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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이 Oct 17. 2023

LA/샌디에이고 여행

D-day

 한국과의 차이, 습도

 12시간의 비행 끝에 미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굉장히 고역이었다. 처음 온 낯선 공항에서 우버 승차장을 찾는 것부터 카드를 등록해 결제하는 것까지 모든 것에 서툴렀다. 그나마 선선한 공기와 쨍하게 맑은 공기, 새로운 나라를 만끽할 수 있다는 설렘이 지친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친구가 옆에 있어 든든하기도 했다.


 친구 덕분에 LA 내에서도 꽤나 좋은 위치에 탁 트인 뷰를 자랑하는 호텔에서 1박을 머물렀다. 짐을 풀고 쉴까 생각했지만 아쉬운 마음에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전에 주린 배를 부여잡고 인앤아웃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문을 나섰다. 날씨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환상적이라는 말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햇볕은 따갑지만 전혀 습하지 않아 땀이 나지 않았고, 그늘로 다니면 서늘할 정도였다. 6월만 되어도 어항이 되어버리는 한국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여름철 땀으로 찐득해진 팔에 부채질하며 찌푸리는 얼굴들이 그려졌다. 날씨에 영향을 꽤 받는 몇몇 우리나라 사람들도 미국 날씨면 덜 예민할 수 있지 않을까? 거리만 걸어도 행복할 거라는 PT 쌤의 말이 떠올리며 산책을 즐겼다. 나는 우기의 습도를 싫어하되, 여름의 쨍한 햇볕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홈리스의 태도

 20분의 거리를 쾌적한 날씨를 만끽하며 인앤아웃에 도착했고 우버 기사님이 추천해 주셨던 더블더블버거세트를 골랐다. 딸기쉐이크도 시켰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홈리스가 드링킹 하는 것을 목격했다. 내가 머뭇거리며 다가서자 홈리스 분이 굉장히 미안해하며 쉐이크를 두고 자리를 떴고, 직원인 듯한 분도 와서 대신 사과를 전했다. 당황하긴 했지만 그들의 사과 때문인지 전혀 화나지 않았다. LA는 높은 월세 때문에 홈리스가 굉장히 많다고 한다. 밖에서 생활해도 폭염이나 추위로 죽지 않을 정도로 좋은 날씨도 한몫한다. 버린 듯 쉐이크를 내버려 둔 내 잘못이었고, 곧장 사과하며 자리를 떠나 주는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한 그들은 몰상식하거나 탐욕적이지 않다. 적은 것을 가지고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가며 딱히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들이 사회적 활동을 한다면 경제에 도움은 되겠지만 나는 왠지 홈리스들이 길에 있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내가 사업을 하게 되어 그 사업이 쫄딱 망해도 홈리스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단지 우리가 그 쉐이크를 빨대를 교체하고 그대로 먹었는데, 모두들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홈리스가 마약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우리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본 듯하다.


 그리피스 천문대

 친구는 쇼핑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유명한 관광지를 먼저 부숴버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리피스 천문대를 강행했다. 막상 가보니 일몰이 거의 8시로, 친구말대로 쇼핑을 하고 가도 충분했을 듯싶다. LA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뷰에 처음엔 눈을 떼지 못했지만 3시간이나 보니 조금 지루했다. 일몰 시간쯤부터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파스텔을 흩뿌린듯한 하늘색은 처음 봤다. 해가 가라앉으면서 건물들의 빛도 반짝이기 시작했다. 장시간 비행과 이동으로 몸은 힘들었지만 미국에 온 것이 꿈이 아니라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땅이구나,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입장

 사실 이번 여행 내내 가장 마음이 불편했던 부분이다. 내가 이 여행을 결정한 이유는 항공권과 얼마간의 생활비만 가져가면 숙박과 렌트가 보장되고 친구가 주말 숙박, 식비 어느 정도를 지원해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항공권이 평소의 2배에 달하는 가격이라 나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말은 계속해서 달라졌고 본인이 했던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날이 거듭할수록 숙박, 렌트까지 해주는데 나머지도 바랄 필요가 있을까라는 망설임과 그래도 약속한 부분인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망감이 함께 몰려왔다. 왜냐하면 너무 갑작스러운 여행이라 항공권을 산 뒤로 정말 거지였기 때문이다. 식비를 어느 정도 대준다는 말을 한 상태라 혹시나 외식에 대한 부담을 가질까 나도 거의 호텔 조식으로만 끼니를 때웠다. 본인이 얼마나 많이 썼는지를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LA 게스트하우스 같은 경우도 부담될까 일부러 게하로 찾은 건데, 그마저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니까 당연하게 각자 내는 듯 말하는 것을 보고 단단히 잘못되어감을 느꼈다. 여행 내내 이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각자 내자고 했으면 의존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내 입장에서 바라본 상대의 입장

 회사에서 보내주는 것이라서 항공권, 숙박, 렌터카가 지원되지만 여행이 아닌 교육 목적이었다. 오후 3시 이후부터는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하루의 절반을 넘게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도 적은데 무작정 지원을 바라는 것이 부담될 수밖에 없다.  LA<->샌디에이고 왕복 6시간의 운전도 도맡아 했고, 호텔도 해당 위치와 시설을 얻어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왔다. 사실 함께 가는 여행에서 위의 경비와 주유비, 마트에서 물품을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지원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외의 경비 지원은 라스베이거스를 갈 경우를 가정하여 말한 것이고, 여행이라기보다는 교육에 가까운 취지였기에 그 이상의 지원은 부담스러웠다. 고마워한다는 태도보다는 하나하나 계산적이고 소극적인 태도, 무언가를 더 바라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다.


 해결하려면

 여행 일이 거듭될수록 오해가 줄고 압박감이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여행을 왔지만 친구는 교육을 받으러 온 사실을 되뇌려고 노력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내 마음가짐을 달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압축적으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지만 친구는 아니었고, 나의 여행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조력자의 이미지로 바라보게 되었다. 또 며칠 지내니 한없이 행복하고 돈보다 중요한 그 이상의 것들을 깨닫게 되어 이 여행에 얼마를 쓰든 중요치 않게 되었다. 애초에 처음 동행을 결정했을 때 내가 내 여행을 책임질 수 있는 상태여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나에게 쓰는 돈이 부담스럽고 눈치를 준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 굉장히 의식하고 있는 내 탓일 수도 있겠다. 고마운 마음이 더 커져갔고, 원래 그러려고 했지만 처음보다 가볍고 행복한 마음으로 한 턱 쏘기도 했다. 이심전심이라고, 직접 말하지 않아도 친구도 내 행동과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느낀 듯했다. 여행이 끝났을 때 우리는 서로 무언의 애틋함과 돈독함을 느끼고 있었다.

 타인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바뀐 태도를 보여야 한다.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고 베풀거나 수용하는 마음가짐과 함께라면 상대방도 그 마음을 반드시 알아줄 것이다.


 공감되지 않는 타인의 소통

 굳이 이기려 들지 않아야 한다. 내가 믿고 따르는 진리는 변하지 않고 설득은 설교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상대방이 공감되지 않더라도 힘을 들여가며 반박하지 않아도 된다.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고도 상황이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공감의 제스처로 상황을 넘어가고, 갈등을 피하되 나의 중심만 지키면 된다.






함께 여행한다는 것

 여행 시작도 전에 친구가 법인카드를 잃어버렸다. 처음 이 사실을 직시했을 때는 원망스러웠지만, 여행은 언제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절실히 느껴온 탓에 금세 적응했다. 잃어버린 법인카드를 어떻게 대체할 것인지는 잠시 뒤로하고 관광부터 하기로 했다. 나는 카드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미국의 풍경에 흠뻑 취해버렸다.

 숙소에 와서 펄펄 끓인 라면을 가운데 두고 친구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는 의외였다. 카드를 잃어버린 후로 처리해야 했던 많은 과정,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대한 우려, 자신을 탓하는 것만 같았던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이 여행을 위해 해 왔던 친구의 숨은 노력들. 이 일련의 과정에서의 자책과 비관, 나를 향해 불쑥 나타나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평범한 하루였다고 생각했던 내게 뜻밖의 이야기라서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태도로 듣게 되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감정을 털어놓는 그의 모습에 나의 마음을 자연스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둘이 나눈 진솔한 대화였다. 눈물의 라면을 먹으며 여행을 시작한 우리였다. 향후 일정동안 서운한 것이 있다면 바로 대화를 나누기로 약속했다. LA 공항에 처음 도착해 의지할 곳이 서로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보다, 서로를 위해 약속했을 때 이번 여행의 든든한 조력자가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일정을 같이 소화할 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공유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다. 우리가 떠올리는, 추억이라 부를만한 기억들은 항상 그때의 감정이 들어있다. 그 당시 내재된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소할 줄 알아야 기억은 비로소 추억이 된다. 함께한 시간 속의 감정은 함께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소했다. 후에 그날의 추억을 되돌아본다면 그랬었지만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건사고들

 샌디에이고에서 절벽 밑의 해변에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을 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크록스를 신었던 나는 3m 정도를 엉덩이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엉덩이가 화끈거리고 눈물이 찔끔 났다. 다시 올라가기엔 힘이 없고 엉덩이가 피범벅이라 돗자리를 펴고 쉬었다. 햇빛이 매우 강해 눈이 아파왔지만 절벽을 올라갈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도저히 내려왔던 곳으로는 올라갈 용기가 없어 완만한 곳으로 우회하기로 했다. 돌덩이가 많아 몇 번을 미끄러지고, 파도가 칠 때마다 엉덩이에 짠 물이 튀어 고통스러웠다. 살기 위해서 엉엉 울면서 올라갔다.

 친구가 교육이 끝난 후 데리러 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에 가는 길에 뒤의 뒤차가 급정지하지 못해 3중 추돌 교통사고가 났다. 우리는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그 와중에 나는 방광염이 도져 화장실이 급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경찰이고 소방관이고 일단은 제발 집에 보내주길 바랐지만 우리는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으나 대충 뭐든지 OK 해버린 후 만신창이가 된 렌터카를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서 급한 일을 해결하는데 이게 소변인지 피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갛게 물들었다. 당장 병원을 가야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샤워할 때가 되어서야 엉덩이 부상으로 잠시 쉬어간 해변에서 햇빛에 화상을 입은 것을 깨달았다. 온몸이 빨갛게 익어있었던 것이다. 물이 몸에, 특히 엉덩이에 닿을 때마다 수만 개의 바늘 위에 앉는 느낌이었다. 서럽게 울며 겨우 샤워를 끝냈다. 이게 고작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친구의 친척들이 미국에 거주 중이었다. 한 걸음에 달려와 트렁크가 내려앉은 렌터카를 처리해 주시고, 방광염에 좋은 크렌베리 원액과 약을 챙겨주셨다. 병원에 함께 가주셨으며 군사지역으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곳을 관광시켜 주셨다. 혹시 우리가 배를 주릴까 계속 밥을 사주시고 LA까지의 먼 길을 데려다주셨다. 우리가 계속 미안해하니 하고 싶어서 한다고, 가족이지 않냐고 말씀하셨다. 친구를 공항에 내려준 후 나를 숙소에 데려다주시면서 마지막에는 용돈을 쥐어주셨다. 우리를 케어하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떠나시던 뒷모습을 떠올리면 지금 생각해도 울컥한다. 타지에서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는데, 무한한 친절과 호의를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분의 따스한 다정함이 그리워진다.

 다정한 친척들이 있는 친구는 너무나 큰 행운을 가진 것이고 그런 친구가 곁에 있는 나도 행운아이다. 함께 이 많은 사건들을 이겨내고, 포옹하고, 무사히 돌아온 우리의 사이가 애틋하게 느껴졌다. 또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해 줌에 감사한다. 일련의 사고들이 흐릿하게 미화되어 추억이 될 정도로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이 날을 잊지 않고 타인을 위해, 타인을 향해 다정하게 살아가야겠다 한번 더 다짐했다.





문화와 습관

 친절하기

 서로에 대한 관심과 친절이 눈에 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느낀 전반적인 분위기이다.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노인분을 보아도 들어드릴까 고민만 하다 지나쳐버리곤 했다. 미국은 비교적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떠한 친절이든 베풀 준비가 되어있다. 문을 지나갈 때도 제일 처음 들어가는 사람이 꼭 문을 끝까지 잡아주고, 내가 길에 처량하게 앉아만 있어도 괜찮냐고 물어봐준다. 인적 드문 길가에서 그저 타이어를 갈고 있을 뿐이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바로 관심을 가지며 도와주기 시작했다. 낯선 이들에게도 마치 이웃처럼 대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항상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인분들의 사려 깊은 친절함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머릿속의 노인에 대한 인식은 큰 소리로 말하며 고집이 세다는 것이었다. 다수로 소수까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편견이다.


 우리나라에서 길을 가다 모르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대화를 걸면 이상하고 튀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이와 상반되는,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있는 미국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믿는 편인 나와 잘 맞는 문화인 듯하다. 타인을 향해 관심을 가지고 친절을 베푸는 할머니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미소 건네기

 은근히 낯을 가리기 때문에, 모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훽 돌려버리기 마련이다. 여기서는 눈을 마주치면 웃는다. 정말 백 퍼센트 확률이다. 처음엔 왜 나를 보고 웃을까 고민도 했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눈이 마주쳐서 웃는 것이었다. 눈이 마주치면 웃으면 된다니, 나처럼 호기심에 항상 두리번대는 사람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눈맞춤과 미소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일주일 뒤에는 내가 먼저 미소를 건네고 있었다.


 여유를 가지기

 제발.. 제발 끼워주세요 / 마 안 끼워주나. 한국에서는 이 두 마디로 매일 운전을 해나가고 있다. 정말 안 끼워주고, 안 기다려주고, 특히 내가 가장 그렇다. 양보하는 게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건지 아무튼 싫었다. 미국은 앞다투어 먼저 가라고 양보한다. 내 마음까지 한결 여유로워져서 환경이 사람한테 정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나도 운전대를 잡아 양보해주고 싶었다. 창문을 내리고 먼저 가라는 손짓을 하는 그들이 천사 같았다. 자동차와 자동차라는 물리적 분리가 한국의 이기적인 운전 태도에 한 몫하는 것 같다. 창문을 내리고 서로 손짓과 눈짓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산 사람으로서 내가 돈만 있다면 시민 전체를 여행 보내서 운전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귀국한 후에 나라도 여유를 가지고 양보하면서 운전해야지, 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놀랍게도 매너 있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스스로를 잘못된 운전 방식으로 이끌었나 보다. 양보한 후에 고맙다는 비상등 깜빡이 인사를 받는 것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이 좋은걸 이제야 하다니.


 입고 싶은 대로 입기

 말 그대로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한국에서 누군가 저런 옷을 입고 있으면 나도 아마 '색이라도 맞춰 입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래위로 형형색의 옷들과 무슨 문양인지 모를 괴상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엔 이상한 옷들을 인지하지 못했다. 모두가 그렇게 아무렇게나 입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조식을 먹은 후 무슨 옷을 입을지 한참을 고민하던 나를 발견했다. 무엇을 입든 누구도 뭐하라지 않을텐데 말이다. 깔끔하고 정돈된 옷을 입는 것은 좋지만 생각해 보면 깔끔하게 입고 싶은 대로 입으면 된다. 내가 형광색을 좋아하는 데다가 잘 어울리까지 한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울렛에서 산 옷들은 민트색, 연두색, 핑크색처럼 환하고 튀는 옷들이었다. 바둑판처럼 흰검만 가득 차있을 한국의 내 옷장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남들의 눈치를 많이 봐왔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칭찬하고, 소통하기

 살다 보면 옆사람에게 말을 걸어 대화하거나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예쁜 옷을 보면 어디서 샀는지, 맛있는 것을 먹고 있으면 어느 가게인지 궁금해진다. 대개는 상상에서 끝나고 말지만, 미국은 혼자 있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건다. 국적과 이름을 물어보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하며 이쁘다, 노을 같다, 옷과 신발이 귀엽다, 화장을 하나도 안 해도 잔뜩 칭찬해준다. 기분이 꽤나 좋다. 내가 영어를 잘했다면 미국에서 아마 하루종일 말을 걸고 다녔을 것 같다. 소통하고 싶다면 민망함을 이겨내고 소통을 시도하자. 겸손한 사람이 집중하는 것은 타인이므로, 상대방을 관찰하고 그에게 진심 어린 질문을 던지자.


 스포츠

 서부권은 바다와 맞닿아있고 파도가 좋아서 그런지 해변마다 서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남녀노소 자신만의 보드를 들고 나와 바다에서 하루종일 파도를 즐긴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물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들이 모두 동경의 대상이었다. 갖가지 핑계를 대며 서핑 강습을 미뤄온 나날들이 후회됐다. 원하는 스포츠를 잘하든 못하든 지금 당장 배울 용기를 가져야 한다. 배움은 항상 지금이 가장 빠르다.


언어 / 시사와 역사

 반드시 공부해야 할 것들을 얻게 되었다. 역시 나는 공부할 것이 있어야 삶에 활력이 생긴다. 이 사실도 방금 알게 되었다.


 뉴욕에서 온 마케터, 하이닉스에 다니는 10년 차 직장인과 30년 차 LA 거주자의 사회 전반적 시사에 대한 대화를 이해하지 못할 때의 무력감이 기억난다. 그들은 이곳에서, 이번 여행에서 나는 느낄 수 없을 어떠한 것을 얻고 갈지 궁금해졌다. 같은 경험 해도 준비된 사람이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받을 수 있음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공감하지 못할 관습도 역사를 들여다보면 흐름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총기제도는 국가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하기 때문에 지속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와 확연히 다른 연금 및 보험 제도가 있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미래를 완전히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여느 선진국 못지않으니, 더 살기 좋은 환경에 만족하며 적응하는 태도를 30대의 내가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모든 것은 역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문화도 사람도 그렇다.






여행방식

 혼자 떠나는 무계획형

 불과 2년 전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크게 타격을 입고 스트레스 받아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리프레시 목적의 여행에서조차 그랬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가고 싶은 곳 몇 군데만 정해놓고 떠나는 여행이 얼마나 여유롭고 행복한지 알게 되었다. 혼자 떠나는 무계획 여행 맛을 보고 그 방식에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생각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고, 생각보다 더 좋은 것들이 나를 기다린다. 식당이 문을 닫아도 스트레스 없이 이번 여행 레전드라며 웃어넘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를 고민한다. 그곳에는 새로운 사람들과 경험이 끝없이 있고, 낯선 상황에서의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혼자이기 때문에 오로지 내 선택만이 존재한다. 여행에 푹 빠진 것도 이런 태도를 가진 이후인 것 같다.


 단지 공적인 일을 할 때도 가끔 이런 모습이 튀어나와서 고민이다. 스스로 꼼꼼하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챙기지 못하고 지나가버린 체크리스트나 기회가 꽤 많다. 두 삶을 칸막이로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경계선이 모호해질 때가 있다. 내가 있을 자리에서 맡은 바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메모하고, 계획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필수적이다. 여행은 유동적으로 하되, 일은 체계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일상과 여행을 분리하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지녀야 한다. 회피하지 않고 일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기르자.


 온전하게 느끼기

 유명한 곳보다는 자연이 있는 장소에 머물며 하루의 모든 시간대를 느끼는 것이 좋더라. 이 순간 앞날에 대한 걱정이나 고민을 하지 않고, 눈앞의 풍경을 담으며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는 걸 알자.






토마스 삼촌

 좋은 어른을 만났다. 줏대 없어 보이는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사람들이 모두 취침하러 간 새벽까지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

 특히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중심이 될 것을 권유하셨다. 언어와 몸짓에 자신에 대한 확신이 묻어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중심이 확실해서 어떤 말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알고 나를 확신할 수 있어야 타인도 나를 확신할 수 있다.


 신뢰를 위해 움직이기

 매 순간 믿어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의 모습을 먼저 보여줄 때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고 그 사람을 알 수 있음을 기억하자. 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꾸밈없다고 느낀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반대로 상대를 추측할 시간이 필요하면 말을 아끼고 더 깊이 생각해본다.


 버려야 새것을 얻는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 하는 대상들은 바뀌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아껴주고 품어주는 공간, 사랑해 주는 이들은 항상 있다. 욕심이 커서 한 줌 크게 쥔 것을 놓지 못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너무 오래 쥐면 썩어간다는 것을 아는데도 말이다. 노력은 하되 내가 가는 길에 있어 잡히지 않는다면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당연하고 뻔한 말에 나는 감동받았다. 내 행복을 바라는 진심 어린 말은 여러 번 들어도 도가 지나치지 않는다. 멀리 내다보고 장기적으로 나를 사랑해 줄 사람 찾으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은 빨리 찾으면 크나큰 행운이고, 평생 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 내가 한 선택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을 것. 오롯이 나의 몫이다.


★ 이번과 같이 우연과 행운, 새로운 인연, 뜻밖의 경험이 항상 따라올 것이라 기대하지 않을 것. 실망하지 않고 어떤 여행이든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자.


★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아버렸다. 작은 공간에서 반복적인 일만 기계적으로 했다면 고민도 덜 하면서 직장을 다니며 순탄한 인생을 살았을까? 돈이 차곡차곡 모이고 있는 통장을 보자니 20년, 30년... 버티고 은퇴하면 인생에 굴곡은 없었을 것 같다. 잘릴 걱정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30살에 다시 취업을 한다고 했을 때 그 공백의 가치는 3억이다. 최소 3억. 그때 여기보다 낮은 연봉을 받는 곳에 간다면 생애소득은 급락할 것이다. 공백기에 그 가치에 상응하는 나만의 경험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함이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도전할 수 있는 시기는 지금밖에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내 삶의 태도를 바꿀만한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최선을 다하고 실패하면 실패가 아닌 것도 안다. 걱정은 조금 더 나이를 먹고 하고 싶다. 지금은 어떻게 실패할지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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