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16. 2024

<신의 바늘> 극단 선단사일

'신의 바늘'이라는 제목을 되새겨보자. 마약중독 청소년인 지우(김하람)는 명진(문병설)에게 꿈 이야기를 한다. 신이 실과 바늘을 주었는데, 한 사람은 그물을 만들었고 자신은 실로 팔을 묶고 바늘을 꽂았다고. 두 사람은 이야기한다. 신이 주신 실과 바늘로 만든 그물은 거미줄인가 안전망인가. "저에겐 왜 주삿바늘을 주셨습니까?" 신이 내린 물건은 대체로 구원의 상징이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며 물고기 대신 사람에게 그물을 던지라 말했다. 복음을 전파하고 구원을 행하라는 신의 주문, 하지만 지우와 명진에겐 저주처럼 다가온 구원의 바늘. <신의 바늘>은 그것을 꼭 저주로 호명하며 두 사람의 '마약 중독'을 비극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연극이 마약에 관해 갖는 태도는 중립적이다. 지우가 쏟아내는 설명들처럼 모르핀, 헤로인, 필로폰 등은 '약'이었으며, 타이레놀이 그렇듯 마약도 부작용을 지닌 약이다. 이들은 왜 마약을 구원의 저주로 받아들였는가? 그러니까, 두 배우의 몸짓이 종종 형상화하는 기독교적 도상(천지창조, 피에타, 십자가를 진 예수)이 향하는 것은 처벌과 희생을 경유한 구원이다. 이렇다 할 사건 없이, 멈블코어(mumblecore) 영화 속 술 취한 인물들처럼 주절거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새로이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마약이 가능케 한 배드 트립 속에서의 플래시백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지난 삶이다. 제대로 양육받지 못하고, 폭력과 폭언 속에서 자신의 꿈을 스스로 짓밟고, 선명한 이미지로 "뇌에 문신처럼" 새겨질 때까지 오지 않는 부모를 기다리며 문을 바라본 과거들. 마약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삶을 희생당한 끝에 찾아온 구원에 가깝다. 나아가 마약은 지우의 말과 행동으로 암시되는 퀴어니스가 발현될 수 있는 수단이자, 명진의 남성성이 가로막은 내면의 발화를 가능케하는 도구다. 결국 '신의 바늘'이 꽂히는 것은 두 사람의 팔뚝이나, 그 바늘이 향하는 것은 두 사람이 팔뚝에 바늘을 꽂게끔 한 세계다. 그렇기에 지우는 선지자처럼 '신'을 이야기하고 명진은 '신의 바늘'을 십자가처럼 짊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