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와 '코코'의 픽사, '슈렉'과 '마다가스카'의 드림웍스는 CG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회사들로, 수년간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왔습니다. 오랫동안 이 둘은 묘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왔는데요. 사실 이 둘의 신경전은 드림웍스가 '슈렉'을 만들기 전, 그리고 픽사가 '토이 스토리'를 성공시킨 직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픽사는 디즈니 소속의 제작사인데요. 디즈니에 합류하기 전, 픽사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루카스 필름에 소속된 특수효과용 컴퓨터를 제작하는 부서와 CG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부서, 둘이 뭉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루카스는 이혼소송에 휘말리게 되어 급전이 필요해 픽사를 매각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때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사들이게 되었죠.
잡스로 인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 픽사는 기술 연구와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경험을 쌓아갔죠. 그리고 몇 년 후인 1991년, 픽사는 디즈니에게 인수되며 세계 첫 장편 CG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제작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당시 애플에서 해고된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성공을 계기로 애플로 금의환향할 수 있게 되었죠.
디즈니의 픽사 인수를 성사시킨 장본인이 있는데, 이는 바로 훗날 드림웍스를 설립하게 될 제프리 카젠버그입니다. 드림웍스는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 음반 업계의 데이빗 게펜, 그리고 디즈니의 간부였던 카젠버그가 1994년 설립했는데요. 카젠버그는 디즈니에서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을 제작하며 디즈니의 부활을 이끈 인물입니다.
하지만 카젠버그가 디즈니 소속일 당시, 디즈니 내부에서 커져가는 그의 입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는데요. 바로 디즈니 사의 임원으로 경영에 활발히 참여했던 월트 디즈니의 조카, 로이 E. 디즈니. 그리고 당시 디즈니의 사장이었던 마이클 아이스너입니다. 결국 이들에게 카젠버그는 돌연 해고를 당하고 마는데요. 억울하게 방출당한 카젠버그는 디즈니를 능가할 것을 목표로 드림웍스를 설립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1998년, 드림웍스는 첫 작품인 CG 애니메이션 '개미'를 선보이게 됩니다. 바로 이때 디즈니에 대한 카젠버그의 앙금이 자신이 디즈니와의 계약을 체결시킨 픽사와의 트러블로 번지게 되는데요.
카젠버그는 디즈니 방출 이후에도 픽사의 존 라세터 감독('토이스토리' 1 & 2)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연락을 하고 지냈다 합니다. 픽사가 '토이 스토리' 개봉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할 때였는데요. 데뷔작 '토이 스토리'부터 현재의 '코코'까지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과 확실한 메시지, 모든 연령이 즐길 수 있는 스토리는 픽사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죠. 당시 픽사의 다음 작품은 곤충 세계를 무대로 하는 '벅스 라이프' (당시 타이틀 ‘벅스’)가 될 것이라는 것은 업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합니다.
문제는 라세터는 카젠버그를 믿었기 때문에 그에게 '벅스 라이프'의 내용과 계획에 대해 아주 세밀하게 모두 얘기해주었다는 것인데요. 드림웍스는 '개미'의 제작 확정을 발표하게 되었고, 라세터와 픽사는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곤충들의 세계를 다루는 것을 넘어 주인공이 개미인 것, 주인공의 성향, 그리고 공주의 사랑을 얻고 곤충 사회를 위기로부터 구한다는 내용이 똑같았기 때문인데요.
게다가 드림웍스의 개봉일이 픽사보다 먼저였기 때문에 더욱 낙담했다고 합니다. 물론 카젠버그는 몇 년 전 드림웍스의 간부에게 들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개미'를 만든 것이라 입장 표명을 했는데요. 라세터는 이를 믿지 않았고, 디즈니에게 보복하기 위해 픽사가 이용당한 것이라 밝혔습니다.
이 '벅스 라이프'와 '개미' 사건, 그리고 CG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대표적인 제작사라는 이유로 둘의 라이벌 관계가 시작된 것이죠.
개봉 이후 '벅스 라이프'와 '개미'는 각자 좋은 평가를 받으며 성공적인 흥행 성적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디즈니 산하의 픽사에게 타격을 입힌 드림웍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디즈니가 관습적으로 사용해온 고전적인 주제들을 비꼬는 작품, '슈렉'으로 본격적인 공격을 하게 되죠.
이렇게 패기 넘쳤던 드림웍스였지만, 현재는 '미니언즈'와 '슈퍼배드', '씽' 등으로 신흥강자로 떠오른 애니메이션 제작사 일루미네이션이 소속된 유니버설에게 인수당하고 말았는데요. 다음 글에서는 일루미네이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