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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 Mar 28. 2016

08. 눈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지수에 관한 그들과의 비정상 회담..


북유럽 나라들, 특히 노르딕 국가들은 제겐 너무 먼 당신이었습니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들에 대한 정보는 부족했지만,

모든 국민들이 꿈같은 복지를 누리며 사는 나라들이라는 얘기에 막연한 동경이 있었죠.


그러다 우연히 듣게 된 그들의 음악은 막연한 동경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아이슬란드 국민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ós)

덴마크 밴드 뮤(Mew)

노르웨이 천재 음악 소녀 오로라(AURORA)

그들이 만들어낸 낯선 음률에서 뿜어나오는 몽환적인 느낌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한 뮤직비디오 역시 놀랄 정도로 세련된 미장센으로 참신한 메시지들을 담고 있었고,

간간이 등장하는 아름다운 자연들은 지구의 것이 아닌 듯 신비로웠습니다.


그리고 사랑해 마지않는 레고는 덴마크의 레고 그룹에서 생산하는 제품이고,

핀란드의 대표 캐릭터인 무민 패밀리는 정말 웃음 나게 귀엽기도 하죠.


스웨덴 이케야의 군더더기 없는 모던하고 깔끔한 디자인은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그 안에서 기하학적인 미학을 찾아내는 특유의 심플하면서도 탁월한 미적 감각으로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몇 년 전부터는 국내에도 북유럽 풍의 디자인이 트렌드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조각 한 조각 찾게 되는 노르딕 국가들의 퍼즐들은 그들의 삶의 패턴을 알고 싶다는 갈망을 점점 더 크게 만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틈틈이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하던 중, 아이슬란드 국민 대부분이 요정과 트롤의 존재를 믿는다는 믿기 힘든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쓴이가 아이슬란드 통이라며 너무나도 단호하게 90% 이상의 국민들이라 못 박아 얘기했기에 긴가민가 하면서도, 그만큼 신비로운 나라에 산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납득시켰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 가면 꼭 진실을 확인 해보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핀란드를 거쳐 아이슬란드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을 떠돌다 만난 덴마크 비정상 대표 에밀(27세, 남), 그리고 아이슬란드 비정상 대표 토르게이르(37세, 남)와의 3자 비정상 회담을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노르딕 국가들에 대해 알아보는 짧은 시간 마련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아이슬란드 국민의 대부분이 요정과 트롤의 존재를 믿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게 정말인가요?

 

아이슬란드 비정상 대표 토르게이르 :

그럼 당신은 산타할아버지가 실존한다고 믿나요? 마찬가지예요. 요정이나 트롤은 애들을 위한 얘기지, 그걸 믿는 어른이 얼마나 있겠어요?


덴마크 비정상 대표 에밀 :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은 유용하기도 하지만, 때론 주관적인 견해를 사실인 것처럼 풀어놓는 경우도 있으니 아무 거나 주어먹지 마세요. 하하!


그렇군요.. 처음부터 멍청한 질문 죄송합니다. 혹시나 했거든요.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커서 낚였나 봅니다. 그럼 다른 질문하겠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제도가 잘 되어있기로 유명한데, 그런 복지가 가능한 이유가 뭘까요?

덴마크 비정상 대표 에밀 :

사실 그런 복지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건 60년 정도 됐을 거예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국민 모두가 뜻을 모아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해 스스로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만 없이 따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구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의견의 취합이 훨씬 수월하다는 점도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인구가 많은 나라라면 그만큼 더 많은 다양한 이익집단들이 자기주장을 하려 해서 정책 반영이 쉽지 않을 테니까요.

 

아이슬란드 비정상 대표 토르게이르 :

아이슬란드의 경우는 2008년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사실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현재까지도 형편이 아주 좋아진 건 아니에요. 불안 불안한 상태죠. 하지만 그로 인해 국민들의 복지가 축소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한국도 그 전에 금융위기를 겪었죠? 국가의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들이 자발적인 금 모으기를 했다고 들었는데, 아이슬란드 국가부도 위기 당시에 한국의 예가 보도되었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보도를 접한 대부분의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정부가 잘못해서 발생한 국가채무를 왜 국민들이 짊어져야 하는지 이해 못하겠다는 분위기였죠.


재산에 따라 상대적으로 세금의 비율이 증가하는 시스템이라 간혹 대기업 재벌들의 국적이탈이나 탈세 등의 부작용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이슬란드 비정상 대표 토르게이르 :

맞습니다. 아이슬란드는 거의 수산물 유통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대기업이 하나 있는데, 정경유착에 관한 의혹이나 탈세 등의 문제로 종종 기사화되기도 합니다. 현재는 그런 일을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한 헌법 개정이 진행되는 상황이고요. 근데, 그런 부정부패는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덴마크 비정상 대표 에밀 :

덴마크의 경우 조세비율이 소득에 비례하기 때문에 상위 10% 이내의 부자들의 경우는 조세부담이 70%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도한 세금 부과에 대한 부담으로 탈세를 위한 불법행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해요. 그래서 예산의 부족으로 복지제도의 지속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제도를 제대로 지켜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괜찮을 거라고 봅니다.


노르딕 국가들의 문해율이 거의 100%에 가까울 정도로 교육 수준이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난 북유럽 사람들은 거의 자국의 언어 외에 영어도 아주 능숙하게 구사하더군요. 자국의 교육 제도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덴마크 비정상 대표 에밀 :

의무교육기간은 9년인데, 중학교를 마치고 나면 대학 진학을 위해 고등학교 수업을 듣거나, 아니면 전문적인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의무교육과정은 물론 무료이고, 국립대학에 진학하는 경우에도 학비는 면제돼요. 각자 타고난 재능과 하고 싶은 일 위주로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에 학벌로 인한 차별 같은 건 본 적이 없습니다. 본인이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요.


아이슬란드 비정상 대표 토르게이르 :

아이슬란드도 뭐 비슷합니다. 16세까지 의무교육이고, 대학 진학은 각자의 재능과 진로에 따른 선택 여부에 달려있죠. 대학과정까지 학비는 전부 무료입니다.


대부분 일찌감치 독립해서 산다고 들었는데, 가족들과의 유대관계는 어떤가요? 그리고 본인의 행복지수는 어느 정도인지 자기평가를 해본다면?


아이슬란드 비정상 대표 토르게이르 :

보통 의무교육이 끝나는 16세가 되면 자립을 준비합니다. 제 친구들은 거의 20세 이전에 독립했지만, 뭐 개인 사정에 따라 다르겠죠? 하지만 대부분은 독립을 했어도 부모님 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지내기 때문에 자주 뵈러 갑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방문해요.

그리고 스스로의 행복지수를 평가해보자면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별로 내세울 건 없어도 집 하나 장만해서 게스트하우스 운영하고 있고, 지금은 결혼한지 얼마 안 돼서 아내를 위해 조금은 자제하고 있지만 좋아하는 낚시도 원 없이 다녔으니까요.


거기 놓인 잡지 표지 인물이 본인이시죠?


아이슬란드 비정상 대표 토르게이르 :

그렇긴 한데, 별로 유명한 잡지는 아니고 노르웨이의 한 항공사에서 발행하는 기내용 잡지예요. 어쩌다 보니 이달의 낚시왕으로 선정돼서 사진도 찍고, 아이슬란드도 소개하는 인터뷰도 하게 됐네요. 아무래도 낚시를 다니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경치 좋은 숨은 명소들도 좀 알고 있고.. 아무튼 대단한 건 아닌데 부끄럽습니다.


잡지 모델은 아무나 하나요? 취미생활을 그 정도 경지까지 끌어올리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부럽습니다! 제게도 숨은 명소 몇 군데 귀띔 좀 해주세요. 덴마크 비정상 대표는 어떤가요? 늘 롱보드를 가지고 다니시는 것 같던데요.


덴마크 비정상 대표 에밀 :

저도 16살부터 독립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방을 셰어 해서 지내다가, 얼마 전에 혼자 지낼 작은 집을 얻었어요. 하지만 가족들이 전부 한 동네에 살고 있어서 주말 저녁은 거의 함께 합니다.

저는 여행을 좋아해서, 일을 의뢰한 회사 측의 허락이 있으면 이곳저곳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프리랜서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죠. 그리고 스케이트 보드 타는 게 취미라 가는 곳마다 스케이트 보더들의 성지를 찾아가요. 관심분야가 같은 사람들끼리는 잘 통하니깐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고,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나이 들어 관절염 오기 전까지 열심히 타려고요. 원하는 걸 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제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입니다.


이웃하는 나라들인데, 사용하는 언어는 어떤가요? 한국, 중국, 일본 같은 경우는 각기 사용하는 언어는 달라도 한자로 일부는 소통 가능하기도 하거든요.

 

덴마크 비정상 대표 에밀 :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눈치로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 아주 아주 조금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사이쯤 될까요? 핀란드만 빼고요. 핀란드어는 완전히 외계어 같아요. 뿌리부터 다르다고 들었어요.


아이슬란드 비정상 대표 토르게이르 :

핀란드어는 게르만어파가 아닌 우랄어족에서 파생된 거라 완전히 이질적이에요.

그런데, 고맙다는 말은 덴마크에서도 탁(Takk)이라고 하죠? 아이슬란드에서도 그래요. 친구사이에 쓰는 캐주얼한 표현이죠. 그 외에는 찾아보면 비슷한 구석이 있긴 하겠지만, 알파벳이나 발음부터 조금씩 달라서 알아듣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으신지 궁금한데요?


아이슬란드 비정상 대표 토르게이르 :

남한, 북한으로 나뉘어 있는 분단국가라는 거? 그리고 일본과 사이가 안 좋다는 거? 아마도 일본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서 그렇겠죠?


덴마크 비정상 대표 에밀 :

저는 여행 다니면서 한국인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한국에도 두 번 가봤어요. 친구들이랑 홍대 가서 새벽까지 소맥을 엄청 마셨는데, 다음 날 죽는 줄 알았어요. 하하!




두 비정상 대표들과의 3자 회담을 통해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막연하기만 했던 북유럽에 대한 환상이 조금은 걷히게 되었고, 그 사회적인 배경과 구조를 이해하고 들여다보게 되니 전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집니다.

어딜 가나 사람의 생각은 비슷한 곳을 향하나 봅니다. 말씀하시는 모든 것들이 제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미루어 짐작 가능한 걸 보니 말입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적절히 혼합된 이상에 가까운 사회, 복지, 교육제도는 개개인의 기본권 존중과 평등한 기회 제공을 바탕으로 이토록 고도로 성숙된 사회 분위기를 완성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복지정책을 악용하는 사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이기주의로 휩쓸리지 않는 건전한 시민의식은 모두의 상식이 통하는, 최대 다수가 행복한 건전한 사회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도 과연 가능할까요?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하며 3자 비정상 회담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눈의 향연.. (on the way from Geysir to Gullfoss, Iceland - Oct.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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