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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9. 2020

87. <야광>

감독: 임철민
제작연도: 2018

 임철민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야광>은 게이들의 크루징 스팟인 파고다극장, 몇몇 공원이나 지하철 역 등을 찾아가는 작품이다. 영화에는 끝없이 게이 데이팅 어플인 '그라인더'의 알람음이 등장하고, 데이 포 나잇 기법 등이 영화에 사용되기도 하며, 야광처럼 보이는 빛들을 포착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비가시회되고, 들리지 않게 된 장소와 존재를 다시 끄집어내고 뭉치는 작업을 수행한다. 데이 포 나잇 기법을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야광처럼 보이는 빛들로 포착해낸 이미지들은 비가시화된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려는 시도이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밤 장면과 대화들이 데이 포 나잇과 후시녹음을 통해 구성된 것임이 폭로되는 후반부는, 빈 공간에 입혀진 소리 정도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 영화가 수행하고 있는 폭로와 같은 방식으로 보여질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퀴어적 방법론을 영화의 작업방식으로 채택한 야광은 데이 포 나잇이나 후시녹음,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CG 이미지처럼 가상에 속한 것들이, 마치 영화 내내 들려오는 그라인더 알림음처럼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내려 할 때 발생하는 빛을 포착하는 작업이다.

 많은 경우 관객은 영화를 통해 보려한다. CG를 비롯한 각종 VFX가 영화 이미지를 지배하는 지금,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원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환영이다. 카메라가 촬영한 것 위에 아무런 CG도 덧붙여지지 않은 화면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수많은 영화에서 백색의 스크린 위에 영사되는 그린스크린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MCU를 비롯한 수많은 블록버스터, 심지어는 박찬욱의 <아가씨>(2016)과 같은 영화들도 알게모르게 많은 부분이 그린스크린 위에 CG를 그려낸 이미지들이며, 그 이미지를 기어코 구분해내려는 시도는 성공여부와는 상관없이 불필요하다. 이러한 행위는 본질적으로 텅 빈 스크린 위해 이미지를 영사하는 시네마토그래피의 본질적 속성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반면 <야광>은 그러한 방식을 역행한다. 이 영화엔 '밤 장면'은 있지만 '밤을 촬영한 장면'은 없다. 데이 포 나잇 효과를 통해 밤처럼 보이는 환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야광>은 그것이 환영이었음을 스스로 밝힌다. 유튜브에 'CGI & VFX Breakdown'을 검색하면 나오는 수많은 영상들처럼 말이다. CG와 VFX가 제공하는 환영을 통해 볼 수 없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 블록버스터 영화들이라면, <야광>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을 복원시킨다. 보이지 않게 된 것, 있던 것이지만 비가시화된 것, 혹은 지금은 없어진 (가상 공간으로 이동한) 것. <야광>은 그것을 하나하나 밝히며 다시 내보이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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