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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 Mar 31. 2016

06. 당신의 여행은 어떠십니까?

은밀히 알아보는 나만의 여행 스타일 테스트..


여행이라고 다 같은 여행은 아니다.

같은 곳으로 한날한시에 함께 떠나 같은 일정을 공유하더라도, 그 여행에서 보고, 경험하고, 느끼는 건 너와 내가 다르다.


날씨가 절반,

그리고 그날의 신체리듬,

각자의 취향,

우연히 마주친 어떤 상황 등..

몇 가지 변수들은 같은 기본 재료들로도 무수한 변주를 만들어낸다.


7년 사귄 애인과 헤어지고 훌쩍 떠난 혼자 만의 이별 여행에서 유라시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실었다가 만난 옆자리 사람과 인연이 닿아 결혼에 골인해 함께 세계일주를 다니는 J 씨.

우연히 지나가던 길목에 펼쳐져있던 벼룩시장에서 국내에서는 너무 고가라 엄두도 못 냈던 시계를 헐값에 득템한 H 씨.

생각 없이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천년에 딱 하루만 핀다는 꽃을 보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가 화제의 인물로 매스컴까지 타게 된 L 씨.


이렇게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여행 무용담을 만들어 오는 여행 성공자들의 경우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여행 실패자들도 있다.


잔뜩 기대를 하고 갔지만 하필 성수기의 절정이라 끝없이 늘어선 줄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뒤통수만 질리도록 구경하다 온 골상학 카페 유령회원 K 씨.

호젓한 곳에서 감수성을 높여볼 요량으로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예기지 않게 총 여행시간의 1/3 이상을 좁은 버스 안에서 시달린 만성 관절염 환자 P 씨.

현지 음식들을 맛볼 기대를 품고 떠난 여행의 동행자로 김치 없이는 못 산다는 지독한 한식 성애자를 만난 배려심 과한 C 씨..


하지만 고난과 역경, 한없는 인내의 기억으로 점철된 여행 후기들을 꺼내 놓는 여행 실패자들의 여행도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보다 즐거운 다음 여행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유의사항 하나씩 배웠을 테니 앞으로 여행 성공자로 거듭날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는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여행 성공자들과 실패자들의 사례들을 통해 성공적인 여행으로 가는 지름길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다면 제대로 헛다리다. 나는 발생 가능한 모든 변수를 계산해낼 수 있는 알파고가 아니고, 어차피 여행은 복불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어떤 여행 스타일을 추구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준비한다면 여행의 즐거움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점.


다음의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나의 여행 스타일을 파악해 보자. 

일주일 이상 처음 가보는 나라를 여행한다고 가정하고 테스트에 임한다.



<나의 여행 스타일 테스트>


1. 여행 계획은 여유를 두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세부적으로 짜야 마음이 편하다.

    Yes -> 3번, No -> 2번

2. 여행은 충동적으로 가야 제맛! 마음 닿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별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는 편이다.

    Yes -> 3번, No -> 4번

3. 관광명소, 미술관, 맛집, 쇼핑거리 등 가이드북에서 제시한 포인트를 모두 섭렵해야 직성이 풀린다.

    Yes -> 5번, No -> 4번

4. 집 떠나면 다 고생이고, 멀리 가봤자 사람 사는 데 다 거기서 거기다.

    Yes -> E, No -> 5번

5. 혼자 떠나는 여행이 메르스보다 무섭다. 가이드나 동행자가 없는 여행은 엄두가 안 난다.

    Yes -> 7번, No -> 6번

6. 셀카봉은 필수.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과도하게 블로그를 위한 사진에 집착한다.

    Yes -> F, No -> 7번

7. 길을 헤매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일정에 차질이 생겼을 때 패닉 상태에 빠진다.

      Yes -> 8번, No -> 9번

8. 빡빡하게 계획한 하루 일정을 완벽하게 수행해서 모든 관광명소들을 섭렵했을 때 가장 뿌듯하다.

     Yes -> 11번, No -> 9번

9. 우연히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상적인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Yes -> 10번, No -> 12번

10. 관광명소보다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들을 물어물어 찾아다니는 것이 즐겁다.

    Yes -> 11번, No -> 12번

11.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얼마예요' 등, 기본적인 문장 몇 개는 외워 꼭 실전에 사용해본다.

    Yes -> 13번, No -> 12번

12. 안전과 편안함 제일주의. 복대와 앞으로 멘 백팩 등의 아이템으로 내가 관광객임을 최대한 알린다.

    Yes -> A, No -> 13번

13. 내가 관광객임을 알리지 말라는 것에 포인트를 둬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현지인 코스프레를 하는 편이다. 

    Yes -> 14번, No -> 15번

14. 컨디션이 저조해도 걸을 수만 있다면 최대한 계획한 일정을 완수하는 게 여행자의 소임이다.

    Yes -> A, No -> 15번

15. 컨디션이 저조한 날에는 숙소나 근처 카페에서 음악 감상이나 독서를 하며 하루 쉬어가도 좋다.

    Yes -> B, No -> 16번

16. 여행에서 새로운 친구들이나 현지인들과 만나 교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즐겁다.

    Yes -> C, No -> 17

17. 청결과 프라이버시 문제로 숙소 선정에 만전을 기하는 편이다.  

    Yes -> D, No -> A와 C의 중간 어디쯤


A. 치밀한 여행 설계자 혹은 정복자 Style

당신은 1년 전부터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야 안심이 되는 치밀한 여행 설계자 스타일이다. 최소 2권 이상의 여행 가이드북을 정독하고, 인터넷에서 얻은 자료와 취합하여 최단시간 최다 명소를 찍을 수 있는 촘촘한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설계한 계획에 맞춰 여행이 빈틈없이 진행되었을 때 진한 쾌감을 느낀다.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니라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자. 가이드북에 나온 맛집을 찾아 맹렬히 돌진하는 사이에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소박한 진짜 맛집을 지나쳤을 수도 있으니깐.


B. 즉흥적이며 자유로운 보헤미안 Style

당신은 도무지 여행에 대한 갈망을 누를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기분에 따라 충동적으로 여행지를 선택하고 특별한 준비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특별한 목적의식을 갖고 발바닥에 물집 잡히게 명소들을 돌아보는 여행은 당신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걷다가 예쁜 커피숍에 한참을 앉아있거나, 햇빛 좋은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는 등 새로운 환경에서 편안한 일상을 즐기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만약 여행 스타일이 다른 동행자가 있다면, '따로 또 같이'하는 여행 방식을 상대에게 미리 제시해보자. 각자의 스타일이 존중된다면 서로 별 트러블 없이 모두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확률이 높아질 듯.      


C. 아웃라인만으로 나만의 여행을 개척하는 모험가 Style

당신은 아웃라인은 확고하지만 디테일한 계획을 거부하는 대범한 모험가 스타일이다. 남들 다 보는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관광명소나 맛집들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직접 현지인들과 접촉을 시도해 숨어있는 보물들을 찾아내는 것을 선호하고, 여행 중에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예정에 없던 일정을 보내는 것에도 스스럼이 없을 것이다. 여행이 주는 우연한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융통성을 지닌 당신은 여행 만랩의 달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른 스타일보다 높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테마가 있는 여행도 적극 추천해 본다. 당신의 여행이 좀 더 Fun Fun 해 질 수도.

        

D. 완벽한 여행을 꿈꾸는 욕심쟁이 Style

당신은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많다. 색다른 풍경들도 보고 싶고, 지적 허영심도 충족하고 싶어서 그 나라 문화에 대한 공부도 꽤 많이 하는 모범생 스타일이다. 완벽한 사진을 위해 아침잠도 포기하고 스타일링에 투자하기도 한다. 면세점에서 갖고 싶었던 물건을 득템 하는 것도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 새로운 경험도 좋지만, 내가 살아온 라이프스타일도 양보할 수 없다.

조금은 나를 놓고 느슨하게 여행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모든 여행의 기억이 배경만 다를 뿐 콘텐츠가 똑같다면 재미없으니까.


E. 귀차니스트 혹은 세상 달관한 은둔자 Style

수년간 쌓인 만성피로와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세상만사의 이치를 꿰뚫어버린 올드하고 성숙한 영혼의 소유자일 지도 모른다.

집에서 척추에 무리를 주지 않고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무중력 의자를 구입해서 앉아보자. 지긋이 눈을 감고 늙고 지친 영혼의 힐링 여행부터 시도해보는 건 어떨지?


F. 파워블로거 혹은 증거 지상주의 Style

당신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소중한 정보들을 발 빠르게 전해주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는 고귀한 사명감을 지니고 여행에 임하고 있거나, 인간의 감각을 믿지 못하고 사진이라는 물리적 증거를 통해 나의 여행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스타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속이 아닌 사진 속에만 남아 있을 여행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보자. 어쩌면 수천 장의 사진들마저 컴컴한 외장하드 속에서 수년간 잠들어 있을 지도.




사실 모두 제각각의 목적과 얼굴을 한 여행에 성공과 실패의 개념은 없다. 내 마음만 활짝 열려있다면, 굴러다니는 개똥을 밟아도 좋을 수 있다. (솔직히 스페인 거리를 걷다가 개똥을 밟았을 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론 개똥 지뢰밭을 제대로 요리조리 피해 다닐 수 있는 엄청난 능력치를 획득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세상의 모든 여행은 즐거워야 한다.

인생이라는 여행 또한 그렇다.

아무쪼록 모두 신의 가호가 깃든 즐거운 여행 하시길!





페리를 기다리는 동안 체력 급충전이 가능했던 수오멘린나 섬의 한적한 벤치.. (Helsinki, Finland - Oct. 2015)


[에필로그]

위의 여행 스타일 테스트는 전문 기관의 검증 없이 손수 제작한 야매 테스트이다. 하지만 태클은 금물..

작가의 농간에 놀아났다고 분노하기보다는, 나의 여행을 돌아보고 앞으로 더 나은 여행을 꿈꿀 수 있는 계기로 여기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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