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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Apr 10. 2022

영화 '레미제라블', 강한 여성 캐릭터들의 대약진

영화 '레미제라블(2012)'을 본 후기

학창시절 영화관에서 '레미제라블(2012)'을 본 뒤 십여 년 만에 왓챠를 통해 영화를 다시 보았다. 당시 봤던 레미제라블은 정말 기대 이하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본 레미제라블은 왠걸 정말 명작이었다! 타이틀롤 올라갈 때 나도 모르게 노트북 보면서 박수를 쳤다는 사실... 강산이 변한 그 시간만큼 내가 많이 성장했고 영화를 보는 관점도 성숙해졌다는 것이겠지.


출처: 다음(DAUM) 영화


영화 '레미제라블(2012)'은 2시간 30분의 요즘 영화들과 비교하면 꽤 많이 긴 영화이다. 그래서 사실 몇 번에 걸쳐 자체적인 휴식 시간을 가진 후에 영화를 다 볼 수 있었다. (이건 영화관이 아니라 집에서 영화를 보면 나타나는 내 문제점이기도 하다) 원래 뮤지컬로 공연되던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라 대부분의 대사들이 노래로 이루어지곤 하는데, 조금 뜬금 없다 싶은 상황에서도 노래가 시작되어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영화 첫 장면에서 노예들을 혹사시키는 교도관 '자베르'와 죄수 24601 '장발장'의 대치 상황과 노인이 된 '장발장'의 죽음이 가까워 온 상황에서 '장발장'과 '코제트', '판틴' 등이 함께 노래 부르는 상황이 나에게 그러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뮤지컬 공연이 아닌 영화의 배우 연기 방식이나 대사 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그 장면들을 곱씹어 보자면, 오히려 그런 연출 방식이 현실과 예술의 모호한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영화의 고유한 분위기가 아니었나 싶다.


어린시절 레미제라블을 봤을 때 기억에 남았던 건 오직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 粉)'였다. 아무 생각 없이 '코제트 예쁘다', '노래 잘한다' 따위의 말초적인 감상만으로 가득했었다. 그런데 20대 후반이 된 내가 본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바로 '에포닌(사만다 바크스 粉)'이다. 만약 내가 아이가 있었다면, 좀 더 모성애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있었다면, 어쩌면 '판틴(앤 해서웨이 紛)'을 가장 강렬하게 기억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자식은 영원한 불효자인가 보다. 부모가 되기 전엔 부모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 못한다.ㅎㅎ 하지만 판틴이 우는 장면에서 함께 운 건 안 비밀...


출처: 다음(DAUM) 영화


사기꾼 부모에게서 태어난 에포닌은 반듯하고 열정적인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 粉)를 오랫동안 짝사랑 해왔다. 그녀는 마리우스가 코제트와 연락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도운 후 잠시라도 그가 자신을 봐주었다며 행복해한다. 빗속에서 마리우스를 사랑하는 열꽃 같은 마음을 홀로 노래하고, 그를 지키기 위해 혁명군과 정부군이 대치하고 있는 바리케이드에도 뛰어드는 에포닌은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누구보다도 강하고 아름다운 인물이었다. 그녀는 "혁명을 노래하지 않아도, 고귀한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몇몇 장면에선 에포닌과 대비되어 코제트가 세상 물정 모르는 고귀한 아가씨처럼 느껴졌달까... (물론 코제트 역시 어린 시절부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안타까운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일부러 그런 대비를 주기 위해서 에포닌 캐릭터를 원작과 다르게 비중을 높인 것 같다.


출처: 다음(DAUM) 영화


그 다음 강렬했던 장면은 판틴이 딸을 위해 돈을 마련하던 모습이었다. 누명을 쓰고 일하던 공장에서 쫓겨난 그녀는 머리를 깎고, 치아를 뽑고, 몸을 팔아 아픈 딸을 위한 치료비를 마련한다. 사실 사기꾼(에포닌의 부모)에게 속은 것이었지만 말이다. 병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아픈 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자신을 자책하는 그녀에게서 나의 엄마가 겹쳐보여 눈물이 났다.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미안해하는 모든 엄마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판틴. 그녀의 노래 속에는 사랑하는 아이를 향한 애절한 마음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있었다. 앤 해서웨이가 이 장면을 위해 강한 체중감량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리고 삭발도 감행했다) 배우의 희생과 열정 덕분에 이 장면이 수많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명실상부한 레미제라블의 명장면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한다.


2012년 판 레미제라블을 다시 보니 여성 캐릭터들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역사속 비참한(miserable) 사람들이 대다수 여성이었다는 사실도 있었겠지만, 감독이 이를 특히 강조하는 연출을 했다고 생각한다. 약 10년 전의 영화인데, 신기하게 요즘의 화두가 반영되었다는 생각도 들면서, 이 영화가 지금 개봉되었다면 과연 한국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이 영화가 또 다른 분열의 기폭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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