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며 두 가지 사실이 내 안에서 정리되었다.
첫째,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치유의 과정을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내 안에만 담고 있던 모든 상황을 글을 통해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삶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잡았다.
둘째, 완벽히 무너졌다고 생각했던 삶이지만 언제나 내 곁에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옆에서 지켜보시면서도 내내 객관성을 유지하시던 남편회사의 K이사님. 일이 마무리될 무렵, Sam이 늘 와이프 얘기만 나오면 환하게 웃던데 왜 그런지 알겠다고 하시며 “남자는 와이프가 먼저예요, 나도 우리 와이프가 먼저거든요. 결혼했으면 모든 게 배우자가 먼저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편 하나 없던 그때, 나를 이해해 주던 온기가 떠올랐다.
밖에서 살아있는 사람처럼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실제 삶과 괴리가 커질 무렵 정신병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그때 내게, ‘괜찮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연출하며 산다. 이 태도도 그중 하나이고 무엇보다 자각하고 있으니까 괜찮은 것이다.’라고 안심시켜주고 힘을 주었던 음악치료사 친구 LD. 덕분에 그 순간들을 지나왔다.
뭔가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을 때 Y와 J는 함께 팀을 만들어 연주를 하자고 했다. 함께 울어주고 조건 없는 응원과 칭찬을 보내주던 우리 트리오 멤버와 같이 보냈던 시간 덕분에 힘든 것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나에 대한 마음을 시 한 편으로 툭 던져 눈물샘을 자극하는 JW. 내가 말할 때까지 묻지 않고 그저 시간을 함께 보내준 MS. 늘 ‘내 사랑’이라는 호칭으로 나를 불러주는 기분 좋은 존재 HJ(엄마 얘기해줘서 고마워). 나라는 존재가 껍질을 깨고 나올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우리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이의 모자란 글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신 SNS 친구 분들 덕분에 조악하지만 계속해서 무언가 써나갈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을 오롯이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부족한 내게 힘이 되어준 이들이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음악이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은 ‘청중’이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많은 삶 중에서 이런 삶도 있다고 고백하는 이 과정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 일이었지만, 음악이 완성되는 그 순간처럼 미완의 내 글이 누군가에게 가 닿아 완성되었을 때 단 한 사람에게라도 작은 힘이 되는 생명력이 부여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그 바람은 또 다른 자양분이 되었고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음악 홀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연주되고 있을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새로운 인생을 위해 사업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사회문제에 투쟁하고 있을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 속에서 살아갈 그 누군가도 나와 같이 오늘도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으며 살아갈 테니까. 그게 우리 삶이니까. 무너진 삶을 회복하기 위해 어디에선가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을 당신에게도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