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홍콩의 몽콕시장
香港(향항)
향기로운 항구도시…홍콩.
이국적인 매력이 흠씬 느껴지는 도시이다.
카페리를 타고 홍콩 외곽에서 도심에 있는 침사추이로 향했다. 배안에서 내다본 홍콩항구의 바다풍경은 푸르른 물과 어울려 무척 낭만적이다. 직장으로 향하는 길에나 쇼핑을 하러 가는 길도 홍콩에서는 바다를 건너야한다. 배를 타고 외출을 한다면 누구라도 기분이 시원해질 것이다. 교통난과 경제성을 고려하여 카페리 시설을 만들었겠지만 멀리서 온 이방인의 눈에는 아주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분위기는 그만이다.
출렁이는 배가 승객을 도심으로 모시고가니 배에 탄 승객의 기분이 묘하다. 바로 곁에 보이는 바닷물, 물비린내를 풍기며 얕게 출렁이는 바다. 주위에 들러선 드높은 건물들.
항구를 바라보며 밀집해 있는 빌딩들...좁고 뾰죽이 솟은 아파트들...빽빽이 들어선 건물들 사이로 아직도 공사 중인 곳이 더러 있다. 홍콩에 몇 번 왔었지만 매번 항구 주위에는 여전히 어디엔가는 공사 중이다. 좁은 땅덩어리를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쓰려는 것인 듯...
외국도시에 가게 되면 나는 먼저 그곳의 시장을 들러본다. 모든 물건이 값이 싸고 현지 사람들의 모습에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침사추이에서 버스를 타고 중간 지점쯤에 내려 전철을 타고 한참을 걸어가다가 몽콕 시장을 찾아 들어섰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만큼이나 넓다. 가전제품 코너를 벗어나 의류와 운동화가게를 지나 길가에 있는 상가가 아닌 좌판이 늘어선 가운데 길로 들어섰다. 가장자리 가게들도 즐비하게 서있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의 수도 엄청 많다. 물론 세계 각국에서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려고 온 여행객들일 것이다.
시장 속 길거리의 한길 한길을 차례차례 누비며 천천히 걸어본다.
가게에도 여러 가지 상품들이 많지만, 길 가운데 매대나 리어카 같은 곳에도 널빤지를 올려놓고 상인들은 그 위에 물건을 진열해서 판다. 이곳저곳을 둘러 본 다음 나는 리어카에 널빤지를 올려 고정시켜 상품을 진열해서 끌고 다니며 물건을 파는 여자를 보았다.
얼굴이 하얀 젊은 여자다. 그녀의 얼굴은 좀 야위었고, 낯빛은 창백하다. 그녀는 판자 위에 있던 물건을 보여주고 중국말로 설명한다. 지극히 흔하고 평범하고 조악한 지갑종류들이다.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값도 저렴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씩 둘씩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차츰 몰려들었다. 잠시 후 리어카 주위에 사람들이 점차 에워쌌다. 사람들이 몰려서자 그녀의 두 눈이 반짝인다. 그녀는 자신의 리어카에 사람들이 둥근 원처럼 몰려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원 밖에서는 원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 다는 것도 알았던 것 같다. 그녀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 무엇인가를 확인한 다음, 리어카 밑에 두었던 다른 물건들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흰색 부직포 주머니에 쌓인 가방들이다. 주머니를 벗겨내고는 물건을 꺼내 보여주며 역시 중국말로 빠르게 설명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어도 그녀가 명품을 보여주려는 것은 알았다. 이곳은 명품매장이 아니고 시장이니 진품은 아닐 테고, 명품을 그대로 본떠 만든 소위 A급 짝통인 것 같았다. 서울의 백화점 쇼윈도에서나 공항면세점에서나 보았던 바로 그 상품들이었다. 진품과 똑같은 가품들....
손님들이 흥미를 느끼는 기색이 들자, 잠시 후 여자는 하나씩 둘씩 리어카 밑에 있는 공간에서 가방을 꺼내 보여주었다. 행인들은 여자에게로 몰려들어 가방에 시선을 모았다. 여자의 말이 점점 빨라진다. 중국어로 가방이 얼마나 질이 좋은 것인지 설명했다. 또 얼마나 가격이 싼지도...
두 남녀가 내 옆에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자지간인 것 같았다. 아마 어머니에게 선물을 사주려는 듯 젊은 남자가 가방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나이 지긋한 어머니는 하얀 얼굴의 젊은 여자에게 가방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이 많은 여자와 얼굴 하얀 젊은 그녀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 중국말이어서 나는 알아듣지는 못했어도, 가방 속을 보여주는 것을 보니, 이 루이뷔통 핸드백이 얼마나 멋지고 인기가 좋은지, 또 특A급이어서 오리지날과 똑같아 거의 차이 없다고 얼굴 하얀 여자가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것을 보니 가격을 흥정하는 모양이었다. 늙은 여자는 가방의 속을 들여다보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아들인 듯한 남자는 여전히 말없이 구경만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서울에서 옷가게를 열었던 친구 K가 생각난다. 남편이 일찍 명예퇴직을 한데다가 병까지 들어 수술비 병원비로 얼마 되지도 않은 퇴직금 다 날린 후, 그녀는 생활전선에 나가야했다. 집근처 조그만 가게를 빌려 여성 옷을 갖다 걸었다. 블라우스나 스커트 한 장씩 팔았고 친구들이 더러 사주었다. 그 정도면 괜찮았을 텐데......평범한 것보다 명품가방 그럴듯한 것 파는 게 더 마진이 많다고, 어디선가 주워들었는지, 아무 생각도 없이 멋도 모르고 짝퉁 가방을 가게 정면에 진열했다.
“어때? 어울려?”
키 크고 몸매 좋은 그 친구에게 가방은 잘 어울렸다.
“진품살 돈은 없고, 이걸로 아쉬운 대로 멋 부리고 다니지 뭐......마치 내가 부잣집 사모님인 것 같은 기분이네...."
짝퉁도 그 친구가 걸치니 진품 같았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친구는 가게 문을 닫아야했다. 가방들 때문이었다. 그녀는 경찰에 불려갔고 그날로 장사는 끝났다.
또 어디선가 비슷한 이야기도 Tv에서 본 것 같다. 짝퉁을 만들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 이야기이다. 그중의 일부는 오래도록 그 짓을 버리지 못한다고 한다. 왜 일까. 이유는 누구나 다 안다. 루이비통 측에서는 엄격하게 관리 해줄 것을 법에 요청한다고 하는 것 같던데.
얼마 전 루이뷔통과 비슷한 이름의, 루이뷔 통닭이라는 이름의 치킨 집 이야기를 뉴스에서 들었다. 왠지 웃음이 나온다.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그래서인지 치킨 집은 예전보다 더 장사가 잘된다고 했다. 아마도 벌금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화면 속 아나운서가 말한다.
루이비통회사와 짝통 상인 그리고 통닭집, 그네들의 자산의 차이나 생활환경의 차이는 어느 만큼이나 될까. 또 그네들의 삶의 질의 차이, 행복도의 차이는 어느 만큼이나 벌어져 있을까. 저 홍콩바다처럼 넓고 깊을까.
얼굴 하얀 여자는 아직도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가방을 설명 하고 있다. 늙은 여자는 가방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하지 않는가 보다. 늙은 여자가 얼굴하얀 여자로부터 설명을 다 듣고 가방에서 손을 떼었다. 가방은 얼굴 하얀 젊은 여자의 손에 아직 들려있다. 늙은 여자 옆에 서 있던 아들인 듯한 젊은 남자가 얼굴 하얀 젊은 여자에게로 오른 팔을 뻗는다. 그리고 가방이 들려있든 그녀의 손목을 갑자기 붙잡는다. 이어 남자의 왼손에 들려있던 무엇인가를 들어 얼굴 하얀 여자의 손목에 순간 재빨리 갖다 대었다. 그때 철그덕 소리가 들렸다. 수갑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주위에 서있던 구경꾼들이 순식간에 사방팔방으로 흩어진다. 수갑에 차인 팔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얼굴 하얀 여자의 낯빛이 더욱 하얘진다. 놀란 듯 자포자기한 듯 그녀의 표정이 묘하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인 듯.
숙소로 돌아가려면 다시 카페리를 타야한다. 페리 창밖에 푸르른 바다가 다시 보인다. 오늘따라 파도가 좀 더 세게 일렁인다.
내 마음도 오늘따라 푸르르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