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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ky Aug 25. 2021

엄마가 끓여주던 보리차

 6월에 미국행을 위해 짐을 싸면서, 역시나 엄마의 관심은 무슨 음식을 싸서 보낼 것인가 였다. 엄마는 미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황태채, 마른 멸치, 국물용 다시마, 누룽지, 고춧가루 등에 집착했다.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냄비에 폴폴 끓여서 보리차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볶은 보리와 옥수수까지. 다소 입을 삐죽 대긴 했지만 워낙 한식파라 이런 음식들이 그리울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기에 고분고분하게 보따리장수처럼 챙겨 왔다.

 그리고 한국을 떠난 지 채 2개월이 안된 지금, 더 많이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워낙 옷, 신발 욕심이 많아 뉴욕 가서 멋쟁이처럼 입겠다고 한아름 싸왔는데 과거의 나를 붙잡고 말리고 싶다. 옷은 반만 싸고, 차라리 라면을 더 챙기라고.

처음에 브루클린에 와서 놀랐던 건 생각보다 한국 음식점이 너무 없다는 거였다. 뉴욕에 간다고 하니 다들 "그래도 한식 먹기는 쉽겠네~" 하고 했지만 그건 한인타운이 있는 맨해튼이나 퀸즈 이야기고 브루클린은 다운타운에 가지 않는 이상 한식만 취급하는 식당을 찾기는 힘들다. 라면 등 한국 식료품도 물론 한인마트에서 구할 수 있고 배달도 가능하지만 가격이 한국의 3배 정도 되니 가난한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돈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브루클린에 온 지 채 일주일이 안되었을 무렵,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이 그립고 외로워서 입맛도 없는데 무슨 심산이었는지 냄비를 꺼내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후, 물이 보글보글 끓을 무렵 볶은 보리 한 국자, 옥수수 반 국자를 넣고 가만히 기다렸다.

 그냥 생수를 먹어도 될 법한데 나는 항상 시원한 보리차를 좋아했다. 그걸 아는 엄마는 마실 물은 꼭 보리차를 끓여서 냉장고에 넣어두곤 했는데, 보리차는 또 쉽게 쉬고 맛이 변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2번 이상은 꼭 새로 물을 끓여야 했다. 엄마가 조금 오래돼서 맛이 변한 보리차를 주면 나는 항상 애처럼 먹기 싫다고, 새로 끓여달라고 하곤 했는데 그러면 엄마는 말로는 그냥 주는 대로 좀 먹으라고 하면서도 손으로는 냄비를 찾았다.

  보리와 옥수수를 넣고 10분 정도 지나면 온 집안에 보리차 향이 가득하다. 그리운 냄새. 한국 집에서 나던 냄새. 아, 후각이 얼마나 강력한 그리움을 촉발할 수 있는지. 혼자 가만히 부엌에 있으니 눈물이 뚝뚝 흘렀다. 당장이라도 레지던트고 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 낯선 미국 땅은 나를 환영하지 않는 느낌이고, 그 단순한 인터넷 신청하는 것조차 왜 이렇게 어려운지.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가 해주는 밥이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만두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법. 혼자 찔찔 울다가 결국 보리차가 완성되었고, 한 잔 따라 식혀 놓고 가만히 생각했다. 지금은 그만 둘 용기가 없어. 어쩌겠나, 그냥 버텨야지. 나중에 진짜로 용기가 생기면 그만두고 말겠어. 용감하게 한국행 티켓을 끊고 말겠어.

 그렇게 2개월이 지났고 지금도 아직 그만 둘 용기가 나지 않는다. 보리차를 끓일 때마다 울지는 않지만 보리차 향을 맡을 때마다 가슴이 찡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다음에 한국에 갔다가 올 때는 보리를 더 많이 챙겨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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