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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9. 2020

86. <그녀의 냄새>

원제: Her Smell
감독: 알렉스 로스 페리
출연: 엘리자베스 모스, 아기네스 딘, 게일 랜킨, 카라 델러바인, 댄 스티븐스, 앰버 허드
제작연도: 2018

 베키 썸씽은 전설적인 여성 삼인조 락밴드 '썸씽 쉬'의 보컬이자, 퇴물의 길로 향하고 있는 락스타이다. 자기파괴적인 성격의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먼저 찾아오지 않는 음반사와 공연기획자 사이에서 고군분투해야 하고, 엄마로써의 정체성도 지니고 있으며, 자신보다 오래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과거의 동료를 시셈하고, 자신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신인밴드와 만나기도 한다. 알렉스 로스 페리는 그 과정을 집요하게 쫓아다닌다. '박살났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리는 베키의 발자국을 쫓아가는 카메라는 관객들이 베키의 매니저 혹은 밴드의 맴버와 같은 위치에서 그를 바라보게 한다. 

 락스타의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삶을 그린 영화는 많았지만, <그녀의 냄새>처럼 집요한 영화는 많지 않다. 이 영화가 포착하는 베키의 삶은 분열과 파괴 그 자체이다. 영화는 공연장 대기실에서 벌어지는 세 개의 시퀀스와, 그 사이에 등장하는 녹음실 시퀀스 및 베키의 집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5부 구성은 각각 베키의 분열-몰락-후회-재기를 담아낸다. 알렉스 로스 페리는 <그녀의 냄새> 이전 다섯 편의 영화에서도 그러한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특히 베키 썸씽을 연기한 엘리자베스 모스는 페리의 전작 <리슨 업 필립>(2014)와 <지상의 여왕>(2017)을 통해 파괴와 환희, 분열과 결합, 우울과 재기를 오가는 인물들을 이미 연기해왔었다. 베키는 그 연장선상에 놓인 인물이다. 분열적인 현대인에 대한 병리적 고찰과도 같은 페리의 영화들은 이러한 인물들을 해부한다. <그녀의 냄새>는 그러한 탐구가 가장 안정적인 형식을 갖춘 작품이다. <골든 엑시트>(2017)가 16mm 필름의 자글자글한 필름그레인과 좁은 공간을 통해 인물들을 압박했다면, <그녀의 냄새>는 롱테이크로 담긴 공연장 대기실에서의 분열적 군상극과 다소 차분한 대기실 외의 공간 시퀀스들의 교차를 통해 베키를 자유자재로 분해하고 재조립한다. 

 때문에 후반부에 이르러 등장하는 봉합의 순간은 단지 찰나일 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녀의 냄새>는 수많은 것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떨어져나가고, 자신 마저 파괴되는 어떤 삶에 대한 에세이와도 같다. 영화는 음악영화, 코미디, 군상극, 드라마 등의 장르를 오가며 명확히 구체화될 수 없는 베키 썸씽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도저히 붙지 않는 그의 단면들은 골절된 뒤 더욱 단단하게 붙는 뼈처럼 베키 썸씽을 규정한다. <그녀의 냄새>는 그렇게 살아가는 어떤 삶의 포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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