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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7. 2020

66.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원제: 夜明け告げるルーのうた
감독: 유아사 마사아키
출연: 타니 카논, 시모다 쇼타
제작연도: 2017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는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지브리의 영화들이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의 세계관은 <모노노케 히메>(1997)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와 같은 지브리식 환경주의를 연상시키고, 악역에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은 어른 캐릭터들을 단순한 악역으로 몰아붙이는 대신 개별적인 서사와 캐릭터성을 부여함으로써 전체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영화 속 어른들의 행동으로 인해 마을에 재앙이 발생한다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지브리 영화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에서는 의외로 뮤지컬스러운 장면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겨울왕국>(2013)과 같은 최근 디즈니 영화 혹은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보단 <환타지아>(1940)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951)과 같은 디즈니의 초기 영화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신체비율을 어그러뜨리는 과장된 원근감의 표현’으로 인물들의 춤을 표현하는 방식은 <환타지아>의 빗자루들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카드병정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리듬감은 <벨빌의 세 쌍둥이>(2003)와 같은 살뱅 쇼메 영화의 리듬감을 고스란히 이식한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서구권의 뮤지컬-애니메이션 영화들과는 다른 종류의 음악, 가령 아이돌 팝~팝 록 정도로 구분될 수 있는 음악들이 시작되는 순간은 <너의 이름은>(2016)을 비롯한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향을 얕게나마 느껴볼 수 있는 지점이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이름은>은 앞서 언급한 영화들의 장점만을 가져와 유아사 마사아키의 개성으로 통합시킨 모양새가 되었다. 때문에 인어 루와 도쿄에서 이사 온 소년 카이가 우정을 나눈다는 익숙한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손쉽게 파고들어온다. 카이의 할아버지나 타코 할멈의 플래시백이 등장하는 지점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들 외에도 카이의 친구인 유호와 쿠니코, 유호의 할아버지인 마을 대표, 한 때 카이처럼 음악을 했던 아버지 등 많은 인물들이 영화 속에서 각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112분의 러닝타임 속에 빼곡히 집어넣은 여러 캐릭터의 세부 서사들을 보고 있자면 영화가 지닌 서사적 섬세함에 놀라게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루의 노래에 맞춰 자신도 모르게 춤을 추는 하나시 마을 사람들처럼 영화에 빠져들게 된다.

 바다가 마을로 범람해 들어오는 영화 후반부를 보며 3.11 동일본 대지진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물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유동적인 형태만을 띠진 않는다. <모노노케 히메>의 후반부, 목이 잘린 사슴신의 몸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액체가 숲을 뒤덮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액체라면 당연히 지니고 있어야 할 표면장력이라는 원칙에 의해 이 기이한 액체는 곡선의 표면을 지닌다. 반면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에서 루가 바닷물을 움직이는 장면들은 물을 입방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한다. 루가 통제하는 물은 사각의 형태로 만들어진 공간, 가령 카이가 사는 집의 지하실과 같은 공간을 채운다. 액체에 대한 인위적인 조작은 마을로 들이닥친 바닷물은 마을의 건물들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점과, 뱀파이어마냥 햇빛을 접하면 불에 타는 인어의 속성 때문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파괴되는 건물의 모습이라는 두 대립항을 통해 더욱 가시화된다. 이 영화에서 물은 어떤 존재인가? 고체 상태로 확고하게 존재해야 할 인물들의 신체는 음악과 함께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반면, 액체인 물은 고체적 형상으로 조작된다. 유아사 마사아키의 여러 작품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이나 <데빌맨 크라이베이비>(2018)과 같은 최근작은 물론, <어드벤쳐 타임> 시즌6 '푸드 체인' 에피소드(2014)와 같은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고체적 존재의 유동적 표면에 대한 궁금증을,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가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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