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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chun Kim Mar 10. 2024

김훈은 호날두다

꼴통이었지만 꼰대는 아니었다. 김훈은 이 나라 최고의 작가였다. 소설은 말할 것도 없고 최고의 수필가이도 했다. 자전거 ‘풍륜’을 타고 산맥과 해안을 저어나간 <자전거 여행 1,2>도 좋지만 정점은 <바다의 기별>이었다. 감탄하며 읽다 감탄이 쌓여 필사를 하기도, 주변에 맹렬히 추천하기도 했다.


소방차 소리를 들으며 사람이 사람을 구하러 달려갈 때 다급히 도시를 가르는 사이렌 소리에 비로소 이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에 안심한다는, 사람만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실은 알고 있었다. 한 시절 숭배한 작가를 예우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라면을 끓이며>를 읽다가, 그래도 마지막으로… 라는 마음으로 읽다가 도중에 내려놓으며 이제 다시는 김훈 신작은 안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의 결혼식 주례를 40분 동안 했다고, 다들 질색했지만 나는 끝까지 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김훈을 읽으며 맛이 갔음을 알았다.


인간정서는 먹는 것에 지배받기 때문에 인스턴트 먹으면 삶을 가볍게 여기게 되며,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따뜻한 심성이 자라나는 것이며 하는 침소리 같은 말을 신랑신부를 세워놓고 40분간 나불거린 김훈은 애초에 두 사람의 행복에 관해선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처음부터 꼴통이었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다. 기자 시절부터 시키는 대로 안 하고 내키는 대로 해왔다. 근데 써놓은 걸 보면 글을 말도 안 되게 잘 쓰니까 대체가 불가능해서 안 짤렸을 뿐이다. 길에서 버려진 철가방을 발견하곤 그걸 주워다 서재에 두고 서랍장으로 쓰는 사람이다. 그 철가방 속엔 아직도 연필 껍질과 지우개 가루 쓸어가며 한자한자 눌러쓴 200자 원고지 뭉치들이 고무줄에 묶여있다.


제일 경악스러운 일화는 역시 ‘곡을 금한다’겠다. 부친의 장례를 치르며 관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때 여동생들이 울자 김훈은 이렇게 말했다. "요사스럽다. 곡을 금한다.”


본디 꼴통이란 그런 것이다. 락커다. 원래가 좀 정상이 아니다. 삐딱하고, 시키는 대로 안 하고, 뭔가 희한한 짓을 자꾸 한다. 그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응당 싫어할만하다. 그게 매력이다. 아 낭만이 있다고.


가장 최근 발표한 소설 작품은 주제가 안중근이라… 정말 궁금하지 않다. 나의 김훈은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이다. 또 <바다의 기별>과 <자전거여행1,2>다. 생애 처음 써본 단편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아버리는, 수록할 다른 단편이 없어 산문 세 개를 첨부한 전무후무한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있게 한 사람이다(이상문학상은 단편에 주는 상이며 선정 시 작가가 꼽은 자신의 다른 단편 하나를 넣게 되어있다). 지식인의 서재에 최고의 책으로 우리나라 갯벌을 찾아 조사한 <한국의 갯벌> 같은 책을 가져오는 자이다.


나의 김훈은 그럴 리가 없다. <라면을 끓이며>를 쓴 자는 김훈이 아니고 김휸이다. 나는 김휸은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이 없다. 김휸은 읽지 않는다. 여러 역작을 남기고 어느 순간 깔끔히 절필하신 김훈 작가님은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다. 나의 김훈 짜응은 쉬고 계시다능?


김훈 작가의 실종과 김휸의 출현은 사실 좀 상징적이기도 한 것 같다. 지금 남자 작가가 없다. 다 죽었거나 김휸이 됐다. 혹은 이외수이거나 박범신이다. 그것도 아니면 박민규다. 지금 잘 쓰는 작가는 오직 여자이거나 게이다. 생존자는 김연수 작가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장강명도 장걍묭이 될랑말랑 한다. 이게 기성세대 남성의 오만 및 문단 꼰대의 몰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잡글의 원래 제목은 ‘맛이 간 김훈에 대하여’였으나 ‘김훈은 호날두다’로 바꿨다. 어쨌든 김훈은 이 나라 최고의 문장가였다. ‘맛이 간’ 같은 수식어를 앞에 놓기엔 그래도 좀 그렇다. 호날두도 맛이 갔지만 맛이 간 호날두도 호날두이지 않나. 메시에 대한 열등감으로 가득 차 헛발질하며 한국의 카타르 월드컵 16강을 돕는 은혜 갚은 날강두가 되어 “호하다 추날두” 소리를 듣는다 한들, 호날두는 호날두고 그의 업적은 불멸이다. 호날두는 진짜였다. 김훈도 진짜였다. 김훈을 읽고 생각에 잠긴 누군가의 세계에선 여전히 버려진 섬마다 꽃이 필 것이다.


굿바이, 김훈.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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