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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Oct 17. 2021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당연한 것의 당연하지 않음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2008)'를 본 후기

십여년전 개봉한 청불영화 감상하기 (1탄)


요즘 내 인생에 다신 없을 직장 생활의 워라벨을 즐기고 있는데, 집에서 뒹굴거리며 평소 궁금했던 영화와 드라마를 틈틈히 찾아보고 있다. 그 중 소개하고 싶은 영화가 바로 '아내가 결혼했다(2008)'이다.

최근 우연히도 손예진이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를 연달아 몇편 보게 되었는데, 비교적 최근 작품인 영화 '협상(2018)',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2019~2020)'이었다(모두 최근 몇주간 몰아봤다). 작품 속 손예진을 보면서, '와 지금도 저렇게 예쁘고 연기를 잘 하는데 10년 전엔 도대체 어땠을까?'라는 호기심이 일었고, 오직 배우에 대한 호기심으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2008)'를 선택했다. 근데 진짜 대박적으로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출처: 다음(Daum)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2008)'를 떠올리면 나는 중학교 체육 선생님이 생각난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중학교 체육 선생님이 이 영화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지 수업시간에 영화에 대해 주절주절 얘기해주곤 했다. 자기 아내가 그러면 어떡해야 하냐는 둥, 웬만한 공포영화보다도 더 무서웠다는 둥ㅎㅎ 이런 반응을 듣고 그냥 어그로만 잔뜩 끄는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성인이 된 후에도 굳이 이 영화를 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지극히 2020년대의 관점으로 2008년 개봉한 영화를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김주혁이 손예진이 가진 폴리아모리 성향을 이해하고 '아내의 두 번째 결혼'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이야기가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편의상 극중 이름이 아닌 배우 이름을 사용함). 그런데 아내가 결혼한 '이후'에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고, 돌잔치를 하는 것까지도 나오는 등 폴리아모리 가정의 매우 현실적인 부분을 건드려주어 놀랐다. 영화를 보면서 손예진의 가치관에 큰 공감을 하진 않았지만, 최대한 공감해보려 노력해 보았을 때 그녀는 배타적인(소유욕, 핏줄) 사랑을 혐오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특히, 있는 그대로 헌신적인, 아가페(agape)적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가 소설 원작이라고 하니 소설을 읽어보면 좀더 구체적인 인물 설정(가족 관계 등)이 나오지 않을까. 영화는 폴리아모리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역할에 그친 것 같다.


출처: 다음(Daum)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손예진이기에 가능한 스토리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로부터 몇년 후 내가 대학생 일때(2010년대)에도 이러한 폴리아모리에 대한 공감과 담론이 크게 확장한 적이 있었다. 다비치의 노래 '두사랑'이 인기를 끌었고, 대학 커뮤니티에는 폴리아모리인 자신에 대해 고백하는 내용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주변 지인 중에서도 폴리아모리 연애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지금 어떤 연애 성향을 가진채 살아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에 당연하다고만 받아들였던 사회 틀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살아가길 선택했다는 것에는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회 발전의 원동력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2010년대에 내가 경험했던 폴리아모리 담론과 달리 2008년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2008)'의 손예진의 철학이 거북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바로 그녀의 선택들은 모두 상대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폭력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손예진은 연애를 할 때부터 자신의 폴리아모리 성향에 대해 의식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고 해도 본인이 폴리아모리 연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하는 게 정상적이다. '내가 결혼만 한 번 더 하겠다는 데 넌 그걸 못해주냐'와 같은 주옥같은 명대사는 오히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않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언행이다. 나의 중학교 체육선생님이 느꼈던 충격의 감정 또한 바로 이런 '청천벽력' 같은 상황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폴리아모리 연애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썸을 타거나, 연애를 할때 이런 '청천벽력'의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그만큼 사랑이란 내가 결코 그 세기를 통제할 수 없는 '파도'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서핑'을 해나가느냐에 따라 연애 생활의 질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2008)'는 일부 폭력적인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김주혁이 연기한 감정의 흐름이 무척이나 현실적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B급 영화로 전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영화 속에서 김주혁은 여러번 고꾸라져 바닥을 치는 모습을 보였지만 '서핑'을 포기하지 않았다. 덕분에 베드신, 중혼 등 자극적인 요소가 넘치는 설정에서도 '아, 저런 가족과 삶의 형태도 존재하는 구나'라는 인식의 확장을 가져다준 영화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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