빙의는 퍼포먼스가 아닌 초자연 현상이다. 그것은 시청률과 뒤바꾼 파국으로 향한다.     

 영화 초반 등장하는 사탄숭배 그룹의 리더는 1960~70년대 등장한 사탄교회의 창시자 안톤 라베이와 닮게 묘사되었다. 라베이는 기독교 교회의 위선적 행태에 염증을 느끼고 사탄교회를 창시했다. 그는 위선을 배격하고 욕망과 쾌락에 충실할 것을 교리로 삼았다. 사탄교회는 여전히 존재하는데, 이는 라베이가 사탄을 신적 존재로 숭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상징으로써 끌어왔으며 ‘악’이나 인신공양 등 반인권적 의식과는 관계없기 때문이다. 물론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묘사하는 사탄숭배 그룹이 사탄교회 자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영화 속 사탄숭배 교주와 안톤 리베이 사이의 외적인 유사성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며, 영화 초반 묘사된 사탄주의 그룹과 FBI 사이의 총격적은 1993년 기독교계 소수종파 다윗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모티프 삼는다. 정리하자면, <악마와의 토크쇼>는 사탄주의의 어떤 이미지들, 영화가 배경 삼은 1970년대의 복잡한 이미지들을 가져와 구성한 하나의 쇼에 가깝다. 영화가 파운드 푸티지/모큐멘터리의 형식을 가진 것은 이 지점에서 필연적이다. “올빼미 쇼”와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익숙한 극영화의 톤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미디어를 재현하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점에서 잭 델로이가 속한 ‘그로브’라는 사교모임의 존재는, 영화 내에서 종종 언급만 될 뿐 전면적으로 묘사되진 못함에도 큰 중요성을 갖는다. 영화 속의 짧은 묘사만 놓고 본다면 ‘그로브’야 말로 사탄숭배적 의식을 수행하는 오컬트 집단으로 다가온다. 물론 이는 영화 속에서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될 뿐이다. 영화 내내 전개되는 음모론적 서사구성의 핵심은 빙의한 릴리가 폭언을 퍼붓는 것이 아니라 이 집단의 존재 자체다. 그로브는 잭의 성공을 위해 자신들의 권력을 사용했을까? 잭은 그로브가 밀어주는 스타였던 것일까? 그로브와 잭은 정말로 오컬트 의식을 벌이며 자신들의 영달을 기원했을까? “올빼미 쇼”의 관객과 시청자는 물론, <악마와의 토크쇼>를 보는 관객 또한 그것을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상상력을 동원해 그 이면을 상상할 뿐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음모론적 상상력을 쾌감의 동력 삼는다. 모든 정보가 토막 나 가공될 수 있는 2024년의 시점에서, <악마와의 토크쇼>가 전달하는 쾌감과 공포는 우리 모두가 음모론적 상상력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데에 놓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