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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jonler Jan 13. 2019

왜 내차 태워 보내신 건데요?

2-2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조교에게 물어봐라’라는 농담이 있다. 나는 실제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조교였다. 무엇이든 해내는 패기 넘치던 시기였다. 맡은 일은 항상 열심히 했고 그 덕분에 일을 잘한다는 이미지가 생겨 타과의 일도 도맡아 하게 되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타과 교수님들과도 친분을 쌓을 기회가 생겼고 능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내심 기뻤다.


 한 번은, 1년 중 가장 큰 음악대학 전체 행사를 기획사 없이 해 내라는 학교의 지시로 자체적으로 행사를 진행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A음악홀에서 하는 큰 행사였기에 학과장 교수님께서 그 일을 나에게 맡기셨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뛰어다니며 행사를 잘 치러냈다. 행사를 마치고 나서는 교수님들이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처음부터 일을 가르쳐주시고 모든 과정을 지켜보신 A음악홀의 B본부장님도 교수님들께 나를 예쁘고 똑똑한 사람이라며 칭찬을 많이 하셨다 한다. B는 내게 직접, 나중에 자기 밑에 와서 일하면 좋겠다고도 말씀하셨다. 이후, 일에 관련된 일이라며 B의 호출이 있었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도 좋은 기회라며 B의 호출에 응하도록 권유했다. 그런데 그 호출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술자리였다. 유명한 법조계 인사들, 스포츠 감독님, 음악계 잘 나가는 연주자들이 동석한 자리였다. 그들과 안면을 터놓으면 좋다는 말씀에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이렇게까지 잘 봐주신 건가 조금은 의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B는 자주 그런 모임을 주최해서 항상 최고급 요리를 동석자 모두를 대신해 계산하고 집에 갈 때면 모든 사람의 대리비까지 계산해서 보내시는 분이었다. 처음 나간 자리에서 대리비는 제가 내고 가겠다고 했더니 정색을 하셨다. 와서 좋은 시간만 보내고 가면 되는 거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겐 일이 아니라, 의미 없는 술자리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 모임에는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에게 나를 데리러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늦은 시간에 나를 데리러 온 그는 분위기를 보더니 다시 나가지 말라고 했다. 이후로는 핑계를 대고 거절했고 휴대폰 번호를 바꾼 후에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남편과 사별하고 모든 일을 쉬고 있다는 내 소식을 C교수님으로부터 전해 들으신 B는 내게 일을 제안하려 한다는 명목으로 C교수님께 내 연락처를 물어서 연락을 해오셨다. 반갑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 장례식장에 A홀 이름으로 화환까지 보내주셨는데 감사의 인사는 해야겠다 싶어서 만나러 갔다. 그 자리는 또다시 술자리였다. 인사만 드리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늘 그렇듯 동석자가 있었고 이번에는 어디 변호사란다. 와이프와 아이까지 있으신 분이 어찌나 자기 스타일이라고 호감을 표현하시는지, 저는 누구 스타일도 아닌데요 라고 계속 말을 받아치며 불쾌한 티를 냈다. 더 야속했던 것은 B가 그 상황을 중재도 하지 않고 부추긴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그런데 감사인사를 드리러 간 입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바보같이 상황에 끌려 다니다가 결국 자리가 끝날 때까지 함께 있었다. B는 여느 때처럼 대리기사를 불러 주셨고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내 대리기사는 왔는데 그 변호사의 대리기사는 오지 않았다. B에게 여쭤보니 변호사분이 술자리라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럼 택시를 태워 보내시려나 했는데, 집이 같은 방향이니 내 차를 함께 타고 가다가 내려주고 가도록 해 놓으셨다는 것이었다. 속으로 너무 놀랐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정색을 하시더라도 대리비는 내가 내고 갈 테니 그 변호사는 택시를 태워 보내시라고 했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바보같이 그 말을 듣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변호사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어디 가서 딱 한 잔만 더 하면서 놀다 가자고 보챘다. 화가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밀어 내리며 피곤해서 이만 들어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정중하게 거절하고 댁 앞에 내려 드렸다. 집으로 오는 내내 너무 불쾌했고 애초부터 술자리인지 확인을 하지 않았던 나에게 화가 났다. 다음날, C교수님께 B께서 저 일 시키려고 부르신 게 아니라 술자리에 부르셨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더니 “그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격분하셨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더 이상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인 것도 확실히 정리가 됐는데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그 유부남 변호사가 들이대는 게 불쾌하다고 표현했는데 B는 왜 굳이 내차를 태워 보내신 건지. 남자가 차 안 갖고 오면 막 처음 본 여자 차에 함부로 태워 보내고 그래도 되는 건가? 다들 그렇게 술자리에 차 안 갖고 가서 굳이 여자 차에 빌붙어 타고 그러나?? 택시는 폼으로 있나??? 어????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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