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회사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니스프리 Nov 21. 2019

매주 금요일, 임원보고를 생각하면 두통이 생겼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점도 많지만 배우는 것도 많다. 지금은 두번째 회사를 다니지만 첫 회사에서도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고, 지금의 회사에서도 많은 걸 배우고 있다. 모르는 지식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을 통해 배우는 것도 많다. 서로 다른 색의 레고를 조립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처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 전혀 다른 생각과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일을 한다는 건 대단한 경험이다. 물론 스트레스 받는 일도 있다. 그래도 그 스트레스를 통해서도 배운다. 나와 정반대의 사람과 함께 지혜롭게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  


     브랜드장, 법인장에게 매주마다 보고를 들어갔었다. 계획대비 실적, 피드백, 앞으로의 액션은 물론이거니와 시즌 기획서 등. 특별해서 그런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다른 MD들도 모두 그런 일을 매주마다 했었다. 매주 금요일에 보고를 들어가는데 오늘은 또 어떤 보고를 드려야하나, 딱히 새로울 게 없는데. 떨어진 역성장 원인을 무엇으로 말씀 드려야 하나. 원인은 알겠는데 이 걸 무슨 수로 피드백하고 어떤 대안을 제시해야 하나. 수요일부터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다. 늦은 밤 회사 불을 끄며 퇴근하며 오늘 한 야근이 정말 회사를 위해서였나, 아니면 보고 받는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나, 아니면 나의 체면을 위해서였나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지금 보고를 준비하기 위해 들였던 시간이 내가 만드는 가치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걸까?


     매주마다 임원보고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긍정적인 스트레스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지적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결점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항상 좋은 결과를 들고 들어가야 한다는 대한 부담에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날이 늦어 인적이 드문 퇴근 길을 혼자 걸으며 곰곰히 생각했다. 지금 가지는 부담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가진 능력보다 더 잘 포장해서 보여주고 싶고, 가진 능력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욕심에 이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생각했다. 부족하면 지적받는 것이 당연하고, 자신은 자신에게 떳떳하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 부족한 자신은 순간이다. 지적받는 것도 순간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 그 외의 것은 최대한 신경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회사에서의 평가, 상사에게 받는 평가는 중요하다. 우리가 아침에 앉는 식탁의 풍경,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저녁의 풍경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회사보다 크다. 우리의 삶보다 큰 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삶을 위해 회사를 포기할 순 있지만, 회사를 위해 삶을 포기할 순 없다. 그런데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 가치 있는 일과는 상관 없는 것들, 회사를 떠나서면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을 위해 소중한 우리의 삶 어느 부분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두번째 회사에서도 상무님 보고를 꽤 자주 들어간다. "좋다"라는 말보다. "이건 왜 이래?", "실망이네", "더 해봐야 할 거 같은데?"라는 말을 훨씬 많이 들으며 다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었다. 잘 마시지도 않는 와인을 사서 집으로 들고 가 아닌 밤중에 소고기를 후라이팬에 구워 먹으며 같이 마셨다. 술을 잘 못해 금방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마법 같이 힘이 나게 해주는 다짐이 떠올랐다. 어쨌든 어제보다는 항상 낫다. 내일은 더 나을 것이다. 낯 간지러운 말이나, 가끔은 그런 설익고 부끄러운 말들이 욱신 거리는 통증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YES 보다 더 값진 NO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