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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Oct 17. 2021

영화 '비스티 보이즈', 사랑이 일인 사람들에 관하여

영화 '비스티 보이즈(2008)'를 본 후기

십여년전 개봉한 청불영화 감상하기 (2탄)


매우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지만, 사람들이 나에게 '성매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볼 때마다 내 답은 항상 같았다. 성매매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 '국가'가 개입할 영역이 아니라는 것. 성매매를 지극히 재화/서비스의 구입과 판매로만 생각했던 나는 암시장(black market)도 시장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의 구매자도 판매자도 자유의지를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성매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유의지란 존재하는 것일까? 영화 '비스티 보이즈(2008)'는 최근 나에게 그러한 물음을 던져주었다.


**영화에선 다양한 용어가 나오는데, 영화 속에 나오는 업소를 성매매 업장으로 묶어도 되는지는 확실하지가 않음. 매춘과는 다르다는 뉘앙스가 여러번 나오기 때문. 하지만 그 구분에 대해선 잘 모르는 부분이라 일단 같이 묶어서 생각하겠음.


영화 '비스티 보이즈(2008)'를 보게 된 이유는 위의 설명과 같은 장황한, 학술적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본 배우들(하정우, 정경호, 윤진서 등)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볼 때마다 여러번 '비스티 보이(2008)'라는 영화 제목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영화 내용을 검색해 보면서 호스트바에 관한 내용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얼마전 내가 애용하는 네이버 시리즈온에 잠시 무료로 풀렸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감상하게 되었다(무료 영화라 봤다는 사실을 구구절절 길게도 써놓음).


다음(Daum) 영화 '비스티 보이즈(2008)'


비스티 보이즈(2008)는 이게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화면 구도를 자주 사용한다. 인물들의 행동을 오랜 시간 원테이크로 관찰하는 장면, 흔들리는 카메라를 들고 취재하듯이 인물의 동선을 따라 가는 장면 등이 여러 차례 나온다. 형식적인 부분 외에도 노래 '연극이 끝난 후'의 가사처럼 화려한 무대 뒤에 존재하는 업계 종사자들의 고독한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여자들이 일을 끝내고 남자 업소에서 회식을 하다 깽판치는 모습, 화려한 옷을 입고 일을 하던 사람이 집으로 돌아와 다시 수수한 옷차림으로 돌아가는 모습 등이 그러했다. 이처럼 영화 '비스티 보이즈(2008)'는 이 영화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물론 초반에만 그렇다. 이후에는 모두 파탄...)


이처럼 다큐 같은 영화 속에서도 몇 번씩 극적인 장면이 존재한다. 특히 당장 5천만원을 구해야 하는 하정우(편의 상 극중 이름이 아닌 배우 이름을 사용)가 공사를 치고(?) 있던 여성에게 단호한 거절의 말을 듣고 돌변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장면에서 하정우는 여성을 심하게 폭행하며(주먹으로 복부를 가격해 여성이 바닥에 쓰러진다) "사랑한다고 이 OOO아"를 시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 하정우는 마치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아 화가 난(또는 억울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사람들이, 세상이 나의 노력과 시간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여기서 '사랑'이란 어쩌면 하정우가 생존하기 위해 해왔던 '노력'인 것만 같다.


다음(Daum) 영화 '비스티 보이즈(2008)'


이 부분에서 나는 특히 하정우의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물론 여성을 꽤 잔인하게 폭행한 장면에서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꽤 예전 영화라 그런지 전반적으로 그런 불편한 느낌을 준다). 애초에 처음부터 업소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하정우는 어떠한 삶을 선택했을까. 하정우가 이러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은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었을까. 높은 확률로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드는 상황들이 있다면, 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선택을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단정지을 수 있을까. 국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지를 제시해야 하는가. 그리고 정해진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 과연 국가의 역할인가 등등. 자유의지에 대한 의문은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물론 의문에 대한 답은 제시할 순 없지만(자유의지의 존재 여부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면, 나는 노벨상을 탔을 거다) 그저 의문을 가지고 여러 각도에서 사회의 단면을 뜯어볼 뿐이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서 하정우는 빚쟁이들을 피해 일본으로 도망간 후에도 같은 업종에서 일하며 영원히 이 업계를 떠나지 못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하정우가 정말 성실한 사람인데,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업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영화 속 하정우는 전혀 성실하지 않은 한심 그 자체의 사람으로 나온다. 돈이 생겨도 술과 도박에 금방 탕진해 버리고, 남의 돈도 몰래 마구 써버려서 여러 사람들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당하곤 한다. 내 입장에선 하정우가 당연히 바보 같은 한심 종자이지만, 반대로 하정우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극 중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자유의지는 참 상대적인 개념이 아닐까.


물론 이 영화의 내용이 막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윤계상, 윤진서의 치정 내용은 이해가 잘 안되고 매우 과하다고 생각해서 글에서 완전히 제외했다. 하지만 영화의 부분 부분에서 '감독이 지금 나에게 이런 화두를 던지고 있구나', '여기선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겠구나'. 이렇게 혼자 다큐처럼 감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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