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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 Mar 30. 2016

09. 버려진 것들을 위한 노래

깨지고 부서졌어도 상관없어..


GPS 좌표 63.459523,-19.364618


아이슬란드 남부 해안에 위치한 마을인 비크에서 링로드라 불리는 1번 국도를 따라 수도인 레이캬비크를 향해 가다 보면 색다른 풍경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때는 바야흐로 1973년 11월 24일 토요일.

미 해군 소속의 더글라스 슈퍼 DC-3, 혹은 '다코타'로 알려진 C-47 SkyTrain으로 추정되는 수송기 한 대가 아이슬란드 남부 해안가에 위치한 소울헤이마산뒤르(Sólheimasandur)의 화산재로 이루어진 검은 해변 위로 불시착했다. 원인은 아마도 급격한 기온 하락으로 인해 발생한 아이싱 현상으로, 대부분의 아이싱 현상으로 추락하는 비행기들이 그렇듯 연료탱크에서 수분을 배출하는 구멍이 미처 녹지 못한 얼음 알갱이들로 막히면서 정상적인 비행이 불가능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아무튼 다행히 수송기였던 대다가 워낙 잘 훈련된 해군들이 탑승하고 있었는지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이슬란드 비행기 잔해는 특별한 수습 없이 인적 없는 해변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동안 세월과 풍파에 노출되어 잔뜩 녹슨 비행기 잔해는 화성에 온 듯한 비현실적인 아이슬란드의 풍경에 세기말적인 그로테스크함을 더하며 사진 촬영하기에 더없이 매력적인 핫스팟으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도대체 왜 이 사고 현장을 수습하지 않고 방치했을까?

설마 몇 년 뒤 입소문 타고 핫플레이스가 될 거라는 선견지명이 있어서?


아이슬란드는 면적 103,000㎢, 인구는 2013년 기준으로 323,002명으로 추산되는 유럽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국가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면적은 99,720㎢, 인구는 2016년 2월 행정자치부 기준으로 약 51,555,409명에 달한다. 비슷한 면적이지만 아이슬란드 대 대한민국의 인구수는 1대 160.

아이슬란드와 지형적으로 유사한 제주도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더 쉽다. 제주도 면적은 1,848㎢, 인구는 2015년 12월 기준 64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즉, 제주도보다 56배 큰 땅덩어리에서 제주도 인구의 절반만이 살고 있는 셈이니, 아이슬란드에서 사람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는 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인구밀도가 높은 번잡한 도시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인적 드문 바닷가에 떨어진 비행기 잔해 하나쯤 치우지 않아도, 허허판에 사고로 파손된 자동차 하나 버려져 있어도 그 누구 하나 불편하다고 민원을 넣지 않는 것이겠지.

인구밀도가 적어 일손도 부족하고 물가는 턱없이 비싸니 치우는데 소요될 경비와 인건비 경감의 유혹도 딜레마가 됐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잔해들은 오고 가는 여행객들에게 그 어떤 경고 문구보다도 안전운전에 대한 강렬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시각적인 효과도 있다. 그야말로 일석삼조인 셈.




아무튼 아이슬란드에 버려진 잔해들은 운이 좋았다. 모든 것들을 예술로 승화시켜줄 만큼 아름다운 주변 환경의 특혜를 입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매력적인 오브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버려지는 모든 것들이 그런 행운을 얻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일찌감치 이 세상에서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채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 우주 속의 먼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주기는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우연히 발견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디오니소스를 위한 찬가'에 나오는 한 문장이 마음을 끈다.


The wreckage of stars - I built a world from this wreckage.

별들의 잔해로 나는 하나의 세상을 만들었네.


세상의 모든 부서지고 버려진 것들은 얼마든지 다시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태어날 수 있다.

누군가의 관심이 존재한다면..


다음의 시 한 구절을 세상에 버려진 모든 존재들에게 바친다.


No Matter Your Wreckage


No matter your wreckage.

부서졌어도 상관없어.

There will be someone to find you beautiful, despite the cruddy metal.

아무리 지저분한 쇳덩이라도, 너의 아름다움을 찾아내 줄 누군가가 있을 테니.

Your ruin is not to be hidden behind paint and canvas.

부서진 너의 모습은 페인트와 캔버스 뒤에는 숨겨지지 않아.

Let them see the cracks.

그냥 너의 허물을 그들에게 보여주렴.

Someone will come to sing into these empty spaces.

누군가가 와서 그 빈 틈을 채워줄 노래를 불러줄 테니까.


- Sarah Kay





버려져있어도 예쁘다.. 너도 그렇다.. (on the way from Höfn to Jökulsárlón, Iceland - Oct.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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