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적 규제의 고착화와 디지털 성범죄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인간 존엄성 및 성적자기결정권 논의가 배제된 규범적 규제
현재 우리나라의 음란물 및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규제는 표면적으로 엄격한 규제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절대적 유통 금지 체계(황창근, 2011)로 지칭한다. 음란물이 일정한 연령층에게만 금지되는 ‘상대적 금지’가 아니라 모든 연령층에게 해당되는 ‘절대적 금지’가 현재 우리나라의 규제 상황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보호법 제9조에서는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을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으로 지정하고 있다. 성인의 경우에도 형법 제243조, 제244조에 따라 성적 표현물이 음란물에 해당되기만 하면 음란물을 제작, 유포할 수 없다. 이는 형법 제22장의 성 풍속에 관한 죄에 속한다. 정보통신망법은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한 자‘에 대하여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74조 제1항 제2호). 서울남부지법 2004나273판결(2004.10.7. 선고)에서는 성인의 경우에도 음란한 내용의 사이트에의 접속이 상당한 정도로 제한될 수 있는 경우 이를 마땅히 수인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하급심 판결이 있다. 청소년과 성인이 다르게 취급되는 명확한 기준 없이 청소년과 성인에 대한 규제가 광범위하게 규정되어 있는 실정이다.
위와 같은 우리나라 음란물 및 청소년유해매체물 규제의 보호법익은 ‘선량한 성 풍속’이다. ‘성적 도의 관념’이나 ‘일반인(또는 청소년)의 정상적인 성적 정서’, ‘건전한 성도덕’ 등, 음란물 및 청소년유해매체물 관련 모든 판결에서 성도덕을 보호법익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음란물 및 청소년유해매체물이 우리 사회의 선량한 성 풍속을 침해하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견해는 성을 은밀한 것으로 여기고 성 표현을 금기시했던 유교 윤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는 우리나라에 국가가 국민을 계몽하는 우월한 위치에서 사회의 성 풍속을 선량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내린 사상적 근거이다(주승희, 2005).
외국 입법례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음란물 및 청소년유해매체물 규제의 근거는 전근대적이라 볼 수 있다. 외국의 음란 개념에 대한 규정은 ‘규범적’이라기보다는 ‘기술적’으로, 특정한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 독일에서는 이미 1973년 제4차 형법 개정에 의하여 성 관련 형법에서의 가벌성 제한이라는 목적 하에 음란물에 대한 형법적 개입의 근거를 명확히 하였다.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모든 성표현물이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유해성의 위험을 근거로 하는. 즉, 청소년의 성적 성숙과 발달을 그 목적으로 하는 청소년보호와 동의하지 않는 성인보호를 위한 경우에만 처벌된다. 동의하지 않는 성인의 보호와 포르노그래피의 유해한 영향으로부터의 청소년보호는 인간 존엄성 및 성적 자기결정권의 특별한 표현이다(이덕인, 2011).
프랑스에서도 타인의 시각적 접근이 가능한 장소에서 공연음란행위를 하는 경우 이를 개인적 법익인 성적 침해로 파악하여 처벌하고(형법 제222-32조), 성매매 역시 사람의 존엄성과 관계된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로 규정하면서(제225-5조부터 225-12조까지), 특히 미성년자 또는 특별히 쇠약한 자에 대한 성매매행위를 별도의 범죄구성요건으로 규정(제225-12-1조부터 225-12-4조까지)하고 있다(이덕인, 2011).
외국 입법례와는 달리 국가의 성 풍속 통제 사상이 투영된 우리나라의 법 제도는 음란물 및 청소년유해매체물 규제가 인간 존엄성 및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보호 법익으로 포함하는 기술 상 엄격이 아니라, 사회 질서 유지를 지향점으로 한 규범적으로 엄격한 규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숙한 성 논의 부재한 사회와 디지털 성범죄의 만연
국가의 성 풍속 통제 사상은 사회 전체적으로 인간 존엄성 및 성적 자기결정권 논의가 광범위하게 형성되는 것을 제약했다. 우리나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카메라이용촬영죄의 경우 판단 기준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것인데, ‘다른 사람의 신체’가 어떤 부분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피해자의 호소보다는 성 풍속 통제에 관한 ‘선정성’ 개념을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고합886판결(2013.11.22. 선고)에서 법관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인에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는 20세 여성으로 비록 짧은 원피스를 입었으나 같은 연령대 여성의 통상적인 정도를 넘어서는 과도한 노출에 이르지는 아니하였다.’, ‘피해자는 지하철 전동차 좌석에서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다리 사이에 소형 파우치를 올려놓아 노출된 허벅지 일부를 가렸고, 이어폰을 꼽은 채 핸드폰으로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앉아 있었는데, 이와 같은 자세는 성적 욕망이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기보다는 사람이 왕래하는 공개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에 가깝다.’는 이유였다. 법 기저에 존재하는 국가의 성 풍속 통제 사상이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적절히 보호하는 데 매우 취약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선정성’, ‘음란성’을 기준으로 국가가 나서서 사회의 성 도덕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 성숙한 성 논의가 형성되는 것을 지체시켰다. 즉, 여성을 포함한 피해자들의 인간 존엄성,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되어야 한다는 담론이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교한 소형 카메라 기술의 발달과 높은 비율의 인터넷망 보급은 디지털 성범죄 발생을 급속도로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 동의 없이 촬영된 성표현물 및 동의하에 촬영하였으나 동의 없이 유포되는 성표현물 등과 관련한 디지털 성범죄 문제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인간 존엄성 및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가 얼마나 취약한 지 기술 발달 요인에 의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회 현상인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인터넷상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된다는 점, 지속적인 다운로드 및 업로드가 이루어져 근본적인 정보의 삭제가 어렵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인격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범죄이다. 사진, 영상 속 인물이 자신이 맞는지 확실하지 않을 수 있으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된다. 인터넷 보급은 인터넷상에서 손쉽게 불법 촬영 수법이나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했고,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손쉽게 공개 및 유포되는 데 기여했다. 빠르게 확산된 불법 촬영 행위는 잠재적 가해자들의 심리적 저항감을 완화시켜 불법 촬영을 더욱 손쉽게 실행하게 하는 악순환을 형성했다. 소형 카메라 기술의 발달 또한 불법 촬영 행위가 만연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카메라의 소형화, 고성능화, 저가화로 인해 누구나 쉽게 불법 촬영이 가능하게 되었다. 2008년 이후 중국에서는 키 홀더, 볼펜, 배터리 등 생필품 형태의 소형 카메라가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공급되고 있다(배상균, 2016).
그러나 기술의 발전 자체가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기술 자체는 기본적으로 가치중립적이며 때로는 순기능을 가지고 사회 발전에 기여해 왔다. 높은 인터넷 보급률은 과거에 정보 접근성이 낮았던 사회 취약 계층에게 필요한 정부 서비스가 적시에 제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 또한 카메라의 소형화, 고성능화, 저가화는 가정폭력, 아동학대의 증거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게 했다. 결국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그 사회의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이제 국가의 ‘성 풍속 통제 사상’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구시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법원 2006도3558판결(2008.3.13. 선고)과 같이 국가의 성도덕, 성풍속의 보호와 더불어 청소년 보호 또는 성인의 성적 결정권 보호라는 측면을 음란물 규제 방침에 포함한 선례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이후에도 지속적이고 일관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며, 입법화나 명문화로도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한계가 존재한다. 지금까지 국가의 ‘성 풍속 통제 사상’은 현실과 유리된 규범적으로만 엄격한 음란물 규제를 형성해 왔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가 만연하게 하는 취약한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 왔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성 풍속 통제 사상’은 앞으로 반드시 사라져야 할 구시대적 유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