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회사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니스프리 Nov 26. 2019

회사 끝나고 힘들어 죽겠는데

     11시에 회사를 나선다. 반차를 쓰고 오전 11시에 퇴근한다는 말이 아니다. 23시에 회사를 나섰다. 출근을 저녁에 하고 퇴근한 것이 아니다. 8시 출근이라 7시 30분에 출근하고 11시에 회사를 나섰다. 하루만 그런 것이 아니다. 결코. 5년 가까운 시간의 최소 60%가 그랬다. 회사 끝나면 몸이 부은 것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취를 회사 근처에서 해서 집으로 쓰러지듯 귀가하고, 그대로 쓰러져 잠을 잤다.


     지금은 다섯 시가 조금 넘어 퇴근을 한다. 아침 9시까지 출근이지만 조용한 아침을 즐겨 8시 조금 넘어 출근한다. 일찍 출근하다 보니 자리 주변에 아무도 없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물이 조금씩 스며드는 것처럼, 눈이 조금씩 쌓이는 것처럼 자리가 메워진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마음 편하다. 그 자체로 마음 편하다기보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겪는 경험보다 마음 편하다.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찬 온탕에 내 몸을 구겨 넣는 것보다 비어 있는 온탕에 먼저 들어가는 것처럼.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 있는 지하철에 몸을 네모로 만들 기세로 구겨 넣어 타는 것보다 내가 먼저 타 있는 것처럼. 그런 느낌으로 마음 편하다.


     다섯 시가 넘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하나도 힘들지 않다. 이전보다 여섯 시간이나 일찍 퇴근하니 힘들 수가 없다. 이런 말은 거짓말이다. 신기하게도, 이전에 어떻게 11시에 퇴근했나 싶다. 여전히 힘들다. 무려 6시간 일찍 퇴근했는데도 똑같이 힘들다. 주 5일을 어떻게 하지. 주 4일만 돼도 정말 천국이 따로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몸은 전과 같다. 여전히 퇴근하면 부은 것처럼 피곤하다. 회사와 집이 1시간 10분 정도 거리여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11시 퇴근하다 5시 퇴근했는데 여전히 힘든 건 분명히 이상한 것 같다.


     어쨌든 힘드니 집에 오면 눕기 바쁘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힘이 드니 유튜브를 보거나 노래를 튼다. TV를 보는 건 너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집에 일부러 TV를 두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하며 누워 있다. 하하하. 일찍 퇴근하면 하고 싶었던 것들을 떠올린다. 공부. 자기 계발. 여유. 독서. 새로운 취미 찾기. 명상. 1초도 되지 않았는데도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 따뜻한 매트리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하며 말줄임표를 찍는다.


     "남들과 똑같이 하며 특별한 사람이 되길 원하는 건 정신병자다" 인터넷에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라 떠돈다. 사실은 루머란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한다.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이 사실은 근거 없는 것처럼.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누가 무슨 말을 했건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의미 있는 말인지, 울림을 주는 말인지가 중요하다. 평범하게, 그럭저럭 살기를 원한다면 난 이미 모든 것을 이뤘다. 그럭저럭 출근해서, 퇴근하고 그럭저럭 월급을 받는다. 퇴근해서는 힘드니까 밥을 먹고 집에서 쉰다. 머리를 휴식하기 위해 유튜브도 보고, 뉴스도 뒤적거린다. 그런데 난 그럭저럭 사는 것보다 조금은 더 특별하게 살고 싶다. 보통의 삶도 행복하다. 그럭저럭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하게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풍경에서 사는 삶을 원할 뿐이다.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지금 주변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앞으로도 주변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99.9%. 남들과 똑같은 하루를 살며 특별해지길 원하는 정신병자가 되고 싶진 않다. 관성으로 매주 로또를 사고 토요일 저녁만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지하철 출근길, 퇴근길 직장인들의 표정은 거의 비슷하다. 지쳐 있다. 나의 표정은 어떠한가?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모두 다 다를 수 있다. 부자가 되겠다. 스타 유튜버가 되겠다. 인플루언서가 되겠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표정은 비슷하고, 지하철에서 내려 집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그 뒤에도 우리가 하는 모습은 비슷하다.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고나, 스마트폰을 하거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렇게 믿는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단지, 오로지, 어제 내가 무엇을 했는가. 오늘 무엇을 했는가.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세 가지가 가장 나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라 믿는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이 있다. 현실은 누군가의 생각으로 이뤄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행동이 모여 지구를 돌리고 현실이 계속 굴러가게 만든다.


     회사 끝나고 힘들어 죽겠다. 그래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자. 가만히 누워 유튜브를 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그걸 선택했다면 그것을 즐기면 된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마음에 어딘가 불안한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건 진정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생각한 것을 그대로 하고 있는데도 불안하다면 그것은 진정한 선택이라 하기엔 부족하다. 진정으로 선택하고, 선택한 것을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주 금요일, 임원보고를 생각하면 두통이 생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