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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 Mar 29. 2016

16. 너는 나의 소울메이트

리스본에서 만난 환상 동화..


소울메이트를 만난다는 건 칠십사억천백만 대 일의 확률.

어쩌면 우린 있을 수 없는 일에 괜한 희망을 품고 사는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놓고 싶지 않은 그런 실낱같은 희망..


그 꿈의 시리즈가 연재되기 시작한 건, 십 년 전 어느 가을날이었다.

우린 길게 뻗어있는 메타세콰이어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밑도 끝도 없이 마냥 행복했다. 상대의 얼굴은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너무나 편안한 느낌의 사람이었다. 서로 단풍이 내려앉은 예쁜 가을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깔깔거리고 있었고, 그렇게 순간순간 터져나오는 웃음만으로도 서로가 충분히 교감 가능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은 메타세콰이어의 촘촘한 잎새 사이로 부서져 내려와 기분 좋은 바람에 가볍게 날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이마와 콧잔등에 살포시 내려앉았고, 우린 그렇게 서서히 물들어가는 색색의 단풍만큼 찬란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났다. 내 입꼬리는 여전히 그 기분 좋은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행복함이 가득 충전된 채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본 건 살면서 과연 몇 번이나 있었을까?  


한 달이 지나고, 꿈속에서 또 다시 그 사람을 만났다. 미니시리즈 제 2화를 보듯 자연스러운 연결이었다. 그 사람의 얼굴은 여전히 확인할 수 없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미 수없는 시간을 함께 해온 소울메이트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깐.


그렇게 우리는 가끔씩 연재되는 꿈에서 만났고, 그 사람을 만나고 난 아침은 설명할 수 없는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힘들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위로받는 느낌에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 간격으로 띄엄띄엄 이어진 미니시리즈는 7부작까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8회는 한참이 지난 일 년 후에 찾아왔다.


어딘지 모를 곳을 한참 걷다가 도착한 곳은 인적 드문 어느 바닷가.

동터오는 하늘은 온통 오렌지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저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그 사람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반가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여전히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마치 각자의 머리 위에 프롬프터라도 띄워져 있는 양, 그간의 이야기들을 전부 읽어낼 수 있었으니깐.

역광으로 인해 그 사람의 모습은 여전히 실루엣으로만 보였지만, 문득 가슴 한 구석에서 가느다랗게 떨리는 슬픔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는 이 생에서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슬퍼말아요.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온 우주를 가로질러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 사람은 진심으로 나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눈물 한 줄기가 관자놀이를 타고 베개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난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오후 5시 리스본의 타구스 강변.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에 위치한 호카곶이 머지않은 곳이라서인지 리스본의 석양은 너무나 황홀하다.


얼굴을 붉히며 서서히 타구스 강으로 입수하는 해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며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기억의 아카이브를 거슬러 올라가자 꿈의 시리즈의 마지막회 배경과 주변이 겹쳐진다.

바닷가라고 생각했지만 파도치는 강가였고, 동틀무렵이라고 생각했지만 해 질 녘이었을 뿐..

십 년 전 꿈에서 본 그 사람의 다정한 말투, 따스하고 편안한 느낌, 입고 있던 캐시미어 셔츠의 감촉과 냄새까지 모조리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뜨거운 뭔가가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른다.


그 후로 매일 5시부터 7시까지 타구스 강가에 앉아 하염없이 석양을 바라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내일이면 리스본을 떠나야 한다.

저 멀리 강물의 표면과 맞닿은 태양의 수줍음을 뒤로 하고 한 사람이 서서히 다가와서 내게 말을 건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석양에 나도, 그리고 그 사람도 서서히 물들어간다.





누구를 만나도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리스본 타구르 강변의 석양.. (Lisbon, Portugal - Nov. 2015)


[에필로그]

1. 잠시 스쳐 지나가더라도 나를 만나 교감하는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그 순간만은 충실한 나의 소울메이트로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울메이트란 어쩌면 간절한 희망이 만들어낸 나 자신의 투영일지도..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라고 지드래곤도 삐딱하게 말했다.

그러니 Pluck the day!


2. 다음의 주소로 들어가면 전 세계 인구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어떻게 데이터가 취합되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쉴 새 없이 바뀌는 삶과 죽음의 숫자들을 보고 있으면 형언하기 힘든 묘한 기분에 압도된다.

http://www.worldometers.info/world-pop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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