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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jonler Jan 13. 2019

나에게 맞는 방법이 정답이다.

3-6


 남편의 죽음 직후 내 정신건강을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이 심리 치료를 강권했다. 나는 심리 상담을 믿지 않는다. 우위에 놓인 심리전문가라는 사람에게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입니다’ 하고 나를 맡기는 행위는 왠지 ‘나는 열등한 인간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 같아서다. 마음에 대한 전문가라지만,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들추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내어 보이는 것으로 정말 치유가 될까. 내 얘기 몇 마디만 듣고 내 마음 상태에 대해 진단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 일일까. 어떻게 그 다양한 증상을 몇 가지로 매뉴얼화해서 그 다양한 심리상태에 대한 진단을 내리고 처방할 수 있는 걸까. 내 마음의 주인은 나인데. 마음과 정신이 아픈 사람으로 규정되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맡겨야 하는 나약함이 싫다.

 심리상담 전문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이 말이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고 이런 태도야 말로 더더욱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성향이다. 몸이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입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입원을 하더라도 하루 만에 도망치듯 퇴원한다. 아픈 것이 몸뿐이었는데 병원에 누워있으면 몸만 아프던 것이 우울함으로 번진다.


 개인의 심리상담기록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기에 보았다.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사실 개인의 심리상담기록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내게 시사하는 바가 더 컸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애매한 사람들이 궁금하다는 저자의 말과 맞닿아 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다 곪아 있는 것이 아닐까. 케케묵은 감정을 마음에 쌓아두고 살아가는 이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닐까. 우리는 습관처럼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하며 살아가기에 기쁨이나 슬픔 같은 직관적인 감정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사실은 누군가와 아픔을 나누고 싶지만,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알기에 서로가 그 아픔을 공유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힘겨운 대지에 나라는 실존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 없이 드러난 외면에만 관심을 쏟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내면을 돌아보는 방법을 모를 수밖에 없고 많은 이들이 시작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나도 그랬다. 나의 마음을 타자화 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기에 진정한 나와 조우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타자와의 관계가 어렵다고 말 하지만, 타자와의 관계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나와의 관계다. 


 내 감정을 잘 모르겠을 때 요즘 난, 글을 쓴다. 얼마 전 일기를 쓰면서 심리 상담을 거부한 진짜 이유와 마주하게 됐다. 내가 정말 약해서였다. 누군가에게 나를 맡기는 것이 싫다는 대외적인 이유 뒤로 나의 진짜 모습을 감춰버렸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심리 상담을 진행하면 스스로 아픔을 꺼내 보여야 하는데 건드리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감정이기에 일단 그대로 두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치료가 필요한 감정을 쌓아두기만 했기에 결국에는 암 덩어리 같은 감정이 자라났다. 수술의 과정이 너무 아플 것 같아 커져가는 암 덩어리를 계속해서 피하기만 한 것이었다. 진짜 약한 쫄보였다.


   내게도 심리 전문상담가라는 조언자가 있었으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거, 인정한다. 그러나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이제라도 심리 상담을 받으라고 한다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거절할 것이다. 심리상담은 그 방향이 옳을 지라도 적어도 나에게 맞는 방법이 아니다. 지금 나만의 방법으로 하루하루 치유의 과정을 밟아가는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보내는 매 순간은 아직 오지 않은 치유의 순간을 위해서 희생되는 평범한 시간들이 아니다. 흔한 말이지만 그 하루들이 쌓여 그 언젠가를 이룬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는 절대 알 수 없다. 또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지금 이 글을 보고 나의 확신이 틀렸음을 스스로 확인할 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마음이 힘들 때 모두가 다 한 가지 방법으로 마음과 삶을 회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성향이나 기질에 따라 방법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때에 내 마음이 원하는 방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믿어주자. 나에게 맞는 방법이 정답이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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