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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 Mar 29. 2016

04. Lost on Mars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 즐거움..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현재를 따르는 노예다."

-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익숙한 곳에서 되풀이되는 일상, 그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의 끝은 우주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가슴팍에 커다란 돼지 한 마리를 올려놓고 있는 듯, 다소 갑갑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사고의 과정들은 반복을 거듭하며 점점 패턴화 되어간다. 나의 뇌는 패턴화 된 데이터들을 통합시켜 하나의 단순한 반사작용쯤으로 치부해버린다. 어느덧 나의 뇌는 나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의 흔적조차 무심히 지워버린다.

페소아의 말대로 나의 사고에는 추론이 없고, 나의 감정에는 감동이 없다. 그래서 일주일이 일 년 같은 나날들은 일 년이 지나고 나면 일주일이 지난 것 같다. 서서히 좀비가 되어간다.


아직 좀비가 되고 싶지 않은 나는 그래서 가끔 도망가고 싶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를 알지 못하는 곳,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되는 알 수 없는 좌절의 수렁에 빠진 사고의 패턴을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다.

예를 들면.. 화성 같은 곳..?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 눈 앞에는 생전 보지 못한 생경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끝없이 펼쳐진 검은 황야엔 검은 돌덩이들 뿐 인적조차 느껴지지 않고, 멀리 쓰러져가는 오래된 표지판 하나만 덩그러니 서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렇게 적혀있다.


Добро пожаловать в Марс
Welcome to Mars
मंगल के स्वागत के लिए

표지판에 달려있는 버튼을 누르니 지지직거리는 화이트 노이즈에 속에서 다 찢어져가는 목소리의 안내멘트가 끊길 듯 말듯 흘러나온다.


"화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당신은 NASA의 아레스 3 탐사대 대원 마크 와트니 다음으로 화성에서 길을 잃으신 두 번째 지구인이십니다.

참고로 마크 씨는 이곳에서 12,306km 떨어진 곳에서 지구 시간으로 461일 머물다 지구로 회귀하셨습니다. 화성에서 보낸 시간의 대부분은 지구의 작물인 감자를 재배하는 일에 소일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화성이라니..!"


머릿속에 있는 화성에 대한 미천한 짧은 지식들을 탈탈 털어 꺼내본다.

지표에 산화철이 다량 함유되어있어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붉은 행성이라 불리고, 위성이 두 개 있다고 했어. 포보스랑 데이모스였던가?

대기권에 있는 먼지들이 붉은빛의 파장을 흡수해서 석양이 푸른빛을 띤다고 했는데, 드디어 볼 수 있겠네. 보고 있으면 정말 기분 묘하겠다.

그리고 중력은 지구의 1/3 정도 된다고 들었으니 걸어 다니기 쉽진 않겠고, 대기가 희박해서 아무래도 숨도 쉬기 힘들겠지..


근데.. 왜 우주복도 안 입고 있는데 숨도 잘 쉬어지고, 걸어 다니는 데도 불편함이 전혀 없는 거지?

내가 있는 이곳이 현실일까?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얼른 볼을 세게 꼬집어본다.

음.. 하나도 안 아픈 걸 보니 꿈이다..




화성보다 낯선 곳, 아이슬란드.


시야가 360도가 아닌 것이 몹시 안타까울 정도로, 눈앞은 온통 광활하게 펼쳐진 낯설고도 신기한 풍광들로 꽉 차있다. 뿐만 아니라, 뻥 뚫린 도로를 20분쯤 달리다 보면 또 다른 세상에 와있다.

나의 뇌는 망막에서 1/4초 단위로 찍어내는 시각정보들을 분류하고 통합하여 압축해보려 하지만, 정보마다 각기 다른 데이터가 담겨있어 불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담기에도 벅차다. 다른 사고의 기능을 수행할 여유는 없다.

과부하가 걸린다.

사고는 정지되고, 오직 끝없는 감동만 남는다.


어느새 나는 나를 잊고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른다.


이런 곳에서는 잠시 길을 잃어도 좋다.




화성보다 낯선..? 화성은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Skaftafelljökull, Iceland - Oct. 2015)
여긴 또 어디..? 나는 누구..? (on the way from Höfn to Reykjavik - Oct. 2015)


[에필로그]

전광판의 "화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는 화성 탐사에 성공한 나라들을 기리기 위해 차례로 해당 국가의 언어로 쓰여있음.


1971년 12월 1일, 러시아의 Mars 3 최초로 화성 착륙 성공. 20초간 동영상 데이터 전송 후 폭발.

1975년, 미국의 쌍둥이 탐사선 Viking 1(8월 20일), Viking 2(9월 9일) 차례로 화성 착륙 성공.

2014년 9월 24일, 인도에서 최소 비용으로 제작한 Mangalyaan 탐사선 단번에 화성 궤도 안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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