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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회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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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scale Dec 29. 2019

회사 책상에 식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파랑과 녹색을 좋아한다. 호크니의 그림 중에서도 수영장을 소재로 한 그림이 좋다. 김환기의 그림도 마찬가지로 파랑을 베이스로 한 작품을 좋아한다. 뉴먼의 그림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파란색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왜 파랑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좋다. 이런 이유 없는 선호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뚜렷한 이유가 있으면 언제가 그 이유가 사라져 바뀌어 버릴 것 같은 불안이 있다.


David Hockney, OM, CH, RA (born 9 July 1937)
Barnett Newman (January 29, 1905 – July 4, 1970)


     파랑 다음으로 좋아하는 색은 녹색이다. 녹색을 가만히 바라보면 눈을 편안하게 해 준다. 괜찮다는 느낌을 준다. 잠깐 멈춰서도 괜찮다는 느낌을 준다. 생각해보니 신호등은 반대다. 빨간불이면 멈추고, 녹색이면 괜찮으니 건너라 한다. 괜찮으면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괜찮다고 하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멍하니 있는 것도 그림 같이 멋진 일이겠다. 


     사람이 아직 붐비기 전인 이른 시간에 카페에 들러 자리에 앉아 내 가슴까지 오는 큰 녹색 식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별 생각이 들지 않고 가만히 좋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방금 주문한 커피의 원두를 내리는 소리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연한 아이보리 색 벽에 의연히 기대 서있는 큰 녹색 식물을 말없이 바라보다 내키면 사진도 찍는다.


     회사 책상 위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올려두지 않으려 한다. 최대한 서랍 속에 넣어두고, 하루 지난 문서들은 모두 세절한다. 디밸롭 할 메모를 적어둔 문서들은 사진으로 찍어서 에버노트에 저장하고 세절한다. 연필꽂이도 없다. 파일꽂이도 없다. 책상 위에 있는 것은 컴퓨터와 그 주변기기, 전화기가 전부다. 옆에 앉아 계신 팀장님이나, 잠시 자리로 와 업무적인 이야기를 하러 온 동료분들이 책상을 보고 깜짝 놀라기까지 한다. 이직하고 초반에 책상이 계속 그 상태니 팀장님이 장난으로 언제든 떠날 사람처럼 책상이 너무 깨끗한 거 아니냐 하신다. 멋쩍게 웃으며 그런 게 아니라 말한다. 출근할 때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허전한 느낌보다 괜찮다는 느낌이 든다. 보기 괜찮다가 아니라, 괜찮다.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내가 생각해도 자리가 너무 생기가 없어 보여 책상 위에 올려둘 수 있는 식물 하나를 샀다. 식물 이름이 '크루시아'였다. 공기정화 효과가 있다는데 효과를 바라고 산 것은 아니다.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도 방금 이름을 검색하다 알게 되었다. 산 이유는 단순하다. 아주 진한 녹색이면서도 생기가 느껴지는 건강한 잎사귀가 마음에 들었다. 책상이 흰색이다 보니 진한 녹색의 그 식물이 썩 잘 어울렸다. 

아침에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는 항상 이 모습이다.


     회사에서 요새 머리가 아픈 일들을 주로 하고 있다. 우리 브랜드가 더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을 제안하는 일들이 많다. 이전에 회사에서 해본 적도 없고, 주변 경쟁사를 벤치마킹도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보고는 상무님께 바로 올려야 하니 이래 저래 난감하다. 


     모니터를 가만히 뚫어져라 보는데 엑셀 흰 바탕에 갈 곳 잃은 마우스가 덩그러니 올려 있다. 괜히 마우스를 이리저리 돌리며 보는데 마치 흰 설원에서 눈썰매가 이리저리 미끄러지는 듯한 모습 같기도 했다. 그러다 조그맣게 작은 어린잎이 올라온 모습을 가만히 쳐다본다. 작은 병아리가 부리를 벌린 것 같은 모습을 보니 식물도 생명이구나 깨닫게 된다. 


     얼마 전에 자리에 오신 한 동료분께서 "이거는 왜 사셨어요?"라고 물어보셨다. 그냥 좋아서 샀다고 말씀드렸다. 녹색을 좋아해서 샀습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예뻐서 마음이 요동치지도 않고 가만히 좋은 느낌이 들어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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