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해피 포에버> 이가라시 고헤이 2024
*스포일러 포함
‘사노’라는 이름의 남성(사노 히로키)이 친구 미야타(미야타 요시노리)와 함께 아타미에 위치한 한 호텔을 찾는다. 사노는 얼마 전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을 맞이했고, 그와 처음 만났던 호텔에 재방문한 것이다.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준 뒤, 5년 전 사노가 같은 이름의 여성(야마모토 나이루)을 만났던 때를 보여준다. 5년의 시차를 두고 1부와 2부의 구성을 가진 영화는 호텔에서 일하는 베트남인 직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슈퍼 해피 포에버>는 애도에 관한 영화다. 다만 여기서의 애도는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럼으로써 떠나보내는 방식의 것이라기보단, 그것이 남긴 상흔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애도라기보단 트라우마의 발현이랄까.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비슷한 애도와 트라우마에 관한 영화들을 봐왔다. 아버지의 우울증을 뒤늦게 깨닫는 <애프터 썬>의 주인공,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드라마를 다룬 펫졸트의 근작들(<운디네>, <어파이어>, <미러 넘버 3>), 상실을 다른 존재들과 연관시켰던 하마구치 류스케의 두 영화(<드라이브 마이 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28년 후>나 <썬더볼츠*> 같은 장르 블록버스터부터 <봄밤> 같은 한국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화들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다.
각각의 영화가 처해 있는 국면은 제각각이다. 여기에는 소수자성, 현대사, 정신질환, 장애 같은 여러 키워드가 개입될 수 있다. <슈퍼 해피 포에버> 또한 그러하다. 우리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애도의 트라우마를 바라보며 그것을 여러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MUBI에 올라와 있는 작업기에서 이가라시 고헤이는 이 영화가 2018년 사노 히로키와 미야타 요시노리가 쓰기 시작한 줄거리에서 출발했으나 코로나19로 촬영이 지연되어 2023년에야 촬영을 할 수 있었으며, 그 사이에 잠자는 사이 돌연사한 친구의 사연 또한 개입되어 있다고 언급한다. 영화에서도 아내의 죽음이 어떤 연유였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으며, 그저 등을 돌린 채 자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언급만 나온다. 의문사 혹은 돌연사에 가까운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것만이 암시될 뿐이다.
나는 앞서 열거한 일련의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애도의 감각이 있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러운 상실과 단절 앞에서 겪는 일종의 트라우마랄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소화하는 중이고, 1년 늦게 한국 극장에 개봉한 <슈퍼 해피 포에버> 또한 그 연장선에 놓인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물론 개인차가 있겠다만) 갑작스러운 단절과 상실을 가져왔다. 엔데믹이 선언되었다고는 하지만, 떠올려보면 우리가 마스크를 꼭 챙겼어야 했던 기간이 엔데믹 이후 마스크를 벗고 다닌 기간과 비슷하거나 아직 더 짧다. 특히나 <슈퍼 해피 포에버>가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 2018년과 2023년의 간극을 떠올려 볼 때 코로나19라는 요인은 무시하기 어렵다. 감독은 그것으로 인한 작업 지연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더불어 영화 내적으로 코로나19라는 단어나 질병의 언어가 등장하지도 않지만, 카메라에 담긴 풍경에서 그것을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거칠게 2023년 여름의 1부와 2018년 여름의 2부로 나뉘는 영화의 풍경에서도 그것을 읽어낼 수 있지 않는가. 마스크를 쓴 호텔 지배인, 망해버린 식당, 다음 달에 문을 닫게 된 해변 관광지 호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관광객의 수, 개방된 테라스에서의 술자리와 ‘밀접접촉’으로 가득한 클럽. 영화는 2023년에 촬영되었고, 그것은 영화 속 2023년과 2018년의 풍경은 다르게 연출되었다는 의미다.
재차 말하지만 우리는 아내 사노가 어떤 이유에서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돌연사인지, 자살인지, 코로나19인지, 지병인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영화가 다루는 풍경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영화 속 인물들, 식당, 클럽, 호텔, 관광객들은 우리와 같이 팬데믹의 시간을 살아냈으며, 우리가 경험했던 단절과 상실의 시간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영화가 담아내는 것은 그 감각이다. 영화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남편 사노가 아내 사노에게 사 준 빨간 캡모자가 분실을 통해 호텔에서 노동하던 베트남인 직원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이 그가 그 모자를 쓰고 호텔을 떠나는 모습일 때, 단절 속에서 이루어졌던 비접촉·비대면의 제스처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친구에게 꼬장부리면서도, ‘슈퍼 해피 포에버’라는 유치찬란한 이름의 사이비 세미나에 빠져서라도,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충격을 여전히 소화하면서 말이다. <슈퍼 해피 포에버>는 그 시간에 대한 충만한 감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