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chun Kim Nov 06. 2022

다시는 오징어볶음을 무시하지 마라

단언컨대, 오징어볶음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음식 중에 하나다. 포브스 선정 글로벌 과소평가 음식 톱 50 아티클을 열어보자. 오징어볶음은 당당히 역대 7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니 그런 게 실제로 있는 건 아니고 상상선정이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꼬득하고 쫄깃한 오징어의 식감. 나의 어금니를 포근히 감싸 연착륙시키곤 이내 탱글 밀어올린다.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은 어떠한가. 습습거리면서도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하는 마법의 양념에 버무려지면 당근마저 맛있는 음식이 되어버린다.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 날이라면 상추쌈에 쌈장까지. 공깃밥은 이미 뒤졌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혹시 경찰아저씨가 계신다면 이 상습 밥도둑을 당장 잡아다 옥에 가두고 열 개의 다리에 모조리 주리를 튼 뒤에 무기징역을 선고해주기 바란다.


일찍이 오징어볶음의 파괴력을 눈치챈 사람들은 이미 오징어볶음의 그것이 고기의 그것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어 고기와 오징어볶음은 사실 의천도룡기의 의천검과 도룡도 같은 합을 이루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오징어볶음의 매력에 진실로 눈 뜬 자는 그 뇌와 영혼에 오징어볶음이 각인되어 이제 오징어볶음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다. 그 무서운 현상을 우리는 때때로 인터넷에서 목격하곤 한다.



‘진짜광기’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위 사례를 보자. 이것은 정상적인 뇌가 아니다.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오징어볶음에 뇌와 영혼이 절여진 상태이다. 냄비 안에 오징어볶음이 남아있는 한 이 사람은 문명인으로서의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이것이 오징어볶음의 위력이다. 그 어떤 음식도 사람을 이 지경으로 몰고가진 않는다. 여러분도 밤에 화장실 가려고 나왔다가 김치찌개에 들어있는 고기를 엄마 몰래 쏙 빼먹어본 적이 있을 것이나 그건 철없는 한때의 좋은 추억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그때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그 냄비에 김치찌개가 아니라 오징어볶음이 들어있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감사히 여기며 남은 삶을 소중히 살아가기 바란다. 뇌가 말랑한 유년시절에 오징어볶음으로부터 일격을 맞았다면 위 글쓴이의 오징어볶음에 대한 다급한 갈구는 여러분의 것이 되었을 수 있다. 오징어볶음은 그만큼이나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음식이다.



인터넷 깨나 해본 사람이라면 짤로 돌아다니는 위 만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2008년 6월부터 2011년 8월까지 네이버에 무려 3시즌을 절찬리에 연재하고 전설의 레전드가 된 귀귀 작가의 <정열맨>이다. 정열맨은 이렇게 시작한다.



귀귀는 알고 있다. 눈 뜨자마자 생각나고, 엄마한테 대들게 만들고, 남자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게 만드는 음식은 오징어볶음뿐이다. 어쩌면 귀귀는 ‘오징어볶음을 좋아하는 캐릭터’라는 설정 떠올리게 되며 그것을 동력으로 1화를 그려나갈 수 있었고, 그리하여 이 전설의 만화가 탄생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고백건대 나도 오징어볶음을 깨우친 자이다. 여러분이 어린 시절 교회에서 누가복음을 읽으며 찬송가를 부를 때 나는 오징어볶음을 찬양하였다. 그대로 성인이 되며 충무김밥까지 좋아하는 부작용을 앓아 창렬한 가격인 줄 알면서도 자꾸 시켜먹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을 정도다.


식당을 갔는데 메뉴에 오징어볶음이 있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여러 식당에서 오징어볶음을 먹어봤지만 만족스럽게 잘하는 곳은 손에 꼽는다. 잘하기가 의외로 어려운 음식이다. 너무 맵거나, 단맛이 부족하거나, 오징어가 질기거나, 야채가 부족하기 하기 일쑤다. 오징어볶음이 맛있으면 그 식당은 다른 음식도 다 맛있다.


그중 회사 근처의 어떤 오리고기 전문식당의 오징어볶음이 훌륭했다. 10점 만점에 8.547은 능히 받을 수준이었다. 감동한 나는 그 식당을 거의 두 달 동안 가서 매일같이 오징어볶음을 시켜먹었다. 나중엔 내가 식당 입구에서 신발만 벗고 있어도 오징어볶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주문을 받는 행위도 형식적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으면 사장님이 나와 눈을 맞추며 “오징어?”라고 말하고,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사장님은 사실은 내가 끄덕이기도 전부터 주방에 “야 오징어 왔다”하고 소리쳤다. 사장님이 안 계시던 날엔 사모님이 반찬을 놔주시며 “(키득키득) 오징어? (키득키득)” 하시곤 주방으로 들어가서 직원분과 무언가 담소를 나누며 꺄르르꺄르르 웃으시곤 했다.


내 폰 자주 쓰는 단축어에 오징어볶음이 저장되어 있다.


나는 머지않아 오징어볶음이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몰아치며 K-오징어 붐이 터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외국에선 오징어를 잘 먹지 않는다지만 이미 <오징어게임>이  글로벌 메가히트를 치며 1차적 배리어는 제거된 상태다. 곧 외국인들이 오징어볶음에 눈이 뜨여 유튜브며 틱톡에 오징어볶음을 찬양하며 댄스를 추고 노래를 부르고 난리를 칠 것이다. 그로 인해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오징어볶음이 재평가되는 오징어볶음 역수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그 시점은 <오징어게임> 시즌2가 공개되는 즈음이 될 확률이 높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