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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이 Jul 18. 2021

인생이 무한도전

절대 늦지 않았다고 해주세요

종영한지 이제 3년이 넘은 국민예능 무한도전에서 한 장면의 한 문장이 간혹 생각날 때가 있다. 가수 길이 꽤 높이 올라간 케이블카 안에서 던지듯 한 말인데, 그것이 웃음 포인트가 되어 유튜브나 커뮤니티에서도 간혹 떠오르곤 하는 장면이다.

“나 이런 게 무서워하네!?”

다소 엉뚱한 표현으로 다른 멤버들이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어쩐지 이해가 갔다. 아마 나는 이런 것을(아마 높은 곳에서 움직이는데 바깥도 훤히 보이는 기구) 무서워하는 줄 몰랐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정이(전 직장 동료이자, 현재 가장 가까이 지내는 아끼는 동생)와 시시콜콜 통화를 하다가 요즘 나의 생각에 빗대어 매우 공감이 되었던 말이 있었다. 

“내가 발레를 배워봤어야 발레를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알죠.”

단어의 배열과 문장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 대화의 요지는 자라면서 좋아하는 것을 탐색하는 방법을 몰랐고 기회가 주어지는 방법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대학 입시 원서를 쓸 때까지도 나는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 할 수 있는지 혹은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찾을 의지는 고사하고 그저 이리저리 휩쓸리는 떨어진 낙엽 같았다. 누군가 이 길이 좋을 것 같다고 하면 이 길로, 저 길이 편할 것 같다고 하면 저 길로 휩쓸렸다. 그렇게 허술한 빗자루 질에 휩쓸리다가 그중 흥미가 있었던 과목에 맞추어 과를 정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전공이 당시로부터 십 년 뒤에는 흥할 거라 했던 누군가의 말을 들었고, 그것이 어느 정도는 적중하여 이 시국에도(정확히는 이 시국이라 더욱) 나는 잘 벌어먹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일을 죽지 못해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그래도 운이 좋게 흥미가 있었던 분야를 선택하였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나쁘지 않은 커리어도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 미천한 실력에도 인정을 받아 가끔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나는 그냥 꾸준히 현재 하는 일의 커리어를 쌓아 적당히 벌고 살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생기지만, 왜인지 불안하다. 내 능력에 대한 불안함과 즐기지 못하는 불안함과 왠지 내가 잘 하고 더 즐거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함. 그리고 아마 남은 인생이 길 것이기에.  

   

초등학생 때는 미술 시간에 앞에 나가있는 친구를 스케치북에 4B 연필로 쓱쓱 잘 그렸다. 그때 받은 칭찬이 가끔 나에게 그림을 찾도록 해주었다. 중학생 때부터는 소설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 시절 베스트셀러로 자주 오르던 공지영의 소설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공상과학 소설 그리고 각종 추리 소설들까지. 10대 청소년의 예민한 감수성을 잘 건드려 주던 이야기들이 감탄스러웠다. 작가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인물들이 글에서 울고 웃고 살아가는 것이 창조주가 만든 멋진 세계를 보듯, 나도 저런 창조주가 되고 싶다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들은 막연했고 확신은 없었다. 잘 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지 못한 이유에는 핑계가 가득하지만, 결국 돈을 버는 길로는 막막해 보였을 것이다. 조금 잘해서도 안 되었고 조금 좋아해서도 안 되었다. 그 많은 것들 중 하나를 고를 만큼의 용기나 열정이 없었다.   

   

정이의 말이 계속 맴도는 것은 앞으로 내가 가져야 하는 삶의 태도와 어느 정도 일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보지도 않은 것을 좋아할 수 없고 적당히 해보고는 잘 한다 할 수 없다. 여태 당장 눈앞의 일들을 급급히 처리했다면 이제라도 조금은, 없는 여유도 만들어보고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해봐야겠다. 그래서 이것저것 벌려놓고 있는 지금, 가끔 깊은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혹은 더 깊은 불안감에 허우적대기도 하지만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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