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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회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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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scale Feb 17. 2020

쉬는 날 출근한 하루를 돌아보며

     우리 회사에는 눈치 보지 말고 모두 같이 쉬자고 연차 중 일부를 회사가 지정하여 다 같이 쉬는 날이 있다. 공통연차라 한다. 공휴일 뒤에 붙여서 쉴 수 있도록 이를테면 3월 1일 다음날 3월 2일을 공통연차로 지정해 회사의 모두가 쉴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토일월 쉴 수 있도록 월요일을 공통연차로 지정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눈치 안 보고 연차의 대부분을 쓸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 하고, 누군가는 쉬고 싶은 날은 내가 정하고 싶은데 회사가 정한다고 불만이기도 하다. 


     나는 별 생각이 없다. 미리 가르쳐 주면 그에 맞춰 쉬면 될 뿐이다. 다만 저번 월요일 공통연차는 기대했었다. 요새 부쩍 지친 머리를 쉴 수 있겠다 하여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날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라 혹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겠지 걱정도 있긴 했었다. 큰 일이야 있겠어하면서도 그래 있을 수도 있지 생각했다.


     이번 걱정은 기어코 내 앞에 섰다. 저 멀리서부터 굴러오는 눈덩이를 밧줄에 묶인 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탈길을 느린 속도로 내려오는 내 몸만 한 눈덩이를 보며 설마 이리 올까, 이리 오려나 하다가 기어코 나에게 오고야 마는 눈덩이를 보는 것 같았다. 체념하듯 출근을 했다. 체념만 하는 내가 가여워 보일까 싶어 내 의지로 출근한다 생각하며 걸음을 보챘다. 경찰에 잡힌 범죄자가 내 발로 가겠소라고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듯이. 


     평소에는 눈치 보며 끼던 에어팟을 귀에 꽂고 퇴근할 때까지 빼는 일 없이 듣고 싶은 노래를 실컷 들으며 일을 했다. 쉬는 날 출근하니 듣고 싶은 노래를 맘 껏 듣는 것은 좋구나 생각이 들었다. 


     공통연차에도 사내 방송은 홀로 일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니 방송이 나오며 퇴근하라 말한다. 쉬는 날 출근하며 퇴근 방송을 들으며 가방을 챙기는 기분이 묘했다. 성실하신 관리인님께 인사를 하며 회사를 나섰다.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직은 겨울이었다. 찬 공기가 몸에 들어와 마치 새벽인 것처럼 기분을 새롭게 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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